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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하필 이 글을 쓰려고 준비하던 중, 서글프고도 기막힌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다발성 신경장애(앉은뱅이병) 환자로 판명된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 이 여성들은 밀폐된 검사실에서 유독 물질인 노말헥산으로 LCD 완제품의 불순물을 닦는 일을 했다.

보호복·마스크 등 안전장구는 전혀 없었고, 노말헥산의 유독성에 대한 어떠한 주의사항도 듣지 못했다. 공장 안의 냄새가 너무 심하다고 하소연했지만 회사 측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태국인 여성 노동자 8명은 병이 들고, 마침내 세 여성 노동자는 앉은뱅이가 된 몸으로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행히 많은 이들의 용기와 정성, 희생으로 이들은 다시 한국에 입국하여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또 다른 뉴스가 들렸다. 한국 여성들과 외국인 강사들의 문란한 ‘파티’ 사건이다. 세상은 또 시끄러워졌다. 그 바람에 우리의 새해는 국제화 시대답게(?) 인종, 피부색 문제로 인한 소동 탓에 경건하거나 유쾌하지 않았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이런 어이없는 편견과 가당찮은 우월감의 굴레 속에 우리의 어린이들도 갇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인 노동자 가족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는 심심찮게 아이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고 욕설도 오간다.

만약, 그 어린 이방인들이 백인이었다면, 우리 아이들이 그리 얕잡아보고, 말과 주먹을 함부로 휘둘렀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우리 아이들이 일방적 학습, 왜곡된 교육, 굳어진 편견 등을 통해 습득, 세뇌된 것에 따라 백인에 대한 부러움과 아울러 그렇지 못한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갖게 되고, 결국은 자신보다 피부색이 검고 키가 작으며 가난한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며 열등감을 보상하는 심리로 어긋나게 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마음은 얼마든지 새롭게 가꿀 수 있다. 그 아름다운 변화의 가능성은 ‘책’을 통한 ‘열림, 깨우침, 실천, 하나됨’이다.

외국인 노동자 인권문제를 어린이들의 시각으로 바라 본 다섯 편의 동화 모음집, <블루시아의 가위 바위 보>는 이런 의미에서 귀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가 펴낸 이 동화책은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펴냈던 김중미씨를 비롯하여 박관희·박상률·안미란·이상락씨가 참여했고, 그림은 윤정주씨가 맡았다.

다섯 가지 이야기들은 동화 형식이지만, 현실을 기록 필름처럼 그대로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라고도 할 수 있다. 생생한 현장 이야기, 억지 동정이나 연민, 눈물이 아닌 우리 스스로 부끄러워하게 되고, 그들에게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 모든 외국인 노동자의 일기 같은 동화다.

첫째 이야기, ‘반 두비’(김중미)는 특히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부각하여 이야기한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디아나와 민영이는 크고 작은 문화적 갈등 속에서 자기들 나름대로 생활관습, 정치, 종교문제까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런 것들보다 더 소중한 것이 사람이며,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주 특별한 하루’(박관희)에서 수진이는 어른들에게 잘못 듣고 배운 선입견으로 몽고 아이, 빌궁을 괴롭힌다. 수진이가 이러는 것은 공장 사장인 아버지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극히 이중적인 태도로 대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렇다고 수진이 아버지인 사장의 인생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 밑에서 힘들게 일하는 빌궁의 부모가 오히려 평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어른들이 갖고 있는 모순과 편견, 그것이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혼자 먹는 밥’(박상률)과 ‘마, 마미, 엄마’(안미란)는 베트남 노동자와 그 가족이 등장하는 동화이다. 아이들조차 ‘불법’이라는 말을 알고, 그것을 이용하여 외국인 노동자 가족의 어린이들을 괴롭히는 이야기인데, 무조건 그들을 차가운 심판대에 올려놓고 저울질하는 어른들의 메마른 가슴과 값싼 우월감을 숨기지 않고 고발한다. 읽어 가면서 우리의 얼굴과 목덜미가 부끄러움에 붉어질 것이다.

마지막 동화인 ‘블루시아 가위 바위 보’(이상락)는 잔잔하면서도 눈물이 핑 도는 이야기다. 우리의 언니 누나들이 독일 간호사로 갈 때 준호의 고모도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성공하여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갖은 고생을 했다. 그 오래 전 타국에서 겪은 외로움, 배고픔, 차별대우 등을 다 겪어 낸 고모이기에 동네 공장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노동자 청년들을 형제처럼 대한다. 청년, 블루시아도 그때 알게 되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준호는 어린이지만 지구촌 사람이 함께 마음을 나누며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블루시아가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다. 이 고통 속의 외국인 노동자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책으로만 묶어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는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은 ‘그들이’ 이웃으로, 동료로 지내고 있다. 온 가족이 읽으면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사랑도, 배려도, 실천도 아름다운 지식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블루시아의 가위 바위 보>가 바로 그 선행의 안내자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2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

김중미 외 지음, 윤정주 그림,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창비(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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