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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양식의 경주 톨게이트
한옥 양식의 경주 톨게이트 ⓒ 김병기
집에서부터 많이 꾸물거린 탓에 경주에 도착한 때는 정오를 막 지나고 있었습니다. 톨게이트에서 들고나는 많은 차들로 약간의 시간을 더 지체한 후 작은 처형 댁으로 가 대구 큰 처형네와 합류하여 곧바로 길을 잡아 나섰습니다.

“어데로 갈랍니꺼?”
“통일전 뒷산을 탈라나?”
“고마 아무데로나 가입시더.”

결국은 ‘옥룡암’이라는 조그만 절이 있는 쪽을 택해서 산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날씨가 아직 풀리지 않아서인지 절에는 찾는 사람 하나 없이 그저 막막한 정적만 흐르고 절간 한쪽으로 따슨 햇살이 연방 내려앉고 있습니다.

옥룡암
옥룡암 ⓒ 김병기
올해는 봄이 늦다고 합니다. 이는 가는 겨울이 시샘을 해서가 아니라 지난해에 윤달이 끼어서 그렇다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수도 지나고 경칩이 나흘 후인데도 그 경칩이 음력으로 1월 25일입니다. 좌우지간 시냇물은 아직도 얼어 풀릴 기미가 없습니다만 뭐 며칠만 더 있으면 거짓말같이 풀리겠지요.

우리가 잡은 이 등산로에는 인적이 드뭅니다. 달랑 우리 가족 5명이 전부고, 우리들 이외에는 간간히 들리는 새소리와 물소리 정도입니다. 겨우내 깡깡 얼었던 땅이 풀려 제법 질컥거리는 쪽도 있고, 흙이 보드랍게 눈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시내도 건너고 잔가지가 쭈뼛쭈뻣 머리를 길 쪽으로 내민 좁은 길도 지나서 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상에서 맛보는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산을 정복한 정복자만이 갖는 쾌감이 아니라 산 위에서 바라다 뵈는 먼 동리들의 아늑함과 그쪽으로 불어가는 신선한 바람, 그리고 한없이 맑아지는 정신세계, 바로 이런 것들의 쾌감입니다.

하얗게 얼음이 얼었습니다
하얗게 얼음이 얼었습니다 ⓒ 김병기
열심히 산을 오릅니다.
열심히 산을 오릅니다. ⓒ 김병기
간단하게 준비해 간 점심(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진수성찬이었습니다)을 뚝딱 해치우고 기념 사진도 박았습니다. 얼마 있다가 내려오는 길에 행여 도롱이(지율스님의 천성산 살리기 운동으로 잘 알려진 도롱뇽) 알이 있을까 해서 살며시 개울을 살핍니다.

지난해 낙엽이 개울 위를 덮고 있었는데 그곳을 살짝 들추어내니 아, 글쎄 그 밑에 턱하니 숨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알들도 조금만 더 있으면 봄과 더불어 새끼 도롱이로 거듭나겠지요. 자연은 이래서 좋은 것입니다. 물이 맑으니까 그런 생명들이 사는 것이지요. 우리도 자연의 일부분입니다.

“앞에 가는 놈은 도둑놈, 뒤에 가는 사람, 순경.”

다들 마흔이 넘은 세 자매가 쪼르륵 내려가다 갑자기 옛 생각이 났던지 이런 장난질을 하며 내려갑니다. 저 역시 오랜만에 듣는 말인지라 속으로 “어라, 이봐라”했습니다.

세 자매의 포즈
세 자매의 포즈 ⓒ 김병기
멀리 동리가 보이고...
멀리 동리가 보이고... ⓒ 김병기
도롱이(동그랗게 말려있는 게 도롱뇽 알입니다)
도롱이(동그랗게 말려있는 게 도롱뇽 알입니다) ⓒ 김병기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작은 처형이 “경주까지 와서 '경주 최부자집'은 둘러보고 가야 제맛이지”합니다. 중요민속자료 제 27호인 교동에 있는 경주최식가옥은 170여년 전의 이조시대의 건축으로 그 구조가 경상도 지방의 전형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가옥은 1969년의 화재로 일부가 소실되고 문간채, 고방, 안채, 사당만이 남아 있습니다. 소실 전의 전체적 구조를 생각하면 가히 부잣집의 그 위용을 직감케 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최부자집’에는 흥미로운 가훈이 있으며 이 가훈을 지켜 후손들이 12대를 부자로 살았답니다.

경주최식가옥 전경
경주최식가옥 전경 ⓒ 김병기
이 겨울의 나목
이 겨울의 나목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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