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는 고려대고, 사장은 연세대잖아!"
얼마 전 <오마이뉴스>가 한승조 교수의 발언 내용과 파장 그리고 고려대 관련 내용을 계속해서 보도하자 어느 독자가 남긴 의견이다. 한 교수의 발언과 기사 내용과는 별개로 <오마이뉴스>의 '고려대 비판' 의도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표현한 것이다.
이 독자 의견은 우리 사회에 '학벌주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많은 사람들이 망국적인 발언 내용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학교명을 들며 '의도' 운운하는 사람도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그에 동조하는 의견들도 있다.
학교를 묻는 것은 '출신 성분'을 분석하기 위한 것
몇 년 전에 필자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모 정치인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다. 한창 고민하던 진로에 대한 조언을 듣고자 함이었다(그는 필자가 원하던 직업 출신이었다). 그는 만나자마자 "학교는 어디 나왔나?"고 물었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다고 답하자, 그의 말이 가관이었다. "학교가 뭐 중요한가. 노력하면 되지. 열심히 해 봐."
'물론' 그는 대한민국의 최고(?) 대학을 졸업했다. 그런 그의 "학교가 뭐 중요한가…"라는 말은 자신과 같은 '최고 대학'이 아닌 데 대한 일종의 실망스런 표현이었다. 분명히 느낀 거지만, "열심히 해 봐"는 격려가 아니었다. '한번 해 봐라. 그 학벌로는 힘들 거다'는 다분히 냉소적인 감정이 깔려 있었다.
이것은 정치인 한 사람의 생각일 수도 있고, 필자의 과민 반응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학벌의 단맛을 느끼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말이었다. 무의식 중에 흘러 나온 말일지라도 그의 사회적 지위와 위상을 감안할 때 더욱 조심했어야 했다.
독자 의견과 모 정치인의 발언에는 너무도 만연한 '학벌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은 이들 한두 사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들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소개 받기도, 소개하기도 한다. 필자와 같이 기업을 운영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소개에 대부분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 사람은 어느 대학 나왔냐?"는 질문과 "이 사람은 OO대 나왔는데…"라는 말이다.
아주 좋게 본다면 좋은 의미의 '학연'을 찾는 것이자, 그 사람의 학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미리 파악하고 일러두고자 하는 의도다.
하지만 "어느 대학 나왔냐?"는 질문과 "OO대 나왔는데…"라는 말에는 '학벌'로 사람을 재단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그 사람이 얼마만큼의 영향력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그런 학벌을 가진 사람을 소개 시켜 주는 이가 대단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살면서 항상 느낀다. 학교를 묻고 답하는 것은 고등교육과정으로서 학력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출신성분'을 분석하는 것과 같다. 성골, 진골, 6두품 등으로 출신성분을 논하는 것도 아니고서야 학벌을 따지는 사회 인식은 바꿔야 한다.
"처음이 나중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이 처음을 결정한다"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삶은 대학 입학의 처음이 나중을 결정한다. 대학을 선택하는 그 순간이 삶의 상당 부분을 좌우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가 삶을 배우고 교육을 받을 때는 아니었다. 처음도 물론 중요하지만 나중이 어떠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배웠다. 사람의 경우에는 그랬다.
더욱이 대학 공부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학력을 증진 시키기도 하고, 여러 사회 경험을 통해 견문을 넓히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한 노력과 경험은 출신학교를 비교하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학벌의 폐해가 심각한 것은 나중보다는 처음이 더 중요하다는 데 있다. 변화하고 발전하는 사람의 삶과 능력을 대학 입학의 처음으로 재단하는 데 있다.
박노해의 <역사 앞에서> 중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다 죽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처음이 나중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이 처음을 결정한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라는 구절이 떠 오른다.
역사는 물론이지만 역사를 발전시키는 사람은 더 더욱 "나중이 처음을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진정으로 학벌이 타파돼야 할 이유다.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그 엄정함에
자세를 가다듬곤 합니다
역사 앞에서는 그사람(집단)의
처음이 나중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이 처음을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일제하에서 친일을 하다가 뉘우치고
독립운동으로 생을 마감한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한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치다가
막바지에 친일한 사람은 영영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다
역사는 무서운 것입니다
당신의 사정이 어떠하든
역사는 우리의 죽음 이후까지를 시퍼렇게 기록합니다
오늘 현실의 승리자가 되었다고 함부로 살지 마십시오
오늘 현실 패배자가 되었다고 함부로 걷지 마십시오
역사는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다 죽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처음이 나중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이 처음을 결정한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 박노해 <사람만이 희망이다> 중 '역사 앞에서' 전문
덧붙이는 글 | 모 정치인의 일은 필자에겐 참으로 가슴에 사무친 일이다. 필자는 학력과 학벌에 대한 아쉬움은 조금도 없다. 굳이 말하지 않겠지만 필자가 다닌 학교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최고 학교를 나왔다는 정치인이 그렇게 말하는 데는 할 말이 없었다. 어이가 없었으니까.
정치를 한다는 사람이, 그것도 사람들의 존경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이, 묻지 않아도 될 학교를 묻고는 한다는 말이 "학교가 뭐 중요한가"라니? 충격이었다. 최고 학벌을 누리고 있는 사람의 인식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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