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누구보다 교육의 중요함을 잘 알고 있었어. 그 자신이 사범학교 출신 선생이었잖아. 그의 일제 강압식 교육지향이 그대로 드러난 게 1968년 선포된 '국민교육헌장'이었지. 학생은 물론 공무원들까지 그걸 달달 외우도록 닦달했으니까. 그런데 애들을 가르친다는 교수들이 나서 그걸 비판했으니, 노발대발한 건 당연한 일 아니겠어?"
지난날을 추억하던 원로작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난 2월 28일 낮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 오랜만에 산문집을 상재한 소설가 송기숙(70)이 기자들과 만났다. 특유의 너털웃음과 사람 좋은 바리톤의 음성으로 책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가 '유신독재자 박정희'의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색을 바꾸었다.
현재 직책은 '대통령 소속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의 책임(위원장)을 맡은 총리급 공무원이지만, 우리에게 송기숙은 동학농민전쟁을 문학적으로 복원한 <녹두장군>(전12권)과 일제 치하 빛나는 농민항쟁 암태도 소작쟁의를 다룬 소설 <암태도>로 더 친숙하다.
한참을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던 그의 기억은 1978년 초여름 유신말기로 돌아갔다. 전남대 교수 11명과 전남대·조선대 학생 50여명을 구속시킨 이른바 '교육지표사건'이다.
박정희 정권의 '이념적 심장'을 향해 쏘다
"그때가 어떤 시절이었느냐. 3성장군 출신의 도지사가 도열한 휘하 공무원의 옆구리를 지휘봉으로 찔러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게 하고는 제대로 못 외우는 사람을 진급에서 누락시키던 시절이었잖아.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닌 거야. 그래서 나와 동료교수 10명이 주도해 '우리의 교육지표'라는 성명서를 발표했지. 그게 바로 박정희 유신독재의 이념적 심장이라 할 국민교육헌장을 정면에서 반박한 거거든. 김재규 말처럼 유신의 심장을 쏜 거지(웃음).
당연지사 평지풍파가 일어났어. 성명을 발표한 교수 전원이 중앙정보부로 연행돼 고초를 치른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교수님들은 죄가 없다, 즉각 석방하라'고 외친 학생들까지 50여명이나 구속이 됐으니까. 나도 그 일 때문에 '긴급조치9호 위반'이라는 죄명을 쓰고 징역 4년을 선고받았지. 참… 그런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던 거야."
이번에 출간된 송기숙의 신작 산문집 <마을, 그 아름다운 공화국>(화남)에는 위의 내용에 관해 말로는 다 못한 이야기들이 실렸다. '붉은악마와 국가주의 시비'라는 소제목으로 묶여서다.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한 몇 대목만을 인용해 본다.
… 국민교육헌장에 있는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라는 구절도 국가주의 이념을 극명하게 표현한 구절이다.… 이 구절이 민주주의, 곧 개인주의 이념이 되려면 '나라'와 '나'의 자리를 바꾸거나 '나의 발전이 나라 융성의 근본임을 깨달아'라고 해야 한다.
… 그리고, '협력' '협동' '상부상조' 등 단결을 표현한 말은 세 번이나 나오지만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인권'과 '사회정의' 같은 말은 한마디도 없다.
…'능률과 실질을 숭상(崇尙)'하자는 구절은 기능주의를 숭상하여 실리를 중시하자는 것인데 '능률과 실질'을 중시하자는 것도 아니고, '숭상'하자고 최고 가치로 내세워 가치관을 뒤집고 있다. 숭상이란 말을 쓰려면 그 대상이 '인권'이나 '사회정의' 정도여야 마땅하다.
이같은 송기숙의 말과 견해를 종합하면 그는 박정희를 몰지각한 '전체주의자' 혹은, 히틀러를 닮은 '파시스트'로 보고 있음이 자명해진다. 여기에 송기숙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부끄러운 역사를 더이상 되풀이해서야...
"프랑스 드골의 친나치 숙청의 역사를 볼 때마다 해방 42년이 되어서야 겨우 독립기념관 하나 세운 우리의 미숙한 친일청산이 떠올라 분통이 터져. 친일과 친미로 이어졌던 군국주의 잔재의 청산은 여전히 남아있는 나와 당신들의 숙제 아니겠어."
그렇다고 <마을, 그 아름다운 공화국>이 이런 살벌한(?) 주장과 추상(秋霜)같은 꾸지람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다.
표제작을 통해서는 아름다운 공동체 '두레'의 부활을 낮은 목소리로 청하고 있으며, '비 내리는 호남평야'와 '책방이 수령의 뺨을 갈겨 놓고' 등에는 우리역사의 숨겨진 장면들을 찾아다니던 시절과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담아냈다.
선배시인 고은(시인)과 후배소설가 황석영(소설가), 막역지우였던 진보 경제학자 박현채(95년 타계)와의 사연을 담담하게 서술한 '거인과 기인(奇人)의 거리' 역시 읽히는 맛이 각별하다.
소설가 김영현(50)과 공지영(43)은 각각 "소설로써 못 다한 우리 역사의 뒤안길을 예리한 촉수로 더듬어 송기숙 문학을 이루고 있는 살과 뼈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습작시절 선생의 흑백 사진, 거뭇한 얼굴에 주름진 미소만 바라보아도, 그래 써보는 거야 하는 용기가 생겼었다"는 말로 문단 대선배의 출간을 경하(敬賀)했다.
| | 소설가 송기숙은... | | | | 1935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현대문학>에 ‘이상론’과 ‘손창섭론’을 발표하며 소설가보다 먼저 문학평론가가 되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게 된다. 1972년 첫 창작집 <백의민족>을 낸 후 <도깨비 잔치> <재수 없는 금의환향> <개는 왜 짖는가> <들국화 송이 송이> 등의 단편집을 냈다.
1977년 상재한 장편 <자랏골의 비가>와 이어진 <암태도>(1981년), <녹두장군>(1994년 12권 완간), <은내골 기행)(1996년), <오월의 미소>(2000) 등을 통해 이 땅의 쓰라린 역사와 저항의 주체인 민중에 그 뿌리를 둔 역사소설의 한 산맥을 세운다.
5.18연구소 소장과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초대 공동의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제18회 현대문학상, 제9회 만해문학상, 제12회 금호예술상, 제13회 요산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