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본이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만한 통쾌한 책이 나왔다.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를 여행하는 듯한 재미를 주는 책, <가상 역사 21세기>(A HISTORY OF THE TWENTY-FIRST CENTUR)가 그것이다. 저자는 마이클 화이트와 젠트리 리 두 사람.

▲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가상 역사 21세기> 앞표지
ⓒ 책과함께
마이클 화이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초의 과학자> <스티븐 호킹 과학의 일생> 등 10여 권의 화제작을 쓴 영국의 과학 저술가다. 옥스퍼드 대학교 도버브로예스크 대학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월간지 < GQ >의 편집자를 지냈으니 그 경력도 만만치 않다.

젠트리 리는 칼 세이건의 과학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에서 칼 세이건의 파트너로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NASA(미 우주항공국) JPL(제트추진연구소)의 주임연구원이다.

미국보다 한국에서 먼저 출간

학자가 본업인 사람으로서 학술서를 여러 권 쓰다 보니 대중과의 만남에 커다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한 마이클 화이트는, "이 책 <가상역사 21세기>는 나의 처녀작은 아니지만 가장 야심찬 작품"이라고 큰소리쳤다. 어느 특정 개념 또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 꽤 성공적인 대중서들과 달리 이 책은 한 세기 전체를 조망하는 가상 역사책인데, 읽어보니 큰소리칠 만하다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제 몇 년밖에 지나지 않은 21세기의 역사를 쓰겠다고 대들었을 때 동료학자 몇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렸다는데 그럴 만도 한 일이다. 아주 발빠르면서도 섬세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역사적, 과학적 지성이 풍부한 뛰어난 소설가들도 대들기가 쉽지 않은 일이리라. 그러나 마이클 화이트는 마침내 그 사건을 저질렀으며, 상당한 태내(胎內) 교육과 진통 끝에 출산했을 그 열매는 마침내 잘 만들어진 책으로 생산되어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 책은 미국에서 아직 출간되기 전인 원서를 한국에서 먼저 출간한 것이어서, 미국의 베스트셀러를 골라 번역하지 않고 좋은 책을 골라 번역 출간하려는 출판사의 의지가 돋보인다. 사실 그대로의 역사서를 주로 출판해 온 그동안의 출판사 콘셉트와는 색깔이 다르지만, 그 신선함이 오히려 매력이다. 또한 표지 및 본문 디자인, 책의 품위 등이 너무 잘 만들어져 '책은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며 박수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미래소설 같은 가상역사책

제목에 나온 그대로, 이 책은 사실이 아니다. 아니, 사실을 토대로 아직 존재하지도 않은 저 2112년의 시점에서 역사를 저벅저벅 거슬러 올라오면서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역사를 단정하고 있으니까 마치 소설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예언서도 아니다. 그런데 허구다. 과거의 역사를 잘 고증하여 만들어낸 허구다. 문장은 소설 문체가 아니지만, 소설처럼 흥미진진하다. 이것을 모태로 또는 시놉시스삼아 소설을 쓴다면 그야말로 재미있는 가상소설이 될 듯하다.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 아마도 그것은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뛰어넘는 소설로 자리매김하게 될지도 모른다.

떠오르는 용 중국, 지는 해 일본

이 책에 나오는 허구 가운데 가장 통쾌한 장면은 '제4장 새로운 세계질서'에 나온다. '도약하는 중국, 지는 해 일본' 꼭지를 보면 이렇게 단정하고 있다.

21세기 말이 되자 일본은 어느 분야에서도 세계 강국이 아니었다. 일본 경제는 시들었다. (중략) 나이든 사람들은 나라에 대한 귀속성이 점점 강해지는 반면, 젊고 유능한 젊은이들은 수입 좋은 중국 기업들로 빠져나갔다. 2048년에 이르러서는 일본의 정치인들도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인정하고,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가 약동하는 주변국의 군사보호를 받는 내용의 상호조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일본의 자존심은 크게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20세기의 상당 기간 일본의 통치를 받은 적이 있는 이웃나라 한국으로부터도 수모를 당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한국은 첨단 기술에 기반한 탄탄한 경제와 중국의 거대한 경제우산 속으로 발빠르게 능동적으로 편입하는 기민함으로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21세기 말 한국의 생활수준과 일인당 국민 총생산액은 일본을 앞질렀다. -<가상역사 21세기> 36~357쪽에서


21세기 주요 가상사건

'2112년에 지나온 100년을 되돌아보는' 이 기발한 역사책은 모두 6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생물학 혁명', '핵 전쟁', '대혼란', '새로운 세계질서', '네트워크 세계에서의 삶', '환경과 우주'. 21세기 가상연표도 친절하게 부록으로 붙어 있으며, 주요 가상사건을 뽑아보면 이렇다.

2011 최초의 복제인간, 중국에서 탄생
2016 핵 전쟁
2018 에이즈 바이러스 백신 개발
2022 화성에서 화석 발견
2023 일본, 중국과 군사협력
2024 가상세계 프로그램 최초 개발
2025 200종 이상의 암 완전예방 가능·컴퓨터 사라지고 유비쿼터스 출현
2028 우주호텔 등장
2031 세계인구 100억 돌파
2037 미국 시애틀 대지진·중국, 대만 무력합병
2038 아프리카, 물 전쟁
2039 황금쌀 개발로 빈곤국 기아 퇴치
2040 독일, 외국인 근로자 강제추방 선언
2042 라이브 스포츠 소멸되고 시뮬레이션 스포츠 일상화
2048 기독교 약화되고, 동양 사상 세계로 확산
2050 미국 스러지고 중국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
2051 쾌락 마약 등장
2054 남극 빙하 균열, 지구 환경 재앙 예고
2067 새로운 '4방향 결혼' 합법화
2085 우주 엘리베이터 건설
21세기말 한국 GNP, 일본을 추월
2099 평균 수명 100세, 남녀간 평균 수명차 소멸
2100 화성에 유인 우주정거장 건설


긴 꿈을 꾸듯 타임머신을 타듯

이처럼 호기심을 지독하게 자극시키는 <가상역사 21세기>는 독자들이 생업으로 삼고 있는 종목에 따라서 장기적인 설계 안목을 높일 수 있도록 많은 힌트를 줄 만한 책이다. 소설가인 나에게는 이 책이 새로운 소설을 구상할 모티프를 제공했다.

미국의 드림웍스사에서 이 저술을 시나리오로 만들어 가상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있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를 번역했던 미국 뉴욕주립대 서양사 석사 출신의 이순호씨가 번역했으며, 그는 "영화를 감상하듯,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이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들면 된다"고 '옮긴이의 글'에서 밝혔다.

긴 꿈을 꾸듯이 타임머신 타고 미래를 여행해 보는 재미가 넘치는 책, 바로 <가상역사 21세기>다.

덧붙이는 글 | <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이순호 옮김/2005년 3월 7일 책과함께 펴냄/223×152mm(A5신)/536쪽/값 9000원

●김선영 기자는 대하소설 <애니깽>과 <소설 역도산>, 생명 에세이집 <사람과 개가 있는 풍경> 등을 쓴 중견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시인과의 사색', '내가 만난 소설가'를 이어쓰기하거나 서평을 주로 쓰고 있다. "독서는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참신한 독서운동을 펼칠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는 한편, 현대사를 다룬 신작 대하소설 <군화(軍靴)>를, 하반기 완간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


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책과함께(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