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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나라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삼성네트워크, 현대네트워크, 화성인네트워크라도 활용해야 된다는 차원이지, 삼성의 힘을 이용해서 대사를 더 잘할 수 있다고 한 건 아니다."

주미대사에 임명된 홍석현(57) 전 중앙일보 회장은 자신의 공직진출과 관련,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삼성배경론'에 대해 이같이 일축했다. 또 '삼성네트워크 활용' 발언과 관련, 나라를 위해서라면 외계인 네트워크라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적극적 해석으로 맞섰다.

홍 대사는 오는 22일 현지 부임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외교부 출입기자들과의 기자회견을 비롯, 여러 언론에서 이미 인터뷰를 마친 터라 취재진이 '제목이 좀 산뜻하게 나올 수 있도록 뉴스거리를 달라'는 부탁으로 인터뷰는 시작됐다.

19일 오후 중앙일보 사옥 20층 회장실 접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홍 대사는 "긴장을 너무 하고있는 탓인지 신문사를 떠나는 게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주미대사로서 자신의 가장 큰 장점으로 '미국 주류사회의 신뢰감'을 들었다. 풍부한 국제활동 경험과 경력, 미국내 지인관계 등을 볼 때 미국 주류사회가 대화할 수 있는 사람으로 신뢰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홍 대사는 주미대사 추천에 대해 "100% 대통령 아이디어로 알고 있다"고 전한 뒤 "지난해까지 모두 4번 만났고, 단 둘이 만난 적은 없다"며 "개인적 친분이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기업인으로서, 학자로서, 언론인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했던 그는 신문사 발행인으로서 언론계 생활을 가장 보람있고 적성에 맞았던 일로 꼽았다. 평소 '일류신문, 일류국가론' 주창자답게 홍 대사는 앞으로 중앙일보의 위상과 그리 듣기 좋지 않았다는 조·중·동에 대한 솔직한 답변도 털어놨다.

그는 외국의 경우 '나라다운 나라가 섰을 때 이를 대표하는 신문의 이념이 어디에 가 있었느냐'는 의미에서 볼 때 "중앙일보는 더 왼쪽으로 가야 한다"며 "과도하게 우경화된 신문이 선진국으로 가는 우리 사회를 대표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진보언론이 미약한 우리나라에서 중도언론이 진보쪽 목소리를 더 많이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쟁지이면서 주미대사 임명 후 첫 인터뷰를 했던 <조선일보>에 대해 나름의 뼈있는 지적도 내놨다. '조선일보 문제점의 해답은 바로 조선일보 안에 있다'고 일갈한 그는 "과거에 생각이 다를 수 있는 인재를 품을 수 있었던 힘이 오늘의 조선일보를 만들었다"며 이념의 경직성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신문사 복귀 여부에 대해 그는 발행인이 아닌 직으로 돌아올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돌아오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경영일선까지 맡기겠다고 했지만 ▲파벌이 조성된다거나 ▲급격히 보수로 회귀한다거나 ▲우리나라와 독자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변화가 올 경우 언제든 독자로서, 대주주로서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정계 진출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홍 회장과의 인터뷰 요지.

"미국 주류사회의 신뢰감이 가장 큰 장점"

▲ 주미대사로 임명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인터뷰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 순화동 중앙일보사 회장 접견실에서 진행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최근 북핵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다. 6자회담이 유일한 해결창구라고 보는가.
"그동안 미국 대선에서 관심을 모은 국제문제는 대부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였다. 한반도 문제가 미국 대선의 핫이슈로 등장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케리 후보는 양자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부시 후보는 6자회담 틀을 강조했다. 이는 (부시의) 대선공약이기도 하지만 과거 북·미 양자가 진정한 의미의 대화를 하지 못했다. 만약 북한이 6자회담 틀에서 나오게 되면 미국은 상당히 유연성을 갖고 대화할 것으로 생각한다."

