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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우리 부부는 시골에 계신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역시 집에 계시지 않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마을회관에서 10원내기 고스톱을 치고 계시나 봅니다. 마누라는 냉장고 정리와 집안 청소를 하고, 나는 뒷밭으로 향합니다.

길가의 밭들은 버려져서 잡초만 무성합니다. 쌩쌩 부는 봄바람에, 곡식자리를 대신 차지한 억새풀이 슬피 웁니다. 젊은이가 떠난 농촌현실을 황무지로 변한 밭이 웅변하는 것 같습니다. 재작년에 막내형님과 밭에다 두릅나무를 심었는데, 두릅 심은 자리를 제외한 밭 전체에 딸기나무만 무성합니다. 딸기나무 사이에서, 새파란 이파리 몇이 보입니다.

바로 머위입니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이렇게 삐죽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나는 가만히 덤불을 걷어 냅니다. 머위뿌리 쪽의 황토에는 실지렁이 몇 마리가 보입니다.

▲ 겨울을 이기고 고개를 내민 머위
ⓒ 한성수
나는 머위를 조심스럽게 따서 비닐봉지에 담습니다. 집안형님의 밭에는 낯선 아낙들이 쑥을 캐고 있습니다. 보릿고개를 넘길 때 반갑게 ‘쑥’ 고개를 들이미는 생명의 나물, 쑥! 쑥을 캐는데 익숙하지 못한 나는, 쑥을 포기하고 냉이를 뿌리가 붙은 채로 캐어 냅니다. 이미 꽃이 핀 냉이도 있습니다.

▲ 파릇파릇한 냉이
ⓒ 한성수
마누라는 머위를 깨끗이 씻어서 살짝 삶습니다. 그런 다음 파르스름한 머위에 고추장과 설탕, 식초와 마늘,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그 위에 참깨를 살짝 뿌립니다. 윤기가 자르르 도는 것이 보기에도 먹음직스럽습니다. 우리는 조심조심 한 젓가락씩을 집어서 입에 넣습니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쌉싸래한 맛이 혀끝을 감돌다가 침을 고이게 합니다.

▲ 고추장으로 무쳐 낸 머위나물
ⓒ 한성수
어머니는 잃었던 입맛을 다시 찾았다며 웃음을 짓습니다. 워낙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것이다 보니, 겨우 한 접시 밖에 되지 않는 머위 나물은 금세 동이 납니다. 머위는 이제 계속 더 많이 이파리를 내놓겠지만, 겨울을 견디고 처음으로 무쳐먹은 오늘의 이 머위나물 맛이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조금 더 자라서 더 쌉싸래한 맛의 머위는, 밥맛을 잃은 사람들의 미각을 찾는 데 가장 훌륭한 채소임에 틀림없습니다. 무쳐먹든, 쌈으로 싸 먹든 그것은 먹는 사람의 자유입니다만!

저녁에 아이들은 삼겹살을 찾습니다. 그래서 삼겹살에 냉이를 살짝 얹어서 같이 굽습니다. 파란 냉이와 삼겹살은 참으로 잘 어울립니다. 고기가 노릇노릇 익고, 우리는 삼겹살에 냉이를 얹어서 입에다 넣습니다. 냉이의 싱그럽고 향긋한 향이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를 없애주어서인지, 참으로 고기 맛이 담백합니다.

▲ 냉이삼겹살 어떠세요?
ⓒ 한성수
마누라는 “요즘 잘 나가는 김치 삼겹살보다 냉이 삼겹살이 훨씬 맛이 낫다”며 “냉이삼겹살 전문점을 한번 내 볼까”며 웃습니다. 들깨를 미리 챙기는 폼이, 내일은 남은 냉이로 나물도 무치고 국도 끓일 모양입니다.

또 마누라는 '제철에 난 음식이 가장 훌륭한 보양식'이라고 강조합니다. 오늘은 봄을 여는 봄나물로 참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오늘 제가 직접 캔 머위나물과 냉이 삼겹살로 우리가족은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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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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