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평가하는 데는 다양한 정보가 필요하다. 평가 정보는 성별, 나이, 출생지, 학력, 학교성적, 전문분야, 경력, 재산, 외모, 성격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어떤 사안을 분석하는 데도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사안의 발생원인, 사안 관련 이해당사자, 전망, 해결 방안 등 여러 가지를 다뤄야 한다.
언론은 사람을 평가하고 사안을 분석할 때 어떤 정보를 판단기준으로 삼을까? 판단기준은 위에 열거한 것들을 비롯해서 다양하다. 그러나 그 중에서 유독 ‘출신학교’를 둘러싼 분석이 눈에 띈다. 언론이 전하는 ‘출신학교’에 대한 접근방식을 살펴보자.
“강원 춘천 태생의 최 사장 내정자는 강원대 영어교육학과, 서울대 대학원 영어영문과를 졸업하고 84년 MBC에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기자로 일하다 96년 노조위원장으로서 파업을 주도해 해직됐다가 복직 후 2000년 산별로 전환한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초대 위원장을 지냈다.” (<연합뉴스> 2월 22일자 ‘MBC 사장에 최문순 전 보도제작국 부장 선임’)
“그의 춘천고 선배로 유력한 사장 후보였던 엄기영 이사가 공모에 불참하면서 최씨는 다크호스로 떠올랐다.”(<중앙일보> 2월 22일자 ‘MBC 새 사장에 최문순씨 내정’)
지난 2월 MBC 신임사장에 취임한 최문순씨에 대한 언론의 소개다. 출신 대학과 출신 고교, 선후배 문제를 들며 최 사장에 대해 논하고 있다.
“정문수·정우성 보좌관은 둘 다 전남 영광 출신이고 한덕수 장관은 전북 전주 출신이다. 물론 3인 모두 서울대를 졸업했다. 정문수 보좌관은 법대, 정우성 보좌관은 외교학과, 한덕수 장관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정치권에 있는 '63회 KS 동기'로는 유인태 열린우리당 의원과 이철 전 의원이 있다.”(<오마이뉴스> 3월 13일자 ‘경기고 63회 '막강 파워 3인방' 뜨나’).
경제부총리 인선에서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이 임명됐다는 <오마이뉴스> 기사는 경기고와 서울대의 학연 공통성을 들며 ‘KS’라는 단어까지 사용하고 있다. 특히 “물론 3인 모두 서울대를 졸업했다”는 대목은 정부 요직을 맡으려면 ‘물론’ ‘서울대’ 출신이어야 한다는 투다.
빠지지 않는 고시합격자, 정부·기업 고위직 출신학교 분석 기사
언론이 출신학교를 거론하는 것은 인물평가 때만이 아니다. 각종 고시 합격자의 출신학교 분석은 물론이거니와 정부와 기업의 고위직에 대한 출신학교 분석도 빠지지 않는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5년간(31기~35기) 사법고시 합격자 4352명을 분석한 결과 강남구와 서초구 고교 졸업생의 합격률이 타 지역보다 월등하다...”고 분석하며 보도한 <동아닷컴>의 ‘사법고시 합격자수 강남출신이 최다’ 기사는 고교별, 대학별 사법고시 합격자들을 일일이 들고 있다.
“고교별로는 대원외고가 104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 다음은 한영외고 43명, 서울고 37명, 경기고 30명, 대일외고 27명, 휘문고 26명, 중동고 24명, 구정고 22명, 영동고 22명, 현대고 20명 순이다.
한편 출신대학별 사법연수원생은 서울대 1660명(38.1%), 고려대 796명(18.3%), 연세대 441명(10.1%), 한양대 247명(5.7%), 성균관대 181명(4.1%), 이화여대 129명(3.0%), 경북대 105명(2.4%), 부산대 100명(2.3%), 중앙대 65명(1.5%), 서강대 65명(1.5%) 순으로 나타났다.”
시간을 거슬러 <중앙일보>의 1994년 ‘대학순위 바뀌고 있다’ 기사는 출신 대학별로 더욱 세밀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기사는 ‘80년 이후 장ㆍ차관급 이상 행정공직자 배출’, ‘최근 5년간 4대 국가고시 합격자 배출 상위 13개 대’, ‘진출분야별 JOINS < Who’s Who > 수록인(정·관계, 법조계, 재계, 언론계, 학ㆍ교육계, 문화ㆍ예술계)’ 등으로 분석항목을 나눠 대학별 순위와 인원수를 일일이 나열하고 있다.