- 그러나 핵보유를 선언한 북한이 응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북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낼 묘안이 있는가.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기를 바라는 5개 당사국과 긴밀한 정책조율을 하는 과정이 우선 필요할 듯하다. 한 쪽에 미국·일본이 있다면 북이 편안하게 생각하는 중국·러시아도 있다. 북한도 미국이 됐든 한국이 됐든 대화를 통해 하고싶은 말을 다 하고, 북한도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본다."

- 지난 17일 중국을 방문했던 크리스토퍼 힐 미국 대사는 '북한이 6자회담에 끝내 나오지 않을 경우 5자들이 공동대응 할 수 있다'고 했다.
"공동대응이 꼭 무슨 제재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대화가 순조롭게 안되고 있는 것은 양자간 신뢰의 부족 아니겠는가. 특히 북과 미국 사이에 신뢰 부족이 있는데 5자간 정책조율, 그중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과 긴밀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입장에 있으니까 북을 위해서라도 북이 나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되지 않느냐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

- 주미대사 선임에 미국내 인사들과의 친분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안다. 라이스 국무장관과는 특별한 친분이 있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덴버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지만 스탠포드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하고 6년간 부총장을 해서 스탠포드와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나와 스탠포드에서의 개인적 인연은 없고 다만 공통의 친구를 많이 갖고 있다. 국무부의 경우 고위직이 완전히 임명되지 않은 상태인데 다행히도 힐 주한 미국대사 겸 6자회담 수석대표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될 것 같은데 서울시절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에번스 리비어 수석 부차관보가 한국 주미 대사관 차석으로 있을 때 교분을 쌓았다. 우리 대사관과 미 국무부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좋을 것 같다."

- 한미 양국의 동맹관계는 이상이 없는데 국민끼리는 서로 감정이 좋지 않은 것 같다. 한국내 반미감정과 미국내 반한감정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보는가.
"한국은 미국의 지대한 영향 속에 나라가 세워졌고 6.25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경제부흥 단계에서 미국과 뗄 수 없는 동맹관계가 됐다. 돌이켜보면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나름대로 미국과 갈등관계가 있었다. 최근 한미관계에서 반미-반한 감정의 표출은 우리와 북한의 관계가 질적으로 변하면서 일어났다. 91년 남북기본합의서 조인과 비핵화선언 이후 사실상 반공정책을 버리고 평화공조 정책으로 간 것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뒤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을 두고 우리 내부에서 갈등도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부시 정부가 들어섰고 미국의 북한 시각이 남쪽 보수세력과 맞춰지니까 한국내 진보세력이 미국을 보는 눈 등에서 과거와 다른 반미감정을 표출했다. 그게 미국TV를 통해, 상당히 과장된 면이 있었을 것이지만, 주한 미군사령관의 눈물까지 보도됐다. 그러나 참여정부 들어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고 외교라인이 동원되면서 양국의 공식관계는 간극이 없을 정도로 공고화됐다."

"노 대통령 단 둘이 만난 적 없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주미대사 직을 수행하는데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
"외교경험은 없지만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11여년을 보냈다. 또 기업인으로서, 학자로서, 언론인으로서 지난 20년 평균 잡아 (한해) 100일 안팎을 해외에서 체류할 만큼 국제적으로 활동해 왔다. 그러다 보니 외국 친구들도 많다. 개인역량보다 국제활동 경험, 지인관계, 경력 등을 볼 때 미국 주류사회에서 대화의 신뢰감을 갖는 게 큰 자산인 듯하다. 같은 말을 해도 '저 사람은 미국을 이해하고 미국의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 그런 신뢰에서 활동하는 게 장점이지 않을까 싶다."

- 주미대사 추천에 누가 가장 먼저 말을 꺼냈는가.
"주미대사로 홍 아무개를 해보는 게 어떠냐는 발상은 노무현 대통령께서 하셨다고 들었다. 물론 홍 아무개에 대한 얘기가 주변에서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주미대사직과 연결해서 말씀하신 것은 100% 노 대통령의 아이디어로 알고 있다."

