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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스물여덟, 여자, 대학교 성적(4.5점 만점) 평균 2점대, 컴맹, 자격증 없음, 토익 토플 성적표 없음. 작년 7월경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입사하기 전, 내 이력서에 담길 약점들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자신감은 만땅'인 내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난 이력서를 쓰는 것을 즐겼다. 면접을 보는 것 역시 좋아한다. 모두 나 자신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이력서를 적는 것은 ‘내가 보는 나 자신’에 대한 주관적인 분석이고, 면접을 보는 것은 ‘다른 이가 보는 나 자신’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분석이다.

이력서에 들어갈 사항에서 내게 주목할 만한 것이라곤 장학퀴즈 우승, 광고 공모전 입상, 학생회장 경험, 명예기자나 모니터요원, 창업 등 다양한 알바 경력 등 정도가 전부이다. 학교 간판이라고 해 봐야 서울에 있는 대학교의 비실용적인 학문을 전공했기에 별로 부각될 만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금 나열한 것으로 앞에 제시한 약점들을 극복하기란 그다지 쉽지는 않았다.

이력서- 나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일단은 대기업을 제쳐둔 상태에서 인터넷 취업란을 샅샅이 뒤졌다. 대기업을 지망하기엔 나의 약점들이 채용 지망 조건에 전혀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적성이나 전공을 살리는 것보다는 내 적성 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어떤 것인지 보다 정확히 알고 싶었다. 또 다양한 면접 경험으로 더 많이 배우고 싶어서 자격 요건만 된다면 일단 이력서를 넣었다.

물론 이력서는 나를 부각할 수 있도록 꾸몄다. 사진은 가장 단정하면서도 예쁘게 나온 사진으로 올리고 경력 사항에는 나의 알바 경험에 대해 짧고 구체적으로 적어서 올렸다.

영어 성적이 없는 약점은 자기 소개서를 인상적으로 남기기 위해 나의 좌우명에 관한 내용을 영어로 맨 앞부분에 올렸다. 여기서는 단순한 영어 몇 문장을 따와서 멋을 부리는 것으로는 곤란하다. 느낌을 줘야 한다. 면접관이 접하는 이력서는 수천 장에 달한다. 그들도 지루할 것이므로. 나의 아이디어를 어필할 수 있는 간결하고도 감각 있는 문장이 시선과 내용으로 사로잡는다.

자기 소개서에는 나의 성격을 간단히 5가지 정도의 짤막한 문장으로 제시하고 그 뒤에는 그만한 근거를 적었다. 대학을 다닐 때와 졸업한 시기, 그 이후를 연도별로 놓고 그동안 내가 '저질러 놓은 일'들에 관하여, A4용지의 흰 여백에 빼곡히 적고는 그 중에 자기 소개서에 들어가서 돋보일 만한 것들을 골라냈다.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했던 일, 일간지에 보낸 글이 독자란에 실린 것, 쇼프로그램에 인터넷으로 작성한 아이디어가 채택되어 선물을 받은 일, 여행지에서의 추억, 동아리에서 내가 개최한 파티 등. 사소한 과거의 기억에서도 나를 부각시킬 만한 것들은 충분했다.

소재는 생겨났고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남았다. 일단은 내가 지망한 업무 분야가 아주 다양했기 때문에 크게 업무 분야를 둘로 나누었다. 사무적인 일이나 출판이나 방송 같은 지적인 업종과 서비스업이나 사회복지, 봉사, 엔터테인먼트 등 끼가 필요한 업종으로 나눴다. 전자는 지적인 부분을 부각한 내용을, 후자는 끼를 부각한 내용으로 각각 다르게 작성해서 그 업무 분야에 보다 적합한 형식으로 제출했다.

정성을 들일 필요가 있다거나 꼭 맘에 드는 회사라면 자필 이력서를 A4용지에 작성해서 다른 사진을 출력한 것을 회사로 직접 찾아가서 제출하기도 했다. 컴퓨터보다는 사람 냄새가 나기도 하고, 수작업은 나를 더 잘 부각 시킬 수 있었다. 또 결과적으로는 여러 장의 이력서 안에서 내 이력서를 튀게 하는 요건도 되었다(직접 써낸 이력서는 분량도 분량이고 들이는 시간과 정성도 많았지만, 그렇게 한 회사치고 면접까지 떨어져 본적은 없었다). 이렇게 이력서를 인터넷 상으로 제출하면 면접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하루에 2개씩 오전 오후로 나누어 면접을 보러 돌아다녔다.

