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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은 아내와 이웃형님께 맡기고 자신은 다른 농부들을 위해 일하는 지완선씨가 정식을 앞두고 있는 토마토 모종하우스에 앉아 있다.
농사일은 아내와 이웃형님께 맡기고 자신은 다른 농부들을 위해 일하는 지완선씨가 정식을 앞두고 있는 토마토 모종하우스에 앉아 있다. ⓒ 이우성
지완선(43)씨는 농부다. 정식 직함은 아산한살림생산자연합회 사무국장. 이곳 총무 일만 10여년째 보고 있다. 농사 경력은 15년.

아산한살림생산자연합회는 15명에서 시작해 지금은 500여명으로 늘었다. 콩나물 300봉지에서 시작해 110억 규모의 생산조직을 갖춘 이곳은 우리나라 유기농업의 전초기지나 다름없다.

이호열 연합회 회장의 희생과 열정으로 일구어놓은 성과지만 사무국장의 숨은 공로도 빼놓을 수 없다. 이 회장이 좋아 덩실덩실 춤추며 이곳까지 따라왔다는 그에게서 농업인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또다른 농부의 모습을 본다.

지완선씨는 아산 인주가 고향이다. 지금까지 아산을 떠나 본 적이 없다. 떠나고 싶은 유혹도 생각도 없다. 88년에 영인으로 이사와 지금까지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1만평 땅에 논농사, 담배농사, 포도농사를 짓다가 95년에 이호열 회장을 만나 친환경농업에 눈뜨면서 하우스를 짓고 호박농사를 지었다. 99년부터는 완숙토마토농사를 지었다. 지금은 연합회 일에 매여 3400평 하우스를 이웃 마을 형님인 김용호(45)씨와 부인 최경애씨가 도맡아 짓고 있다.

96년부터 아산한살림 총무 일을 맡았다. 사람 좋은 얼굴에 부끄러움도 잘 탈 것 같은 그가 조직일이나 원칙을 지키는 일을 잘 해낼까 걱정이 들지만 농민들 앞에서는 농담도 잘 하면서 조직관리자로서의 일도 확실히 하는 것을 보고 기우임을 실감한다.

소 키우는 것이 좋아 농고를 나오고 농업전문대학에서 축산을 전공했다. 가진 돈이 없어 소는 아직까지 못 키우고 있지만 이곳에서 곧 유기축산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여 간접적으로나마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아산한살림연합회는 생산자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농민이 주도해서 끌고와 전국에서 제일 부러운 영농법인이 되었다. 뒷그늘로 한살림 소비자들이 있었기에 오늘 이렇게 성장했지만 처음엔 고생도 많았다.

잘 해보자는 소명 하나로 네것 내것 없이 저녁마다 머리를 맞대고 방향을 잡아 나갔다. 지금은 이곳에서 일하는 실무자만 20명 정도. 작년 전체 생산규모는 110억 정도로 늘었다. 생산되는 모든 물품은 전량 한살림으로 나간다.

지국장은 이곳 생산자들의 생산계획, 조직관리, 출하관리 일을 맡아 한다. 지금 제일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아산시가 주관하고 호서대, 단국대 등 4개 대학, 아산시 관계자, 농협, 충남테크노파크가 주축이 되어 벌리고 있는 '지역클러스트' 사업이다. 100~200년 후에도 이 지역에서 농사지을 수 있는 장기적인 터전을 만들기 위해 광범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지역농업클러스트'란 지역의 농업문제를 지역 농업인과 지자체가 관련 기업이나 학계와 연합해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즉 일정지역의 특화된 농산물의 생산, 유통, 가공 등과 관련 산·학·관이 유기적인 네크워크를 형성해 지역농업을 혁신해 농업을 농산업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핵심 결집체를 말한다.