- 노무현 대통령과는 개인적 친분이 있는가.
"전혀 없다. 만나본 게 몇 번 안된다. 첫번째가 세계신문협회장(2002년) 됐을 때 최학래 한국신문협회장께서 환영연을 해줬는데 대통령 후보시절이었다. 정계, 재계, 언론계 인사 등 여러분 오셨을 때 함께 만났다. 이어 한국신문협회장(2003년)이 됐는데 대통령이 취임 첫 해 '신문의 날'에 참석하는 게 신문협회 관례여서 그 분이 축사를 하고 내가 답사를 했다. 세번째 만남이 대담(2004년)이었고, 네번째가 대사직을 수락하기 위해 지난 12월 13일 청와대를 방문한 것이다. 지난해까지 모두 4번 만났고, 단 둘이 만난 적은 없다. 그래서 나도 놀랐다."

- 주미대사직을 처음 제의받았을 때 어떤 분들과 상의했는가.
"공교롭게도 중앙일보 미주판 30주년 기념식과 세계신문협회 이사회 참석차 지난해 11월 12일 출국했는데 4∼5일 전에 들었다. 그래서 우연치 않게 처음 의논한 사람은 만남이 잡혀 있던 도널드 그레이엄 <워싱턴 포스트> 회장이었다.

그레이엄 회장은 '나라마다 언론과 권력의 관계가 다르리라고 생각하지만 현재 미국 상황에서 그런 제의가 온다면 발행인과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을 것'이라며 '심사숙고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레이엄 회장의 의견은 전체적으로 부정적 느낌이 강했다.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한미관계가 쉽지 않을 텐데 친구가 고생하는 상황이 아닐까 걱정하는 소리로 들렸다."

- 반면 주미대사직 진출을 찬성하고 격려한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미국 워싱턴에서 변호사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사주 발행인 거동의 신문에 대한 영향 등 일반론으로 보면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친구로서 너무 잘 아니까, 신문사 발행인으로 있으면서 여러가지 일을 했고 세계문화오픈 등의 열정도 아니까 나라가 어려운 때 한번 해보는 것도 좋다고 했다. '이미 나한테 의논하는 네 마음을 읽어보니 움직일 것 같다'면서 '밀어주겠다'고 얘기하더라(웃음)."

"정계로 들어갈 가능성 전혀 없을 것"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이번 공직 진출을 '신정경유착, 신권언유착'이 될 것으로 우려하는 비판도 있다.
"그 몫은 내가 아닌 중앙일보에 남아있는 분들의 몫이 될 것이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얘기하듯 신문은 지면으로밖에 얘기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국내직이었다면 임명직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기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어려운 때이고 주요한 외교직이기 때문에...하지만 중앙일보 제작진이 잘 할 것이다. 독자들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 '삼성'이라는 배경이 없었다면 주미 대사직에 나가지 못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건 그 분들의 생각이다.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삼성네트워크 활용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있는데, 당시 답변의 취지는 '구태여 삼성인맥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는 쪽이 강했는데 그렇게 나갔더라(웃음). 나라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삼성네트워크, 현대네트워크, 화성인 네트워크라도 활용해야 된다는 차원이지, 삼성의 힘을 이용해서 대사를 더 잘할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없다. 삼성과의 관계는 누나와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는 한 계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다. (삼성배경론은) 노 대통령이 한 인사니까 대통령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정확할 것이다."

- 언론계, 신문사를 떠나는 심정이 남다를 텐데.
"한 달 모자라는 11년을 중앙일보에서 재직했다. 아직 실감이 안난다. 비행기를 타면 실감나지 않을까 싶은데, 뭐라고 할까, 앞에 닥친 큰 과제를 안고 떠나니까 긴장을 너무 하고 있는 탓인지 떠난다는 생각이 가슴에 와닿지 않는 것 같다."

