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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오후 고 김훈 중위 추모 미사가 열린 명동 가톨릭회관 3층 교육실.
ⓒ 김덕련

"내년 추모미사에는 모든 진실이 밝혀져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김훈 중위를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 김훈 중위 7주기 추모미사 자료 중)

24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3층 교육실. 어둠이 드리워지는 오후 6시 무렵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곳을 찾았다. 지난 98년 비무장지대(DMZ) 전방초소(GP)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고 김훈 중위의 7주기를 추모하기 위해서다.

오후 6시30분경 고 김훈 중위 가족과 친지,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 육사 52기 동기생 등 50여명이 모였다.

흰 국화에 둘러싸인 고 김훈 중위의 영정이 앞에 높여 있고 양 옆으로 두 개의 촛불이 조용히 빛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추모 미사가 시작됐다. 경건한 분위기에서 성가와 복음, 기도가 이어지고 사람들은 고 김훈 중위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미사를 집전한 최부식 신부는 "진실과 정의가 이 세상에 꽃필 수 있도록 청하는 미사이자 고 김훈 중위가 못다한 삶을 우리 모두가 대신 살 수 있는 용기를 얻기 위한 자리"라고 의미를 전했다.

최 신부 말대로 이들은 고 김훈 중위의 '못다한 삶'에 대해 안타까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직도 진실은 밝혀지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국방부가 진상을 은폐하려 한 것"

"98년에 훈이가 떠났을 때 진실이 곧 규명되리라 여겼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실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훈이를 자살할 수밖에 없는 유약한 인물로 만드는 것인가." (육사 동기 이정준씨)

이씨의 말에서 느껴지듯 이들이 고 김훈 중위를 아직도 떠나보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 김훈 중위의 죽음은 한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최전방 소대장이던 김 중위의 사망 직후 국방부는 '자살'이라고 발표했지만, 유족과 인권활동가들은 국방부 조사결과의 허점을 지적하며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조사 과정에서 전방 근무 군인들이 그간 수시로 북한군과 접촉하며 군수품을 빼돌리기까지 하는 등 군기문란 행위가 있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국방부는 특별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재조사를 실시했지만 '자살'이라는 결론에는 변함이 없었고, 유족들은 99년 '국방부가 사건진상을 은폐하고 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1심(2002년)에서 '수사과정에서의 국가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지만, 2심(2004년)에서는 '군이 자살이라 예단하고 초동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점'을 인정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2심에서도 재판부는 '자살이라는 결론을 뒤집을 수 있는 명백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판결, 유족들은 대법원에 항소한 상태다.

▲ 먼저 떠나보낸 아들을 추모하는 김척 씨(고 김훈 중위 부친)와 신선범 씨(고 김훈 중위 모친).
ⓒ 김덕련
"국가는 군대에서 죽은 모든 사람의 명예를 존중해줘야"

이날 모인 사람들은 고 김훈 중위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풀리지 않았음은 물론 국가가 진상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98년 당시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사건을 접했고 국방부 특별진상조사단에 민간위원 자격으로 참여했던 고상만씨도 그렇다.

현재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는 고씨는 "자살여부보다 더 큰 문제는 국방부가 사건 발생 직후부터 여러 사안에 대한 의혹을 강압적·의도적으로 은폐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족들은 그동안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야 했던 아픔뿐 아니라 국가의 가혹한 태도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이날 부인 신선범씨와 함께 미사에 참여한 고 김훈 중위의 부친 김척씨는 "국가는 군대에서 죽은 모든 사람의 명예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며 소중한 젊은이들을 가정에서 데려갔다면 그에 대한 관리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김씨는 "자살하러 군대 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냐"고 반문한 뒤 "자살이든 타살이든 군대에서 발생한 모든 죽음은 군대가 만든 것인데도 국가에서 책임지지 않겠다는 자세로 나온다면 유족을 두번 죽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7년이 지난 지금도 고 김훈 중위 사망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유약한 장교라는 멍에가 씌워진 아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김씨는 "군대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다른 많은 젊은이들에 대해서도 진상이 밝혀지는데 도움이 되고자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고 김훈 중위 사망사건' 재조사 가능할까

국방부에서 특별진상조사단까지 구성해 조사했던 고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이 다시 국가기관의 조사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도 일했던 고상만씨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고씨는 "그 때는 민주화운동과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는 단서조항 때문에 이 사건을 다루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면서 "직접 민주화운동과 관련 없다 하더라도 의문사로 남아있는 모든 사건을 조사대상으로 하는 과거사진상규명법을 제정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조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씨는 "억울하게 숨진 고 김훈 중위의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이 국민의 권리를 확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찾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참석자들은 1시간여간 진행된 추모미사를 마치고 고 김훈 중위 의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진실의 문>(감독 김희철)을 관람했다. <진실의 문>은 오는 4월 4일 국회 상영을 앞두고 있다. 고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진실의 문'도 열릴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고 김훈 중위.
ⓒ 김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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