클러스트사업의 일환으로 작목별 재배력, 방제력도 만들 계획이고 지역내 순환하는 유기축산의 모델도 만들 계획이다. 부설연구기관까지도 설립할 계획으로 있다. 미생물을 농축시켜 만든 BMW(박테리아 미네랄 워터)활성소를 만들 계획으로 600두 규모의 유기축산 시범단지를 만들었다. 곧 육가공시설까지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아산한살림연합회 물류센터 모습. 농민 스스로 생산에서 유통, 가공까지 하는 유기농업 전초기지다.
아산한살림연합회 물류센터 모습. 농민 스스로 생산에서 유통, 가공까지 하는 유기농업 전초기지다. ⓒ 이우성
작년에 신규로 40만평이 들어와 이곳 전체 규모는 130만평이 되었다. 50~60대가 주축인 500여명에 가까운 생산자를 관리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각 지회와 반장, 총무 중심으로 관리해 나가도록 하고 연합회 사무국에서는 1주일에 1~2번 농장을 돌아본다. 현장을 방문하면서 농업기술교육도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항상 농사 지으러 가고 싶긴 하지요. 하지만 누군가는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한발짝 물러서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한 이 회장을 쫓아 덩실덩실 따라온 게 10년입니다. 일한만큼 조직이 커지고 있어서 보람도 있습니다."

자신을 키운 이 회장을 그는 희생정신과 무욕의 스승으로 모신다. 항상 몇 년 후까지 먼저 생각하는 이 회장을 그는 아무리 좇아가려야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이곳 시설채소 농가에서는 히마모토농법으로 알려진 목재칩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있다. 나무칩, 대패밥을 물을 많이 뿌려 미생물과 혼합해 6개월 이상 호기 발효 시켜 퇴비로 쓰고 있다. 300평에 40톤 정도 뿌린다. 그래서인지 연작장해는 별로 없다.

10년 한 곳에 토마토를 심어도 역병이 안 온다고 한다. 4일에 한번 정도 천혜녹비와 액비를 주고 잎살림을 엽면시비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관리법이 없다. 천적도 많이 활용하는데 국내기업이 직접 배양한 우리진딧벌을 사다가 넣어준다.

이곳 생산자들은 공통으로 작목을 심어도 순차적으로 소비한다. 앞에 사람이 어느 정도 수익이 있었다면 판매를 멈추고 다음 사람으로 이어진다. 초창기 시스템이 대를 이어 유지되고 있다고.

생산자들의 매출에서 일정 금액을 연합회에서 뗀다. 채소생산자는 7%(연합회1, 유기농발전기금1, 출자1, 운송2, 안정기금2), 벼생산자는 4.5%(안정기금1.5, 연합회1, 출자 1, 발전기금1), 밀 콩 생산자는 1%(안정기금0.5, 연합회0.5)를 부담해 운영한다. 퇴비나 종자는 공동으로 구매해 나누어준다. 작년에 이 비용으로 7억을 썼다.

생산안정기금은 2억을 넘었다. 이 기금은 생산이 과잉되면 풀어서 지원해준다. 운영의 제일 큰 원칙은 투명하게 한다는 것이다. 신도시가 들어서는 운봉쪽보다는 송학이나 덕우쪽을 무게중심에 두고 사업을 펼치고 있다. 마을 단위 사업을 자체적으로 해서 지역에 직접 소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시에서 지원을 해주어도 개인에게 돌아가게 하지 않고 공동사업으로 푼 것이 주효했다고 말한다. 내 것만 챙기겠다는 생각은 친환경농업에서 제일 금기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보하는 미덕이 제일 큰 덕목이 되어야 한다는 것.

농협이나 아산시와도 협조관계가 잘 유지되는 데는 이 회장의 대외교섭력도 컸지만 서로 신뢰로 뭉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단체장의 친환경농업 마인드가 제일 큰 관건인데 이 지역 단체장들은 잘 통하는 면이 있다고 한다. 특히 송학농협 조합장은 전 송학농민이 친환경농업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하고 있단다.

이제 이 회장과 지국장은 새로운 미래 설계에 부풀어 있다. 바로 농민들을 위한 실버타운을 만들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5명이 1억5천씩 투자하여 동철리에 8000평 땅을 사 두었다. 이곳에 우선 자체 RPC, 물류센터, 육가공공장을 세우려고 한다. RPC는 올해 완공될 예정이다. 완공되면 산지별로 구분해 수매해서 미질도 원하는대로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경종과 유기축산을 결합해 쌀값 떨어진 것을 축산에서 풀 수 있는 시스템으로 지역농업을 이끌어가고자 한다. 2년 후에는 육가공까지 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130만평 벼농사에서 나오는 부산물과 살겨, 비지로 조사료를 만들어 옛날 소죽 끓이듯 사료를 먹일 생각이다.

마블링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 송아지때 6개월은 사료를 먹이고 이후 20개월령까지는 조사료를, 그 이후에는 다시 사료를 먹이면 마블링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호주산 유기사료를 계약해 수입할 생각도 있다.