- 중앙일보에 와서 섹션신문, 가로짜기 등 여러가지 변화를 일으켰고 외형적으로 진일보한 신문으로 키웠다고 평가했는데 어떤 성과와 아쉬움이 있었나.
"신문의 외형적 개혁, 질을 높이는 작업을 꾸준히 했고 고별사에도 '자타가 공인하는 일류신문으로 거듭났다'고 썼지만 사실 내 자신부터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변해야 된다'는 독자 요구와 함께 아직 일류가 되지 않았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인식을 중앙일보 식구들이 갖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일류신문론을 펴면서 언론계 내부에서도 같이 일류신문론을 펴는 신문이 나왔고, 서로 경쟁하다 보면 한국에서도 훌륭한 신문이 나오지 않겠는가."

- 혹자는 중앙일보 회장 이상의 사회적 입지나 성취를 얻을 게 없다고 판단, 대사직에 적극 나섰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종이신문이라는 게 성장산업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지난번 도널드 그레이엄 회장을 만났을 때 <워싱턴포스트> 이사회 멤버이자 미국에서 빌 게이츠 다음으로 부자인 워렌 버핏의 얘기를 했다. 워렌 버핏은 '70∼80년대 중반까지 신문은 대단히 돈도 잘 벌고 좋은 사업이었고 지금도 경영만 잘 하면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사업'이라고 얘기했다고 해서 고무받았다.

설사 사양산업이라고 해도 1등은 항상 번영하는 법이고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 국민의 저력과 국가의 앞날을 밝게 보는데 앞으로 (1인당 국민소득을) 2∼3만불까지 만들어낼 것으로 본다. 그런 시대가 왔을 때 주요 신문은 영향력도 크고 경제적으로 튼튼한 기반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신문이라는 빠져가는 배에서 스스로 뛰어내렸다'는 것은 좀 심한 표현 같다. 다만 신문 이외 다른 활동으로 만족을 취하고 싶다는 점은 있었다."

- 다시 신문사로 돌아와도 '발행인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는데 신문사 복귀 가능성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도 곤혹스러운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온다는 심정으로 담담하게 떠나 주미 대사직에 충실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랬더니 '다시 온다면'이라고 묻길래 '신문사 발행인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데 한번 떠났기 때문에 꼭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정계로 들어갈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이다. 신문사의 직을 갖되 경영도 일차적 책임은 맡기고 싶다."

"신문이 아무리 사양산업이라도 1등은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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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정부 출범 이후 조·중·동 또는 조선·동아일보의 비판이 공정하다고 보는가.
"한미관계에서도 얘기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처럼 나라와 나라도 그런데 권력과 언론 사이에도 감정이 있다. 오는 감정이 나쁠 때 가는 감정이 좋을 수 없다. 사실 독자를 상대로 해서는 감정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우리는 덜 하겠지만 특히 조선·동아일보의 경우 참여정부를 지지하는 '안티조선'들이 드러내놓고 반대하면 나라도 그런 감정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큰 신문으로서 먼저 정도를 가는 것도 있겠지만 오고가는 게 정리될 필요도 있다."

- 주미대사 임명 뒤 조선일보와 처음 인터뷰했는데, 인터뷰 제의가 왔을 때 고민은 안했나.
"아니다. 상당히 고민했다. 그래서 우리 스태프와 협의도 했고…."

- 조선일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취재력, 근성, 편집기술 등에서 대단한 저력을 갖고 있는 신문이다. 조선 인터뷰 기사에선 보도가 되지 않았지만 조선일보 기자가 조선일보 문제점을 지적해달라고 10분 이상 질문해서 곤혹스러웠다. 술좌석에서 하자면 할 수도 있겠지만 보도될 지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고, 경쟁지이기도 하고. 방 사장이나 주요 간부들한테 정보보고는 했겠지만 기사화는 안됐더라. 자기 흠도 많은 사람이 남의 신문을 뭐라고 평하기가 그렇지만 나름대로 아픈 얘기를 좀 했다."

