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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아톤>에서 비장애인도 어렵다는 '서브스리'에 도전하는 자폐아 초원이
영화 <말아톤>에서 비장애인도 어렵다는 '서브스리'에 도전하는 자폐아 초원이 ⓒ 쇼박스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3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을 '서브 스리(Sub-3)'라고 한다. 세계기록이 2시간대를 위협하는 요즘이지만 아마추어 마라토너에겐 평생의 꿈이다. 더구나 이제 마라톤 '경력' 두 달 남짓인 햇병아리인 내겐 너무 어마어마한 단어다.

초원이의 '서브스리'와 햇병아리의 16km

지난해 10월 한겨레 신문 청소년마라톤대회 5km 코스에 무작정 참가하면서 나는 달리기라는 말보다는 마라톤을 즐겨 사용하게 되었다. 당시 5km는 너무 멀게만 느껴졌고, 완주하기까지 두려움이 앞섰다.

초원이가 달리는 이유는 뭘까? 10km 대회에서 3등상을 받은 초원이. 내 5km 기록과 같다.
초원이가 달리는 이유는 뭘까? 10km 대회에서 3등상을 받은 초원이. 내 5km 기록과 같다. ⓒ 쇼박스
무리하게 달리다 쓰러지기라면 어쩌나, 심장마비 걸려 죽기도 한다는데…. 하지만 이런 고민들도 잠시 난 어느새 골인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5km 비공식 기록 36분. 공교롭게도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초원이(조승우 분)가 참가한 마라톤 대회에서 10km를 뛴 시간과 같다. 기운 빠지는 순간이다.

당시 나는 목까지 숨이 차 5km를 완주했지만 10분도 안 지나 식어버린 땀에 못내 아쉬워하였다. 그리곤 "에~ 더 달려도 될 듯 하네" 하고선 피식 웃었다. 그때 얻은 멋모르는 자신감이 지금껏 달리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초원이는 왜 달리게 된 걸까? 엄마가 초코파이와 자장면 그리고 탕수육으로 유혹해서, 아니면 스치는 바람을 타고 자유로운 세상을 맛 볼 수 있어서?

요 몇 달 사이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마라토너로 통할 만큼 많은 변화를 경험하였다. 처음 5km를 시작으로 매번 뛸 때마다 조금씩 더 많이 뛰어 실력을 과시하려는 노력도 해보았다.

지난 일요일 아침 한강 둔치에서 햇병아리인 나는 겁도 없이 16km에 도전했고, 결과와 상관없이 스스로 대견해 하였다. 하지만 비장애인도 힘든 '서브스리'에 도전하는 초원이 모습 앞에선 눈물을 떨구고 고개마저 숙일 수밖에 없었다.

평소 나는 '달려라 하니'가 되어보는 느낌을 즐겼다. 초원이가 드넓은 초원을 자유로이 달리는 얼룩말을 보며 꿈을 키웠던 반면, 나는 많은 고민들로 머리가 아파오면 어김없이 달렸다. 몸을 혹사시키면 머리가 맑아져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로 달리는 것을 즐겼던 것.

<말아톤>에서 초원이 마라톤 코치가 경숙(이미숙 분)에게 "달리는 게 현실도피를 위한 거 아니냐? 사는 게 고달파서…" 하던데, 꼭 내 경험 같아 공감이 되었다. 정말 사는 게 힘들 때면 달렸던 게 바로 나였다.

결정적 만남, 손정욱 코치와 우리 훈련 대장님

초원이와 전직 마라토너 손정욱 코치의 운명적 만남.
초원이와 전직 마라토너 손정욱 코치의 운명적 만남. ⓒ 쇼박스
초원이 은퇴한 마라토너 손정욱 코치(이기영 분)와 운명적으로 만났듯이 내 주변에도 5년 가까이 마라톤을 즐겨온 훈련대장이 있다. 아마추어 마라톤 동호회 훈련대장인 그 분을 한 시민단체 모임에서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주말에 모임이 있는 날이면 얇은 운동복 차림에 운동화 한 켤레를 들고 등장하곤 했다. 우리들은 "아~ 마라톤 뛰고 오셨구나!" 짐작한다. 당시 대단하다는 생각보다는 저 힘겨운 싸움을 왜 하는 걸까? 참 재미도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그 재미없는 운동에 푹 빠져 산다. 어김없이 일요일 아침 7시 반에 시작되는 마라톤 연습에도 이제는 꾸준히 나가고 있다. 물론 훈련대장님의 지도로 처음 10km를 뛴 게 3주 전이다.

2주 전 일요일 아침 연습 때는 새벽녘 내리기 시작한 눈발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허나 우리의 아침 훈련은 어김없었고, 눈 온다고 연습을 게을리 하는 분은 없었다. 정말 독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마라톤의 묘미는 바람

양재천을 달리며 바람을 느끼는 초원이.
양재천을 달리며 바람을 느끼는 초원이. ⓒ 쇼박스
그런데 마라톤의 묘미를 한 가지 터득했다. 바로 바람이다. 영화 <말아톤>에서 공장에서 실습하던 초원이가 선풍기를 틀어놓고 제자리에서 뛰는 장면이 나온다. 양재천 둔치를 달리며 바람을 맞던 기억을 떠올리는 듯했다.

하지만 맞바람을 맞고 뛰는 것과 바람을 등지고 뛰는 속도와 느낌은 하늘과 땅 차이다. 바람이 심한 날이면 마치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듯하다. 원래 기운이 넘치는 초반 바람에 맞서고 힘이 떨어지는 후반에는 바람을 등지는 게 수월하다고 한다.

지난 일요일에는 맞바람이 왜 그리도 밉던지. 평소 뛰는 10km 연습 거리를 넘긴 뒤에는 맞바람 맞서 뛰기는커녕 걷기조차 힘들었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좀체 움직이지 않는 무거운 발이다. 초반에 너무 힘을 쏟다보니 기운이 빠진 탓이다. 전날 밤늦게 이삿짐을 옮기느라 몸을 혹사했다고 위안도 삼아보지만 소용없었다.

초원이는 마라톤을 통해 자유와 삶의 의지를 깨닫는다.
초원이는 마라톤을 통해 자유와 삶의 의지를 깨닫는다. ⓒ 쇼박스
어쨌든 나는 출발지점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침 해장국 생각이 간절했다. 초원이가 엄마에게 칭찬을 들어야 했고, 그래야 엄마가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처럼.

지나가는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제일 부러웠다. 손을 흔들어 "태워주세요~ 제발~"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기운도 빠져버렸다. 땀으로 젖은 운동복은 최대의 적이었다. 추운 날씨에 땀이 식으면 체온은 극도로 떨어진다. 온기를 유지하려면 계속 뛰어야 했지만 어림없었다. 결국 마지막 500m를 앞두고 나를 구조(?) 하려는 지프차가 달려왔다.

그래도 나는 16km에 도전했다고 당당히 말하련다. 이제 하프(20km) 코스 도전도 금방이라고 동호회 분들까지 입을 모아 부추긴다. 이제 마라톤은 내 삶에 생기를 주는 움직임 중 하나다. 엄마의 욕심이 아니라 초원이 스스로 마라톤이 주는 자유와 삶의 의지를 깨닫게 되었듯, 마라톤은 내 생애 귀중한 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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