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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고 교정에 있는 '유관순 열사가 빨래하던 우물'. 지금은 사용하지 않은 채 뚜껑을 덮어 보존하고 있다.
이화여고 교정에 있는 '유관순 열사가 빨래하던 우물'. 지금은 사용하지 않은 채 뚜껑을 덮어 보존하고 있다. ⓒ 이덕림
열사의 체취를 느끼고 싶어 열사의 모교인 이화여고를 찾았습니다. 정동길 쪽으로 나있는 이화여고 동문(東門)에 들어서면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유 열사의 자취가 남아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우물이 그것입니다.

지름이 1.5미터 쯤 되는 둥그런 우물입니다. 은행나무 거목 아래 자리잡은 우물은 높이 1미터 정도의 화강암으로 둘러 싸여 있고 주변 바닥에도 넓적한 화강암이 깔려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가 빨래하던 곳’이란 표지판이 서 있습니다.

1916년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한 유 열사는 이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면서 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우물은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우물로 일찍이 이곳 정동 언덕에 살던 서민들이 공동으로 쓰던 우물이 그대로 보존돼 내려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두꺼운 나무로 뚜껑을 덮고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흰 무명 교복을 깨끗이 빨아 입으며 꿈을 키우던 소녀 유관순. 소녀의 꿈은 ‘조선 독립’이었습니다.

“영원히 우리 앞에 ‘누나’로 남아 있는 유관순 열사여!”

3월 하늘을 향해 불러 봅니다.

덧붙이는 글 | 국정브리핑에 국정넷포터 기사로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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