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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공중파보다 케이블 채널을 보는 시간이 더 늘었다. 오락과 드라마가 주종을 이루는, 게다가 시간대별로 경쟁이라도 하듯 비슷한 프로그램을 깔아 놓는 공중파가 그다지 끌리지 않기 때문이다. 케이블 채널 가운데 '디스커버리' 채널은 히스토리 채널과 함께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이다. 하루 종일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는 이 채널에는 자연, 과학, 의학, 역사, 정치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다양한 방송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서도 내가 가장 즐겨보는 것은 역사 분야로 'Undiscovered History'이다. 미궁에 빠진 역사의 고리를 고고학자와 함께 찾아 보는 이 프로그램은 흥미진진 그 자체다. 가설과 추리만이 아니라 직접 검증해 보고 과연 그 시대에 가능했겠는가를 실증적으로 따져 본다. 또한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의 의학을 빌어 뼈의 DNA를 조사해 입증하기도 한다.

과학 장비를 총동원한 역사 추리, 실험과 실증이 뛰어난 다큐멘터리들

▲ 베를린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네페르티티의 흉상
ⓒ 이영미
'Undiscovered History' 분야에서 제일 재미있게 본 것은 전설의 여왕 네페르티티 편이다. 네페르티티는 이집트 제18왕조 최대의 권력을 누린 여왕으로 흉상만 발견되었을 뿐, 미라는 발견되지 않았다. 2003년에서야 영국 요크대학 고고학 팀에 의해 그동안 'KV55'라고 이름 지어졌던 미라가 네페르티티임이 밝혀졌다.

영상은 고고학팀이 이 미라가 네페르티티임을 입증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미라가 강한 칼날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점, 미라를 싼 천이 당시 왕족들만이 사용한 고급천이었다는 점, 최상의 약품으로 만들어진 미라라는 점, 미라의 팔이 강제로 꺾여진 것은 파라오나 여왕 같이 최고위 왕족 미라에서만 볼 수 있는 방식이라는 점을 들어 미라 KV55의 정체를 마침내 밝혀냈다.

과학적 장비도 엄청나게 동원됐다. 유골 분석을 통해 사망의 원인을 밝혀냈고, 두개골을 입체적으로 환원시켜 현재 국립베를린박물관에 소장된 네테르티티의 골격과 거의 일치한다는 시뮬레이션을 보여 주었다. 한치 한치 과학과 역사과 접점을 이루며 흥미를 끌어 당긴 프로그램이었다.

중국이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먼저 밟았다?

▲ <1421 중국, 대륙을 발견하다> 의 한 장면
ⓒ 디스커버리채널
지난 일요일(2월 6일)에는 한편의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가 2시간에 걸쳐 방영됐다. 바로 <1421, 중국이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이는 개빈 멘지스의 책을 기초로 한 다큐멘터리로, 멘지스는 이 책에서 중국 명나라의 장군 정화가 사상 최대의 함대를 이끌고 콜럼버스보다 71년 전에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고 주장했다.

이 프로그램은 1부에서는 멘지스의 주장에 따라 중국을 출발해 희망봉을 지나 카리브해 연안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는 원정길을 따라가 보았다. 2부에서는 멘지스의 이론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중국이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는 주장의 근거는 한 장의 지도에 있다. 멘지스는 옛날 해도 한장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1424년'이라는 연도와 '주아네 피치가노'라는 서명이 있었다. 이 해도에는 카리브해에 있는 푸에르토리코와 과들루프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콜럼버스 이전 70년 전에 누군가 이 섬들을 자세히 탐사했다는 말이 된다. 15세기 초의 역사를 추적해 보자면 유럽도, 아랍도 그럴 여력은 없었다. 오직 중국만이 가능했고, 그 시기는 1421년부터 23년까지 있었던 중국 명나라 정화함대의 제6차원정과 맞아떨어진다.

