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불기 2955년으로 표시된 돌솟대를 보고 실제 불기와 몇 백 년 차이가 나는 것에 의문을 품은 적이 있습니다. 이곳에 구경 온 스님에게 물어 보았더니 잘 모르더군요. 이곳에 거주하던 스님 한 분이 답을 주었습니다.
석가모니 입멸 후 점을 찍어 연도를 표시하다 보니 생긴 오류라고 하더군요. 최근에야 다시 알게 된 내용이지만 석가모니 탄생과 입멸에 대한 기록의 부재와 연도표시의 오류에서 생긴 일이며, 이제는 국제적으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불기 연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금강산의 사찰을 돌며 임진왜란 때 승병을 조직한 사명대사의 비였습니다. 13년 전 처음 보았을 때는 일제에 의해 세 조각이 난 채 땅에 나뒹굴고 있었는데, 몇 년 후 다시 와보니 복원되어 있더군요.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지금 생각하니 이때 금강산에 처음 와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이곳은 금강산의 초입에 해당하고 절 이름도 금강산 건봉사인 것처럼, 넓게 보아서는 금강산의 영역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덧 차는 화진포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군 휴양소로 지정되어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었던 곳인데 일반인에게 공개되면서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김일성 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더구나 이승만 별장, 이기붕 별장도 남아 있습니다. 구태여 이곳 경치의 아름다움을 다른 방법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통치자들의 별장이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 전 38선 이북이었던 이곳이 전쟁 후 남한의 영토가 되면서 남북 지도자의 별장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 거죠. 최근에 김일성 별장을 보수, 수리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기억으로 이곳 별장에서 찍은 김정일의 어릴 적 사진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휴전선은 없다
백담사, 건봉사, 화진포 모두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의미 있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차는 이내 점심 식사가 예정된 금강산 콘도에 도착했습니다.
식사 후 통행증을 받기까지 약 1시간 이상 자유시간이 있었습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이곳의 경치도 아름답기는 하지만 이곳에서 보내는 1시간이 꽤 아쉽게 생각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화진포나, 아니면 출입국 관리소가 있는 통일 전망대에서 시간을 보내게 했으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출입국관리소가 있는 통일 전망대에도 여러 번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망원경을 통해 또는 육안으로 금강산을 바라보았던 아쉬움이 기억납니다. 멀리 보이는 낙타등처럼 보이는 구선봉과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로 알려진 상팔담이 어렴풋이 보인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철조망의 무게에 눌려 아쉬움을 지닌 채 이곳을 떠나곤 했습니다.
바라보기만 했던 그곳 금강산을 이제 육지를 통해 가게 되었습니다. 민통선, 북방 한계선, 휴전선, 북측의 남방 한계선을 차례로 지날 생각을 하니 가슴 속에는 기대감과 함께 무엇인지 모를 긴장감에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긴장 속에 드디어 차는 휴전선을 넘기 시작했습니다. 차 안에서 현대 측 안내원이 휴전선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휴전선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것이었죠.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휴전선은 철조망으로 되어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차를 타고 통과하면서 본 휴전선 표시는 녹슨 철판 표지판,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휴전선은 단지 그것을 알리는 작은 푯말 하나에 불과할 뿐, 그 동안 TV를 통해서 본 철책선은 북방 한계선을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휴전선을 기점으로 남북 각각 2km지점에 남한의 북방 한계선과 북한의 남방 한계선이 이중 철조망으로 각각의 경계선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는 말 그대로 비무장 지대인 것이죠. 다시 말하면, 휴전선이 철조망이 아니라 남측과 북측의 경계선이 철조망이었던 것입니다. 군에도 다녀왔건만 이제야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을 지나면서, 전에는 통일 전망대에서만 볼 수 있었던 낙타등 모양의 구선봉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과 금강산이 말 그대로 개골산 즉 바위산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북측 한계선을 지나 북한 군인의 검문이 있었습니다. 인원수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딱딱한 모습이어서인지 우리 학생들의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이곳을 지나니 이제는 북한의 영역입니다. 멀리 북한의 마을이 보이고 걷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울타리가 처진 찻길 주변에는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부동자세로 선 북한 군인이 버스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촬영을 감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곳은 군사시설이 있는 지역이니 촬영을 철저히 통제한다고 했습니다.
세계 어느 곳이나 군사지역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니 이해가 되기도 했으나, 사실 군사 시설이 쉽게 노출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보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정확한 사실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이들의 딱딱한 모습에서 이곳이 북한 땅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초 2박 3일 동안의 금강산 기행기의 세 번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