- 어떤 지적을 해줬는가.
"'조선일보 문제점에 대한 해답은 조선일보 안에 다 있다'고 말했다. 최근 <조선일보 사람들>이란 책이 나왔는데 1932년 방응모 선생이 신문사를 인수하기 전 조선일보에는 상당히 좌경화된 분들이 많이 있었다. 그때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60∼7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일보 인재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지금보다는 훨씬 넓었다. 리영희 선생도 있었고 송지영 선생도 있었고. 돌아가신 방일영 고문의 인재를 안는 품을 얘기했다. 지면으로 어떻게 반영되는가를 떠나서 생각이 다를 수 있는 인재를 품을 수 있는 힘이 오늘의 조선일보를 만들지 않았겠는가 그런 식으로 답했다."

- 호의적이지 않은 파워집단 정도로 비춰지는 조·중·동이란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중·동 카르텔이라면 좀 그렇고, 조·중·동 카테고리에서 중앙일보가 벗어나고 싶었던 게 있다면 앞서 말한 이유 때문이다. 과연 이런 식의 과도하게 우경화된 신문이 선진국으로 가는 우리 사회를 대표할 수 있을까. 지난 5∼6년간 중앙일보에 내가 기여한 게 있다면 중앙일보를 중도로 오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처럼 진보언론이 미약한 언론시장에서는 중도언론이 진보쪽 목소리도 많이 담아낼 수 있어야 하는데 많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그래야 통일한국, 선진국으로 갔을 때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다."

- 그러나 중앙일보가 조·중·동에서 떨어져 나오려는 노력은 별로 보이지 않은 것 같다.
"편집국과 논설위원실은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지만 가장 노력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는가 싶다. '조·중·동에서 떨어져 나온다'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기보다 신문의 질의 문제라고 본다. 일류국가는 민주주의도 꽃피우면서 빈부문제, 환경문제 등 사회병리를 잘 다뤄나가면서 경제도 발전한 나라를 말한다. 바로 그런 흐름을 잡는 노력, 국민이 원하는 새로운 주류의 흐름을 타는 노력에서 중앙일보가 부족했다는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겠다. 누구를 만족시키겠다는 것보다 우리나라를 일류국가로 만들어 나가는데 반걸음이라도 앞장서서 나갈 수 있는 신문이 된다는 것이 중앙일보 구성원 모두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조선일보의 문제점에 대한 해답은 조선 안에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앞으로 10년 더 중앙일보에 있으면 훨씬 많은 변화를 거둘텐데.
"신문사 구성원이 나라와 독자를 위해 좋은 쪽으로 변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과거 10년이 톱다운(topdown·상의하달)식의 개혁이 강했다면 버틈업(bottom-up·아랫사람에서 비롯된)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또 내가 비켜주는 게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본다. (중앙일보에서) 떠나 있는 동안 다른 것은 (관여) 안하겠지만 만약 사내에 불필요한 파벌이 조성된다거나, 논조가 급격히 보수로 회귀한다거나 우리나라와 독자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변화가 올 경우에는 독자로서, 또 대주주로서 관여할 것이다."

- 중앙일보가 더 왼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우리 사회에서 진보적 정권이 두 번 탄생했다. 바다의 거대한 조류처럼 사회 밑바닥에 흘렀던 민주화에 대한 욕구, 진보적 지식인들의 대두 등을 큰 신문 셋(조·중·동)은 미처 읽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젠 알게 됐다. 그러나 진보적 목소리는 목소리고, 이같은 정부를 만들어낸 세력의 실존은 실존이지만, 신문의 틀로 담아내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리더십과 경영기술과 정치력이 있어야 한다. 국민소득 2∼3만불 시대 선진한국을 대표하는 신문은 중앙일보보다 더 진보적이어야 한다.

일본의 <아사히신문>, 스페인의 <엘파이스>가 그렇고 프랑스의 <르몽드>, 영국의 <가디언>이나 <더 타임스>,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그렇다. 남북분단으로 우리사회의 주류·기득권 세력들에게 북한 포비아(phobia·증오 또는 공포)가 있고 그게 과대포장된 면이 있어서 그렇지만, '나라다운 나라가 섰을 때, (이를) 대표하는 신문의 이념이 어디에 가 있었느냐'는 의미에서 볼 때 중앙일보는 더 왼쪽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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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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