최근에는 송악면 송남초등학교와 거산분교 학생 300여명에게 연합회 생산자들의 유기농 쌀을 학교 급식으로 제공한다. 연합회와 푸른들영농법인에서 차액의 80%를 지원하고 나머지 20%는 학부모가 부담(1인당 한달 1000원)한다. 생산자와 실무자 자녀들에게 장학금도 지급한다. 작년에는 아산 지역외 생산자 자녀에게 외부장학금을 주기도 했다.

그는 친구결혼식에 갔다가 만난 경주가 고향인 부인 최경애씨와 만난지 15일 만에 결혼해 2남1녀를 두었다. 지금 아내에게 농사일을 다 맡기고 있어 미안하고 하나하나 농사일을 알아가는 재미에 빠진 아내가 항상 고맙기만 하다. 2월15일 한살림물류센터 준공식 때 농림부장관상을 받았다.

"농민을 위한 조직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농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헌신적으로 일하는 농민조직과 지역공무원, 정부정책이 잘 맞물려 더불어 농사짓는 보람을 많이 찾는 농촌이 되면 더 바랄게 없지요."

이제 어려운 농업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으로 아산한살림연합회가 우뚝 설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진짜 소비자가 얼마나 남느냐가 우리 농업 회생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소비자를 많이 잡는 것이 최대의 고민이라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감동하고 향수에 젖게 해야 한다. 그런 후 우리 땅에서 난 생산물을 어떻게 가공할 것인가도 중요할 터. 농민들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농부, 그는 오늘도 머리에서 쥐가 난다. 뛰어다니느라 발에서도 쥐가 난다. 그를 만나고 힘이 솟는다. 봄이 가슴으로 폭 안겨왔다.

아산한살림연합회는

아산 지역에서는 유기농을 하던 농민을 중심으로 80년대 말부터 논, 밭, 축산 등 전체 농업이 어우러지는 형태의 지역농업을 꿈꿔왔다. 이호열 회장, 정진권 현 천안한살림 이사장 등이 그들이다. 꿈으로 심은 씨앗은 10년쯤 지나 싹을 틔웠다.

1996년 한살림아산시생산자연합회가 만들어졌고 이 회장 등은 자연은 물론 농업과 농민도 살 수 있는 길을 실현시킬 방안을 구체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수매를 보장하고 판로를 확보해야 했다. 우선 우리콩으로 콩나물을 재배해 한살림에 납품했다.

이곳은 몇년 전부터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지역농업’을 화두로 푸른들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농민들이 농산물의 생산은 물론 유통과 가공까지 맡았다. 유기농업의 확산은 물론 농가의 소득도 조금씩 높아졌다.

아산시 영인면 창룡리에 있는 두부공장은 하루 3천~4천모를 주문생산한다. 100% 우리콩을 쓴다. 일반 두부보다 2배 이상 비싼 값이지만 한살림 소비자들의 주문을 받아 주문량만큼만 생산한다. 연간 매출액만 15억원 정도.

음봉면 산정리 연합회 사무실 뒤편으로는 푸른들 영농법인의 콩나물 공장이 있다. 하루에 300g짜리 2000봉지를 생산한다. 사무실 앞쪽과 옆쪽으로는 물류센터와 통밀가루를 생산하는 제분기와 유기질비료 생산설비가 보인다.

법인이 만들어지고 숙원사업이었던 물류센터와 저온저장고는 2001년 농림부에서 10억원의 지원을 받고 법인에서 6억원을 내 지었다. 수매를 보장해주자 콩과 밀을 생산하는 농민들이 늘기 시작했다.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은 2005년 1월부터는 유기질 비료를, 2월에는 두유를 생산할 계획이다.

농민이 중심이 되어 생산, 유통, 가공을 관리하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우리 농업의 미래를 위한 좋은 본보기를 만든다는 생각에 모두 열심히 노력한 결과다.

덧붙이는 글 | 자신의 농사일을 접고 지역 농민들을 위해 발벗고 뛰고 있는 지완선 씨에게서 어려운 농업 현실의 활로를 찾습니다. 모두가 어깨동무하는 결고운 온기에 얼었던 빗장이 풀립니다. 화사한 봄빛처럼 마음이 열립니다. <흙살림(www.heuk.or.kr)신문> 3월호에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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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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