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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설 대목은 예년에 비해 물이 오른 듯하다. 연일 경제가 힘들다고 하던 뉴스가 이번에는 왠일인지 모처럼의 '설특수'를 맞았다며 재래시장으로, 할인마트로 카메라의 초점을 맞춘다.

그 부산한 모습들이 거품은 아닌 듯 싶다. 내가 사는 시골마을 5일장에도 다른 때보다 훨씬 바쁜 발걸음과 손길로 붐비는 모습들이다. 차례상에 오를 조기며 돔배기를 파는 생선전에서도, 사과, 배, 귤이 광주리에 놓일 틈도 없이 팔려 나가는 과일전에서도 활기가 느껴지니 말이다.

시장을 찾은 발걸음이 덩달아 신이 나있는데 시장 한켠에서 달콤한 냄새가 난다. 강정이다. 시장 귀퉁이 방앗간에서 강정을 만들어 파는데 그 냄새가 참 달다.

강정 냄새에 끌려가다가 뭔가가 그만 울컥 가슴으로 치밀어 오른다. 입덧을 했던 기억처럼 꼭 반드시 누가 한 것을 먹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뭉쿨한 그맛의 기억을 더듬어낸다.

영기형의 강정! 그 두툼한 손으로 튀긴 쌀에 물엿을 흠씬 발라 솜씨좋게 네모판에 딱딱 내리치고는 굳기 직전에 네모 반듯이 칼집을 내서 만든 '이영기표' 강정!

설날이나 추석이 되면 강정 만들어 일년치 쓸 돈 벌었는데 그 돈을 자기의 구릿빛 얼굴만큼 빛나게 썼었지. 새로운 청년회장, 민주주의 민족통일 대구경북연합 의장, 민중연대 공동대표 겸 집행위원장, 통일연대 상임대표 등등 그 힘겨운 명함들을 꾸려가기 위한 자금.

생전 고인의 모습
생전 고인의 모습
텁텁한 목소리로 "강정 안 사나?"며 한마디 툭 던지는 그의 강정을 사지 않고는 못배기는 것은, 3만5천원의 월급을 받고 맞아가면서 배운 부천 과자공장의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진 기막힌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진한 인간미가 배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먹어 본 사람이라면 다 알거다.

지난 여름 간암으로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명절이 오면 어김없이 이영기표 강정을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이제는 고인의 별명이 된 불혹의 산수유처럼 참 굵고 짧게 산 젊은이, 불의 앞에서는 불같지만 만인의 평등 앞에서는 한없이 평온한 이영기형의 웃음과 진실이 배인 강정이 먹고 싶다.

영기형이 묻힌 현대공원 묘지에서는 올해부터 단내가 솔솔 풍겨올 것 같다. 함께 누운 영혼의 동지들에게 설맞이 강정을 해 줄 것 같아서. 영기형! 형이 해 준 강정 먹고 싶어!

덧붙이는 글 | 이영기씨는 새로운 청년회장, 민주주의 민족통일 대구경북연합 의장, 민중연대 공동대표 겸 집행위원장, 통일연대 상임대표를 맡아오다가 지난 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대구 민중운동사의 큰 족적을 남긴 이 시대 참 인간이었습니다. 

경북 금릉군 하강리에서 4남매의 맏이로 태어났으나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힘겹게 지내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월급 3만 5천원의 과자공장에서 일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팠기에 실컷 먹을 수는 있겠다는 한 가지 생각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일본인 기술자에게 얻어 맞아가며 이를 악물고 과자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기술로 제과공장에 취업해서 돈을 벌었지만 이 땅의 노동현실을 몸으로 체득했으며 이후 고향인 대구로 내려와서 현장 활동가로 일했습니다. 그는 동료들에게 우직하고 변하지 않는 동지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대구경북 오마이뉴스> 바로가기→dg.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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