면접- 나를 정직하게 보여주고 부딪히는 것

나는 솔직한 성격이다. 이득을 볼 때도 있지만, 손해 보는 일이 더 많다. 특히나 면접이라는 적당한 포장이 필요한 자리에서는 그 솔직함이 실수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런 솔직함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어차피 포장한 것이든 거짓말 한 것이든 곧 들통나기 마련이고, 하루에도 수십명을 상대하는 면접관들은 표정이나 말투만 봐도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금방 파악할 수 있다.

나중에 회사에서 원한 인재상이 아니어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망신스럽게 쫓겨나는 경우도 요즘은 종종 본다. 업무도 나와 맞을 것이라 여기고 시작했으나 전혀 자기 적성이 아닌 경우도 있고, 자신이 보는 자신의 능력과 회사의 면접 담당자가 본 적성 능력이 전혀 달라서 엉뚱한 부서에 배치되는 경우들도 있다.

면접의 기본은 자신감이다. 쫄지 마라. 자신을 믿지 않고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자신감이란 자신을 믿는 것. 자신감 있는 눈빛과 미소에서 첫인상은 결정된다. 둘 중 하나다. 강한 자신감이 드러나는 표정 혹은 상냥하고 부드러운 느낌. 전자는 전문직에서 선호하고 후자는 서비스업에서 선호한다. 나는 전자의 경우에 분명하고 똑 떨어지는 말투를 썼고, 후자의 경우에 늘 미소를 잃지 않는 것으로 칭찬을 받았다.

면접이 나를 보여주고, 나를 어떤 기준의 평가대에 올려 놓고 실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내가 회사를 평가하고 협상(연봉, 업무, 근무 조건 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요즘엔 채용 공고란에 나온 업무와 다른 종류의 업무를 시킨다거나 하는 사례들이 있으므로 제대로 꼼꼼하게 살펴 보아야 한다.

이력서든 면접이든 회사에 대한 사전 정보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데, 그것은 그 회사 입사를 강하게 희망하고 있다는 의미도 되고 준비성이 철저하다는 느낌도 줄 수 있다. 최소한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회사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면 면접관들의 질문의 요지도 빨리 파악할 수 있고, 대답에서 실수할 가능성도 훨씬 줄어들게 된다.

나의 경우, 면접관의 1차 합격 통지 통화에서 대화를 나누며 면접관의 스타일에 대해 파악하고 숙제를 받아본 경험이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같이 면접 보러온 사람들에게는 숙제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 나름으로 나를 부각시킬 기회이기도 하고 또 면접관이 나에 대해 거는 기대를 반영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면접 동안에도 면접을 같이 보는 이들과 친해질 수 있다. 나는 친구 사귀는 것을 워낙에 좋아하는 터라 평소에도 지하철에서도 외국인,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말을 걸고 친해지는 편이다. 같이 면접을 본 사람과 잠깐의 틈에 회사에 대한 정보도 더 얻을 수도 있고, 협력 관계를 만들어 갈 수도 있다.

한번은 그날 처음 면접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와 면접이 끝나고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같이 대표님이 준 명함에 있는 메일 주소로 업무에 관한 포부를 적어 메일을 날리자는 제안도 했다(이것은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 둘다 모두 면접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지금은 파란만장했던 6개월 가량의 백수 시절의 영광을 뒤로하고 한 출판사에서 ‘직딩’의 삶을 보내고 있다. 나는 백수시절이 참혹하고 고통스러웠으나, 부끄럽지는 않았다. 나의 백수 시절은 빛났으므로. 매일 새로웠고, 매일 꿈꾸었으므로.

백수 시절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노는 백수’냐
‘창의적인 백수’냐
‘잠재성 있는 백수’냐가 판가름 난다.

덧붙이는 글 | '다음' 취업 커뮤니티에 예전에 써서 올린 글 수정해서 올렸습니다. '꿈꾸는 백수'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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