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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모습. 지금은 오마이뉴스 기사작성방이지만 한때는 어엿한 잡지사 사무실이었다.
골방모습. 지금은 오마이뉴스 기사작성방이지만 한때는 어엿한 잡지사 사무실이었다. ⓒ 성락
1992년.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의 두 평 남짓한 골방에 잡지사를 차렸다. '사슴농장주가 만드는 전문지'를 기치로 내세운 자못 야심 찬 도전이었다. 그토록 꿈꾸었던 사슴농장 주인이 되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예쁜 아내를 맞아 신혼의 달콤함을 누리고 있던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꽉 찬 스물 여덟 살 청년이었다.

<월간 사슴>이라는 잡지사를 그만두고 곧장 폐허나 다름없는 옛 집터에서 사슴농장을 시작한 나는, 농장을 일구며 경험하게 되는 일들과 농촌생활을 적어 '사슴과 함께 달린다'라는 제목으로 연재기사를 쓰고 있었다. <월간 사슴>에서 함께 일하던 후배들의 배려가 있었던 것이다.

한 6개월 정도 글을 썼는가 싶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사슴 수입자유화가 발표되면서 그 잡지사 사장이 사슴수입에 손을 댄 것이다. 전국의 사슴농가가 수입반대를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잡지사를 그만두게 된 것도 수입개방 조짐을 미리 알고 사슴수입으로 한 몫 챙기려는 사장의 흉계(?)를 간파하고 심하게 다툰 것이 계기가 됐다. 그게 현실로 닥쳤던 것. 나는 그러한 움직임을 강력히 비판하는 글을 써서 보냈다. 그 원고는 며칠 후 되돌아왔고 연재기사는 그것으로 중단되었다.

사슴 값이 폭락하면서 <월간 사슴>은 더 이상 잡지를 발행할 수 없을 정도로 농가들의 비난 대상이 됐다. 후배 기자들도 떠나고 사장의 가족들이 함량미달의 잡지를 만들며 미련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것은 순전히 잡지라는 공신력을 이용해 수입사슴 분양을 원활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던 것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월간 사슴>에 글을 쓰며 제법 많은 사슴농가들로부터 격려의 편지를 받았다. 사슴 유통상인들의 횡포와 농업정책에 대해 농민으로서의 견해 등을 가감없이 글에 반영하다 보니 그동안 쌓였던 농가들의 목마름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격려성 편지들이 <월간 사슴>의 반 농민적 행태가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로 '전문지다운 전문지'를 하나 만들어 보라는 권고로 바뀌었다. 몇몇 사람들은 직접 농장에 찾아와 진지하게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만 둔 지 1년도 안 되는 시기에 경쟁지를 낸다는 것이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또 잡지사라는 게 어디 그리 만만한 사업인가. 결국 <강원사슴>이라는 제호를 달아 강원지역 사슴농가에게 무가로 배부하는 '축소된' 잡지를 만들기로 했다. 수동 카메라와 팩시밀리를 구입하고 정기간행물 등록을 마치는 것으로 잡지사 설립절차는 어렵잖게 완료됐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지금 살고 있는 집. ⓒ 성락
두 달 여의 작업을 거쳐 <강원사슴>은 1992년 6월호로 창간됐다. 강원지역의 900여 사슴농가에만 배포됐으나 한 두 달 지나면서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무가지인데도 구독료를 보낼테니 책을 좀 보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기대 이상의 호응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양록업계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인사 두 분이 전국단위 전문지로 확대 발간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적극적인 제안을 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기존의 '월간 사슴'을 흡수하는 절차를 주선하겠다는 것. 얼마 되지는 않지만 정기구독자와 광고주들을 그대로 넘겨받을 수 있어 백지상태에서의 시작보다는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사슴농장주가 만드는 전문지' '강원사슴'은 6개월 여만에 '월간 양록'이라는 새 이름으로 전국무대에 진출했다. 지금도 '월간 양록'은 발간되고 있다. 벌써 13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그 잡지의 발행인은 내가 아니다. 1999년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뜻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경영권을 넘겼고, 또 한차례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몇 달째 그 잡지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운영이 무척 어렵다는 소식이 들린다. '강원사슴'으로 강원도 산골마을 허름한 집 골방에서 출발해 전국무대로 진출한 파란만장한 전력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경험으로 보아 농업분야에서 전문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그 역할이 반감되기는 했으나 아직도 전문지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는 농가들이 많다. 특히 농업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은 매월 발간 일을 기다렸다가 우편으로 도착한 전문지를 읽고 또 읽고, 그리고는 소중하게 책꽂이에 보관해오던 것을 일종의 향수처럼 느끼기도 한다.

지금 나는 며칠째 그 골방에 앉아 고민을 하고 있다. '강원사슴'을 낼 때와 비슷한 고민이다. 그때처럼 전문지 발간을 목마르게 요구하는 사람은 없지만 내 알량한 '사명감'이 꿈틀거리고 있다. 물론 세상물정에 찌들은 내게 얼마정도의 '수익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과거와 달라진 조건이다. 그 때는 겁없이 일을 벌였는데.

'사슴농장주가 만드는 전문지'를 만들어 냈던 이 골방. 이곳에서 또 무슨 일을 내지나 않을까 내 스스로 자못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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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지키며 각종 단체에서 닥치는대로 일하는 지역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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