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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이프> 봄호의 표지
ⓒ 이프
여자들이 포르노를 말한다. (특히 여성이) 섹스와 몸에 대해 발언하는 것을 꺼리는 한국 사회에서 꽤나 신선한 시도다. 이들은 장애인 청소년/녀를 위한 포르노는 왜 없는지 고민하며 남자들은 왜 그렇게 포르노에 몰두하는지 짐작해본다. 수없이 발생하는 성폭력이 포르노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하고, 여성의 욕망을 중시하는 ‘포르나’(포르노의 여성형 명사)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그 주인공은 2005년을 ‘포르놀로지’의 원년으로 선포한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발랄한 여자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포르노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가? 다른 때도 아닌 지금 이 시점에서? 그리고 그들이 포르노에 관해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 13일 서교동 <이프> 사무실에서 엄을순 사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이프> 엄을순 사장
ⓒ 이프
포르노, 정말 할 말 많은 주제

- 왜 포르노인가?
“포르노에 대해선 사실 오래 전부터 고민이 많았다. 여자들이 정말 할 말 많은 주제 아닌가? 그렇다고 단순히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두 번 써가지고는 안 된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를 기다렸다. 내공을 쌓으면서(웃음).”

- 그렇다면 지금이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한 이유는?
“얼마 전 일어난 밀양 집단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들이 수사과정에서 ‘포르노를 따라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포르노는 이론, 강간은 실천’이라는 명제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많은 남자들이 포르노를 즐기고 포르노를 통해 성지식을 쌓는데 이것이 옳은 일인가? 여성의 몸을 학대하고 대상화하는 엽기적이고 공포적인 포르노가 난무하는 현실을 ‘어쩔 수 없다’고 두고만 볼 것인가?

그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유영철 사건이나 밀양 사건을 본 사람들 대다수가 그런 고민들을 한번쯤은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마침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이 끝나고 뭔가 새로운 운동을 시작할 시기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이프>로서도 적절한 시기였다.”

- 여성이 성에 관련된 이야기를 공적으로 드러내어 하기는 쉽지 않다. 성을 이야기하는 여성들은 왜곡되기 쉽기 때문이다. 포르노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포르노는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시각들이 존재하는 복잡한 주제이다. 고민이 많았을 텐데.
“일단 나부터도 고민이 많았다. ‘이걸 다 쓸어버려?’하다가도 ‘아냐, 나부터도 뭔가 섹시한 포르노를 원하잖아?’하기도 하고. 온갖 생각이 다 드는데 그 생각들이 모두 일리가 있다. 그냥 무턱대고 없애고 보자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멍청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방식의 포르노가 생겨날 테니까. 그 다채로운 생각들을 드러내는 게 우선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하면 맛있게 요리할 수 있을까, 다 함께 고민해보자는 거다.

더욱이 우리는 이미 포르노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텔레비전과 잡지는 물론 컴퓨터와 휴대전화로도 쉴 새 없이 포르노는 소비된다. 그러다보니 여기에 무감각해지고 적응을 하는 거다. 이래서는 안 된다, 포르노를 가지고 한바탕 떠들어봐야겠다 싶었다. 물론 ‘밝히는 여자들’이라는 욕도 먹고 이런저런 어려운 일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야 워낙 무서운 게 없는 사람들 아닌가?(웃음)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 시작할 때도 ‘재밌는데 왜 그래?’하는 반응들이 많았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문제 제기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그래, 여자들 수영복 입혀놓고 물건 재듯이 하는 건 좀 그랬어’하는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왔다. 그렇게 해서 공중파 방송에서 미스코리아 대회 중계가 사라지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포르노를 말하고 고민하는 판을 벌려놓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올 6월 ‘안티 (성)폭력 페스티벌’로 한바탕 놀아볼 것”

- 안티 페스티벌과 같이 포르노에 관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오는 6월에 ‘안티 (성)폭력’이라는 주제로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있다. 이미 몇 가지 아이템은 제작 단계로 접어들었다. 밀양 사건에 대해 여, 남의 위치를 바꿔서 보여주는 단편을 비롯해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좋은 의견을 주실 분들, 도움을 주실 분들은 언제라도 환영한다.”

- 행사의 기획 의도는?
“포르노의 정체를 한번 알아보자는 것이다. 안티 페스티벌을 통해 미스코리아 대회의 실체를 까발렸던 것처럼. 우리 사회가 온통 포르노 홍수인데 이걸 어떻게 봐야하나? 무작정 즐겨도 되는지, 피하기만 해야 하는지. 이런 자리를 통해서 함께 모여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하면서 포르노를 데리고 놀아보자는 거다.”

- 개인적으로 포르노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여성의 욕망을 왜곡시킨다는 거다. 언젠가 여자를 바위 위에 눕혀놓고 섹스(여느 포르노에서 그러하듯 거의 강간에 가까운)를 하는데 여자가 신음소리를 내더라. 내가 보기엔 그게 좋아서 내는 소리가 아니다. 바위에 등이 까져서 아파서 내는 소리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아 저렇게 하면 여자가 좋아하는 구나’하고 오해할 거다. 이처럼 성에 관한 잘못된 판타지를 마구 생산해낸다는 것, 여자에 대한 폭력성을 정당화한다는 것이 포르노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 이프
'포르나'를 고민하는 포르놀로지의 원년이 되길

- 그 대안으로 여성주의적 포르노, ‘포르나’를 제시하는데 구체적인 설명을 하자면?
“지금 포르노의 여남을 바꾸어 단순히 남자를 눕혀놓고 억지로 섹스를 하는 게 포르나냐 하면, 그건 아니다. 포르나란 기존 포르노의 정형화된 공식-이를 테면 여남의 역할과 이들을 비추는 각도 등-의 정치적 함의를 읽어내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포르노를 말한다.

남자의 시각에서 여자의 몸만 비추거나 여성의 즐거움을 과장하고 왜곡하지도 않아야 한다. 폭력적이지 않고도 즐겁고 에로틱한 섹스를 그려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포르나는 완결된 어떤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고민이나 입장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올 한해를 포르놀로지의 원년으로 선포했다고 들었다.
“일단 봄 호에서는 “Por'NO' Love 'Yes'”의 주제로 포르노가 어떻게 폭력을 욕망으로 가장하는지 살펴보았다. 여름 호에서는 포르노가 부추기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남성성의 신화를 들추어냄으로써 왜 많은 여성들이 현재의 포르노를 지겨워할 수밖에 없는지 말해볼 것이다. 가을 호에서는 포르노와 자본주의와의 관계를 지적하면서 포르노의 경제학을 따져보고, 겨울 호에서는 포르노가 추구하는 가부장제를 해부하고 해체하는 작업을 할 생각이다.”

- 계획들이 많은데 이를 통해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
“앞에서도 말했듯 포르노를 한번 깊이 있게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무조건 좋아라하거나 배척할 것이 아니라 이것의 정체가 뭘까, 하고. 각자의 생각과 느낌도 드러내어보고 좋으면 왜 좋은지, 싫으면 왜 싫은지 한바탕 판을 펼치고 싶다. 포르노가 골방에 숨어 몰래 보거나 킥킥대며 친구들끼리 떠드는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모두가 고민할 수 있는 주제가 되길 바란다. 그 안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들이 제대로, 적극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이프>의 바람이자 목표이다.”

덧붙이는 글 | <이프>에서는 '안티 (성)폭력 페스티벌'에 함께할 독자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행사에 관한 자세한 문의는 www.iftopia.com 이나 02-332-5124 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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