주장과 반론이 교차하는 흥미로운 구성

▲ 저자 멘지스. 그는 해군장교 출신이다
ⓒ 디스커버리채널
주장과 반론이 교차하는 2부는 매우 흥미진진했다. 예를 들면 정화 함대가 주둔했으리라고 짐작되는 북아메리카 지역 원주민들의 유전자 DNA는 중국인과 흡사했다. 멘지스는 이를 정화 함대가 주둔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알래스카 대륙을 건너간 고대의 동양인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또하나의 쟁점은 현재 베니스에 소장되어있는 프라 마우라가 제작한 지도다. 이는 당시의 보기 드문 세계 지도였는데 이 지도에는 ‘배 한척이 희망봉을 지나 그린란드 바다로 나아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아메리카대륙으로 나아간 배가 있었음을 암시한다는 것이 멘지스의 주장이다. 이 지도는 이탈리아 모험가이자 상인인 니콜로 다콘티의 경험에서 온 것이며, 다콘티가 인도에서 정화함대를 만났고, 아프리카까지 함께 항해했으며 중국까지 함께 갔다가 본국에 돌아왔다고 멘지스는 주장한다.

반면, 반대하는 주장은 다콘티가 인도에서 중국 배를 보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정화의 배라는 증거도, 함께 여행했다는 기록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도에 남겨진 기록만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어느 배가 도착했다는 것을 증명할 길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의 바탕에는 정화 함대의 기록이 사라져 버린 데 있다. 영락제가 죽자 명나라의 해외 팽창 정책은 갑자기 수정되었고 그 이후 바다로 나서지 않았다. 또한 정화의 해외 원정을 시기한 관료들은 모든 항해 기록 일지를 불태워 버렸다.

한 역사학자는 말한다. 정화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느냐, 아니냐를 일단 접어두고 현재 입증할 수 있는 사료만으로 검토해 본다 하더라도 그 시대에 그렇게 거대한 함대를 이끌고 세계의 바다를 항해했던 것은 지금껏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임은 분명하다고.

디스커버리 채널은 차이나 채널?

▲ 디스커버리채널 아시아판 홈페이지(http://discoverychannelasia.com/_home/)
ⓒ 디스커버리채널
드라마와 오락이 주인공 자리를 차지해 버린 지상파 방송보다는 디스커버리 채널은 많은 즐거움을 준다. 세계적인 프로듀서, 프로덕션, 방송사들이 만든 것이라 프로그램도 우수한데다 화질도 뛰어나다. 볼 수록 아는 것도 많아진다. ‘음… 저렇게 기계 하나로 연대를 추적하는 군…’ ‘DNA 조사를 해보니 영국인들은 대부분 노르웨이 바이킹의 후예로군…’등등 지식의 기쁨이 듬뿍이다.

하지만 옥에도 티가 있으니, 도무지 디스커버리 채널의 편성표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겨우 겨우 편성표를 찾아냈는데, 알고 보니 한국의 디스커버리 채널은 독자적인 홈페이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 공중파에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도 하는 나라인데, 디스커버리 채널도 홈페이지 하나쯤 낼 때가 되지 않았나? 디스커버리 채널의 PP사는 C&M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한다.

디스커버리 채널의 프로그램들을 알려면 일단 'http://discoverychannelasia.com/_home'
에 가야한다. 프로그램의 자세한 소개는 물론 영어로 되어 있다. 한국 내의 별도 법인은 없고, 싱가폴에 아시아 지사가 있다. 중국권을 중심으로 한 방송이어서인지 프로그램 스팟 광고 시간은 방콕이나 홍콩 기준으로 표시될 때도 많다. 이번 구정 연휴에는 ‘중국의 가장 큰 명절을 축하한다는’ 기본 스팟이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와서 눈에 거슬렸다. 물론 한국에서도 명절이다. 서양인의 시각에선 한국은 아직도 중화권의 한 나라일 뿐일까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디스커버리 채널은 프로그램에서 만큼은 흠잡을 곳이 없다. ‘풀리지 않은 역사’ ‘아시아의 시간’ ‘최고를 찾아서’ 등은 지금껏 접하지 못했던 훌륭한 다큐멘터리다. 오는 11일에도 흥미로운 역사 다큐멘터리가 방영될 예정이다. <로마, 중국의 사라진 도시>(밤11시)에서는 2천년 전 존재했다는 로마인 집단 거주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질 예정이라 한다.

이 글을 쓰다가 디스커버리 채널 편성표를 보는 가장 편리한 사이트를 발견했다. http://ssrnet.snu.ac.kr/~gypark/offview/catv/conv_102.html이다. 가장 보기 좋고 알기쉽게 정리되어 있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이들은 이곳을 이용해 보면 좋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역사, 문화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시민이다. 케이블 텔리비전의 시청자 서비스가 좀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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