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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아래 자리잡은 실상사. 절집 입구 연못에 미친 실상사 대웅전과 석탑이 아름답다. 현재는 발굴조사 중으로 이 광경을 볼 수 없다.
지리산 아래 자리잡은 실상사. 절집 입구 연못에 미친 실상사 대웅전과 석탑이 아름답다. 현재는 발굴조사 중으로 이 광경을 볼 수 없다. ⓒ 임정의
<한국의 공간>은 시간의 축적과 삶의 흔적이 배어 있는 문화유산과 역사공간의 소중함을 기록하고 있다. 사진을 통해 전국의 문화유산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는 동안 “건축사진은 자연과의 조화, 인간과의 조화를 먼저 이해하고 나서야 의미의 전달이 확실한 결과물로 나타난다”고 고백하는 그를 만나고 싶어진다.

사진가 임정의는 집안 대대로 사진가 집안이다. 산 사진가였던 조부 임석제, 종군 사진가였던 부친 임인식, 그리고 아들도 미국에서 사진작업을 한다. 그도 70년대 언론사 보도사진기자로 일했고 대표적인 건축설계사무소 중 하나인 (주)공간에서 사진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의 부친 임인식 선생은 육군사관학교 출신 한국 최초의 종군기자로 한국전쟁의 생생한 현장을 담았다. 현재 그도 청암건축사진연구소를 운영하며 현대화로 변화되는 도시의 흐름과 달동네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임정의는 어떤 사진가일까? 지난달 필자가 만나본 임정의 교수는 중절모를 쓰고 장대한 기골에 후덕한 얼굴을 한 멋쟁이였다. 그의 멋스러움은 외모가 아니라 건축물과 문화유산 그리고 역사에 대한 남다른 애착에서 배어나온다.

언론사 사진기자를 그만두고 충무로에서 건축사진을 시작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미쳤다”, “왜 그런 걸 찍느냐”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고 했다. 먹고 살기도 어려웠던 시기 건축사진은 돈벌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숱한 고생을 하면서도 건축사진이라는 한 길을 걸어왔고 현재 독보적인 자리에 서 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좋지만 미래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는 “미래를 길게 내다보라”고 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진가 임정의는 한국의 기록문화가 척박하다고 토로한다. “기록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무궁무진한 값어치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유적지를 누가 찍어. 고리타분해 하지. 요즘은 너무 상업적이야.”

그가 건축사진을 시작할 때나 상업주의가 판치는 지금이나 상황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인 듯했다. 건축사진은 여타 사진과 다르게 문화유산을 입체적으로 찍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의 품이 많이 들어간다.

전남 순천의 선암사 승선교. 무지개 모양의 다리인 홍교가 주변 경관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다.
전남 순천의 선암사 승선교. 무지개 모양의 다리인 홍교가 주변 경관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다. ⓒ 임정의
주위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일상화된 요즘이지만 사진기의 유래에 대해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는 문외한인 필자에게, 사진이 르네상스 이후 고고학자들이 메소포타미아 유적 등을 찍기 위해 고안한 것이라고 귀띔해 주기도 했다.

그는 건축사진을 배우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 제자들에게 사진 기술부터 가르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셔터맨이 되지 마라. 시쳇말로 찍새가 되지 마라”고 가르친다. 그의 교수법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기록해야 한다”는, 즉 사진도 역사를 담아야 한다는 지론에서 비롯된 것.

올해는 을사늑약 체결 100주년이자 광복 60주년이 되는 해다. 특히나 지난해 한일협정 문서 공개에 따라 반일감정이 뜨겁고 자연스럽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논란이 달궈지고 있다.

임정의 교수는 박정희와도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그의 부친 임인식씨는 박정희의 육사동기생으로,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킬 때 이에 동조하지 않아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그래서 일가족이 해외도피를 추진하기도 했다.

<한국의 공간>
<한국의 공간> ⓒ 발언
임 교수 본인도 직접적인 인연이 있다. 박정희는 공주지역에 50만 자족행정수도를 건설하려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신행정수도 이전특별법이 위헌결정이 난 뒤 공주·연기지역에 60만 자족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박정희는 30여 건축설계사무소에 수도 이전 위치를 숨긴 채 강 하나만 적시된 지도를 건네주며 백지설계를 지시했다. 당시 한 건축사무소가 한 구역의 설계를 맡겼는데 이를 취합해 전체 도시건축을 촬영한 것이 사진가 임정의다. “청와대에서 들어와 보라고 했을 때 몇 차례 고사했는데 개인으로서 강압적인 분위기에 밀려 일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박정희가 비밀리에 추진하던 수도 이전이 세간에 알려진 것은 인쇄소 뒷골목에서였다. 당시 설계도면의 인쇄를 맡긴 인쇄소 직원이 이를 복사해 부동산에 팔아넘겼고 이것이 적발되었던 것. 물론 인쇄공은 형사처벌을 받았다.

건축사진에 있어 독보적인 존재로 자타에 인정받는 그는 마지막 소망이 있다. “북한 문화재를 사진에 담는 작업을 해보고 싶은 희망”과 청암사진연구소에 보관 중인 20여만 장의 사진 유리원판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기록문화박물관을 만들어 전시·활용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청암사진연구소에는 그도 꺼내보지 못한 현대사의 장면들이 담긴 수많은 희귀 사진(유리원판)들이 쌓여 있다. 최근에는 사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개인적 차원이라 많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그는 척박한 한국의 기록문화 현실에서 소중한 자료들이 단순한 개인의 사진쯤으로 치부되어 버리는 현실을 매우 안타까워하면서 작은 기록문화박물관을 세울 수 있다면 소장 사진들을 기증하고 싶다고 했다.

덧붙이는 글 | 임정의 사진작가의 홈페이지 (foto.co.kr)  

문화유산연대(http://www.koreanheritage.or.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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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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