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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들놈이 무엇이든 잘 먹는 것을 지켜보는 순간만큼 행복한 때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즘 성현(5)이 놈이 그렇습니다.

"엄마, 나 돈가스 먹고 싶어요." "아빠, 나 빵 먹고 싶어." "아, 볶음밥 먹고 싶다." "나, 우유 많이, 많이 먹고 자야지." "배 고파요. 과자 사 주세요." "어, 치킨 냄새 좋~다."

이렇듯 요즘 녀석은 언제나 먹는 타령 뿐입니다. 그런데 제 엄마나 나나 없는 살림임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먹는 타령이 그저 대견하고 기특하기만 합니다. 녀석이 먹는 타령을 하면 우리는 그저 대책 없이 흐뭇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모릅니다. 녀석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 형과 아우는 이번 설 쇠고 나자 이렇게 의젓해졌답니다
ⓒ 김영태
사실 이 놈이 갓난 애기 때부터 먹는 것 때문에 우리 마음을 얼마나 애태우게 했는지요. 그저 밥상머리에서 녀석에게 "좀 먹어 주십사"하고 통사정을 할 만큼 속을 상하게 하던 놈이 이제야 비로소 제 스스로 이것 저것 먹는 것 찾고, 또 먹고 나서 금새 또다른 먹을 거리를 찾고 하니 얼마나 기쁜 마음이겠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요즘 녀석은 양 볼에 살도 통통하게 오르고 키도 조금은 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녀석의 변화는 이러한 외양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가령 말소리만 해도 그렇습니다. 녀석은 이전의 옹알대는 듯한 갓난 애기 말소리를 어느 정도 벗어나 이제는 제법 또렷하게 말을 합니다. 거기에 따라 자기 주장도 아주 다양하고 명확해졌습니다. 녀석이 쑥쑥 커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이지요.

그러나 이 모든 외적 성장보다 더 놀라운 점은 요즘 녀석의 속마음이 한없이 크고 넓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어제는 하나 남은 사탕을 제가 먹으려다가 동생이 달라고 옆에서 찡얼대자 몇 번 망설이는 듯 하다가 기어이 제 입 속으로 거의 들어가려던 사탕을 쑥 빼더니 말없이 제 동생 입에다 넣어 주었답니다. 아, 그 순간 난 얼마나 놀랐는지요. 이놈이 벌써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을 위할 줄 알다니 그 얼마나 대단한 마음 씀씀이입니까. 엊그제까지만 해도 무엇이든 맛있고, 좋고, 이쁜 것은 온통 자기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동생이 어쩌다가 꼬집거나 머리카락을 잡아 당겨도 예전 같으면 큰 소리로 엉엉 울면서 그 즉시 매서운 주먹을 날렸을 텐데 이제는 "아파, 하지마"하거나 "너 한번만 더 그러면 혼난다"하고 아주 어른스럽게 타이르곤 맙니다. 성현이 놈의 이런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녀석 앞에서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곤 합니다. 왜냐하면 녀석의 이런 어른스러움(?)에 보여질 제 아비의 모습에 영 자신이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런 모습보다 더 내 마음을 찡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녀석이 온전히 제 엄마 품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동생에게 그 품을 순순히 양보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겁니다. 사실 어린애에게 있어 세상에 제 엄마 품만큼 따뜻하고 안온하고 그립고 편한 곳이 또 있을까요? 그런만큼 그 품만큼은 언제까지나 자기만이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현이는 잠 잘 때나, 혹은 우유를 먹을 때, 거실에서 놀 때도 이제 더 이상 제 엄마 품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는 이미 동생에게 양보해 버린 셈이죠. 그래서 이전에는 엄마 품에 꼭 안겨 잠자던 놈이 이제는 한쪽으로 떨어져서 의젓하게 잠을 청합니다. 우유도 예전과 같이 포근하게 엄마 품에 안겨 먹기 보다는 제 스스로 들고 먹습니다.

그렇지만 속마음까지 이렇게 아낌없이 제 어미 품을 포기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령 동생이 제 어미 품에서 우유를 먹을 때, 그 옆에서 동생하고 가볍게 손장난을 하는 녀석의 표정에는 여전히 제 어미품을 그리는 모습이 역력히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다가도 녀석은 어디가 아플 때나 하면 어김없이 제 어미 품에 폭 안겨서 어린애처럼 옹알대곤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동생이 질투라도 하는 모습을 보이면 평상시엔 그렇게 양보 잘하던 놈도 이런 때는 가차없이 무시해 버립니다. "넌 매일 엄마가 안아주잖아"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순간이고 녀석은 동생이 조금만 더 떼를 쓰면 이내 동생에게 제 엄마품을 선선히 양보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어른스러워진다는 것, 스스로 커 간다는 것은 우리 성현이 놈과 같이 소중한 제것을 세상에 내 놓는다는 것 같습니다. 자기의 소중한 것을 덜어서 남에게 줄 수 있는 용기, 혹은 제 것을 모두 양보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게 바로 우리가 성숙해지고 있는 증거가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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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기자'라는 낱말에 오래전부터 유혹을 느꼈었지요. 그렇지만 그 자질과 능력면에서 기자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많은 시간을 망설였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일단은 사회적 목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생각도 이야기 하는 게 그나마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치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저 글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고 책임감있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는 글쓰기 분야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자 자주 써온 일기를 생각할 때 그저 간단한 수필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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