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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 토마토를 샀던 봉지로 김치통을 싸주셨네요. 역시 주부의 알뜰함이….
방울 토마토를 샀던 봉지로 김치통을 싸주셨네요. 역시 주부의 알뜰함이…. ⓒ 이선미
도서관에 찾아오시는 엄마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보면 한층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는데, 특히 내 점심까지 걱정해 주시는 엄마들을 보면 묘한 행복감과 함께 내색은 하지 않지만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같이 점심을 먹고자 만두와 김밥을 싸서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함께 오신 한별이 엄마, 이렇게 손수 김치를 가져다 주시는 채린이 엄마와 같은 분들이 있어 인정을 느끼게 되고, 우리 어린이도서관이 더욱 빛이 난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대여해주는 곳이 아니라 아기 엄마들의 약속 장소이며, 도서관 사서와 소통하는 자리다. 또 뭔가를 나누고 싶어하는 엄마들이 작은 봉사(도서관 사서 도우미와 같은)를 할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곳이다.

공동 육아 이야기며, 급식 조례이야기, 북녘 어린이 빵공장 이야기, 대안학교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들을 하다보면 궁금한 것들도 서로 물어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공유하게 된다.

순무김치입니다. 참 맛있어 보입니다.
순무김치입니다. 참 맛있어 보입니다. ⓒ 이선미
몇 주일 전에 순무 김치를 가져다 주신다던 채린이 엄마가 일주일에 한두 번 도서관에 오셨으나 김치는 안 들고 오셨다. 내가 먼저 이야기 하기가 민망해 그냥 인사를 주고 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채린이 엄마가 사정이야기를 하며 김치를 늦게 갖다 주게 돼서 미안하다고 했다. 이렇게 세세하게 신경을 써주니 먼저 김치 이야기를 할까 잠시 생각하던 내가 상당히 무안해졌다.

그리고 오늘,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 돌아오니 도서관 내 책상 위에 밀폐용기에 담긴 김치가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채린이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동화책을 읽어주고 계셨다.

"어? 김치 가져오셨네요? 와~ 맛있겠다. 정말 잘 먹을게요!"
"늦게 가지고 와서, 김치가 약간 시었을 거예요."

김치를 보자, 어찌나 반가운지. 이렇게 반가웠던 것은 김치 때문이 아니라, 손수 김치를 갖다 주신 그 마음이 반가웠던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서관에 꼬마 단골 손님들이 생겨나면서 아이들이 방과 후 도서관에 찾아와 집에서 있었던 일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신발도 벗지 않고, 들떠서 말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엄마들이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연 것을 나는 안다.

"그냥 젊은 사람이 도서관에 있어서 자원봉사인가 보다 했는데,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대하시는 거 같더라구요. 젊은 사람이 이렇게 사는게 흔치 않은 일인데…."

간간이 이런 말을 해주시는 엄마들이 있다. 고맙고 또 고맙다. 나를 인정해준다는 것은 곧 내가 상근하는 시민단체의 '더불어 잘 사는 지역 공동체를 위한' 사업에 공감하고 그 필요성을 느낀다는 말로 들린다. 그래서 그런 말들을 들을수록 힘이 솟고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집에 와서 밀폐 용기 뚜껑을 열고 손으로 순무 김치 하나를 들고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일반 무 같지는 않은데 약간 인삼 맛이 나는 것도 같고 그냥 무인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그런데 아까워서 잘 먹을 수나 있을는지.

'힘들고 지칠 때 이 김치를 보면 힘이 솟을 텐데, 이걸 계속 놔두면 팍 시어버리겠지.'

내일 아침에는 순무김치에 밥 한 공기 먹고 집을 나서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선미 기자는 춘천시민광장 꾸러기 어린이도서관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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