기업 임원을 분류할 때도 출신 대학별 구분은 결코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4일 한국상장사협의회가 발간하는 `2004년 경영인명록'에 따르면 10대그룹 67개 상장사 대표이사 113명의 출신대학은 서울대 31.9%, 연세대 13.3%, 고려대 12.4%, 한양대 6.2%, 인하대 5.3%, 성균관대 3.5% 등의 순이었으며 외국소재 대학 출신자는 7.1%였다.
그룹별로는 삼성그룹의 대표이사 22명 가운데 서울대 출신은 6명이었고 연대는 3명, 고대는 4명이어서 3개대 출신의 비율이 59.1%에 이르렀다. 삼성그룹의 대표이사는 또 부산대와 일본 와세다대 각 2명, 경북대ㆍ동국대ㆍ성균관대ㆍ충남대 각 1명 등이었다.
LG그룹의 경우 대표이사 13명의 출신대학은 서울대 5명, 고려대 3명, 연세대 2명 등 3개대가 10명으로 76.9%를 차지했다. 현대차 그룹은 서울대 3명, 한양대 3명, 성균관대 2명, 연세대 1명 등으로 3개대 출신은 30.8%였으며, SK그룹의 대표이사 16명은 서울대 4명, 고려대 4명, 연세대 3명 등으로 3개 대학이 68.8%였다.”(<연합뉴스> 2004. 10. 4 ‘10대그룹 대표이사 60%가 서울.연고대 출신’)
학력은 논하되 학벌은 타파해야 한다
언론이 인물을 평가할 때나 고시 합격자를 나눌 때 그리고 정부 고위직과 기업 임원직을 분류할 때엔 항상 ‘출신학교’가 따라 붙는다. 모두 사실에 근거한 보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별로 ‘출신학교’를 분석한 내용을 살펴보면 몇몇 대학과 고등학교에 머물고 있는 문제가 보인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으로 시작하는 대학과 ‘경기고, 경북고, 대전고, 전주고’ 등으로 나눈 고교의 분석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혹, ‘성공과 기회’는 명문학교를 나와야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학연’과 ‘학벌’은 이렇듯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이렇게 꽉 짜여진 학벌구조를 타파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픈 것인가?
학력은 논하되 학벌은 타파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요구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평가든지 조직에 대한 평가든지 특정 학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학벌’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목 놓아 이야기한다.
그러나 언론의 모습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위에 예를 들었듯이 ‘출신학교’를 다룬 기사들을 보면 마치 ‘학연’으로 똘똘 뭉쳐 ‘끼리끼리’ 뭔가를 해 먹는다(?)는 느낌이 든다. 고교 선후배끼리, 고교 동기동창끼리, 같은 대학 출신끼리 밀어주고 당겨주는 그런 느낌이다. 그것도 언론사에서, 정부에서, 법조계에서, 기업에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학벌’을 타파하고 공정한 ‘학력’평가에 앞장서야 할 언론이 앞 다퉈 ‘학벌’을 조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 걸친 출신학교별 분석 기사는 대학입학을 앞 둔 수험생들과 대학생들 그리고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결국은 어느 학교가 더 우수하다, 더 뛰어나다 등 학교별 줄 세우기 근거에 활용되며 ‘학벌’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여러 포털 사이트에서 대학 경쟁력과 관련된 내용을 검색해 보면 ‘대학 서열’에 대한 글들이 숱하다. 대개는 모 언론사의 기사와 자료를 인용하며 어느 대학이 더 우수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글들이다. 심지어는 모 언론사가 보도하는 대학 순으로 서열을 주장하기도 한다.
바라건대 언론은 '출신학교' 분석을 그만하라. 인물 정보에 학력이 필요하다면 출신학교를 거론할 것이 아니라 고졸인지 대졸인지 최종학력만을 언급하자. 그리고 오히려 업무에 필요한 전공을 했는지, 업무에 대한 정보와 역량 등을 갖췄는지를 분석하자.
고시 합격자와 정부, 기업의 구성 인원을 분석하는 방식도 바꾸자. 인원 분석을 출신학교별로 할 것이 아니라 언론사 나름의 기준을 갖고 특성을 만들어서 하자. 꼭 A대, B대, C대가 몇 명인지 ㄱ고, ㄴ고, ㄷ고가 몇 명인지 분석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