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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7 장 녹색모자(綠幅)

“대사형께서 큰 실수를 하셨어요.”

운령은 심각한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전혀 있을 수 없다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 일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고, 그녀의 계산속에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일이었다. 대사형은 실수할 사람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가 가지고 있는 힘은 천하대계(天下大計)를 실행할 힘이었다. 그런 힘을 가지고 그런 중대한 실수를 했다는 것은 불길한 징조다.

“섭노야께서 가계시니 잘 처리되겠지. 정사제(程師弟)까지 가 있는 상태 아니냐?”

셋째사형 방백린은 분명 위험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애써 위안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운령은 알지 못할 불길한 느낌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분명 섭장천 어른이 못미더워서가 아니었다. 풍철한이 움직였다는 것은 구파일방이 움직였다고 보아야 옳았다. 아니 단지 그 뿐 만이라면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구파일방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비원에게라도 넘겼다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상당히 어려울 거예요. 더구나 흑요의 보고에 따르면 신검산장은 쉬운 곳이 아니예요. 흑요가 투입 된지 열흘이 지났어도 아직 그들의 위치도 파악하지 못했어요.”

“신병이기를 모으는 자이니 그 보관도 철저하게 대비했겠지.”

여섯째 사형 등자후의 말이었다. 그 말에 운령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정도가 아닌 것 같더군요. 흑요가 이렇게 난감해 한 적은 없었어요. 자칫 이 일로 대계가 차질을 빚을까 두렵군요.”

운령의 입에서 이토록 심각한 말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모든 일에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한 가지 대책이 안 된다 싶을 때면 그녀는 또 다른 대책을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불안한 내색을 비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일년… 일년이 아니라면 육개월만이라도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녀는 고운 아미를 찡그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모든 일이 그녀의 계획대로 실행되어 왔고, 그 일이 성사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녀의 계산 하에 움직였다. 헌데 요사이 몇 가지 일이 점차 틀어져 가고 있었다.

백가촌(百家村)의 일도 틀어졌다. 그 곳 만큼은 반드시 합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의 태도는 너무나 완강했다. 다녀 온 세 어른은 포기하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녀의 할아버지인 신주귀안이 그런 말을 했다면 그것은 옳을 것이다. 포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당장 얻을 힘은 아니었다.

만박거사 구효기의 건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기이한 냄새가 났다. 또한 그런 자는 적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행동에 제약을 줄 수 있는 자다. 그래서 죽이라 한 것인데 그것 역시 실패했다. 그를 너무 과소평가했고 일곱째 사형이 직접 나서지 않았던 것이 실패의 요인이었다. 그나마 구효기가 그녀가 예상하고 있었던 조직에 속해 있음을 알았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섭장천 어른의 외손녀인 조양궁의 진진이 일을 틀어 놓은 것도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걱정은 했지만 섭노야의 일이라 말을 하지 못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문정대(紋正隊) 인원 중 종오(終五)와 점육(點六)의 죽음과 청마수와 흑마조의 중상으로 끝난 것은 다행이었지만 그 일은 나중에라도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는 일이었다.

또한 열명의 사형제 간 어느 때부터 인지 모르게 약간씩 틈이 생기고 있었다. 그리 심각한 것도 아니고 또한 알력 같은 것은 더 더욱 아니었지만 과거와 달랐다. 그들 형제에게는 보이지 않는 끈이 형성되어 있었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서로의 마음을 알았고 그 뒤에 감춰져 있는 의미를 알았다. 헌데 그것에 틈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구효기 건에 일곱째 사형이 직접 나서지 않았던 것도 그러했고, 다섯째 사형인 강명이 담천의를 죽이지 않았던 것도 그 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완벽한 준비를 해왔지만 본래 완전한 준비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일이란 항시 변수가 많은 것이어서 아무리 천기(天氣)를 보고 사물의 이치를 안다 해도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자칫하면 많은 희생이 따를 것 이예요. 지금으로서는 전적으로 섭노야와 아홉째 사형이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지원은…?”

“급한 대로 문정대(紋正隊) 인원 여덟명 모두를 투입했고, 본래 움직이던 인원과 합류하여 외부에서 도와주도록 했어요. 하지만 흑요의 보고에 따르면 부족할 수도 있어요. 신검산장을 설계한 자를 찾고 있지만 누군지조차 알 수 없군요.”

그녀의 얼굴에는 또 한줄기 불안감이 스쳐 지나간다. 확실히 천하는 넓다. 계산에 넣지 않았던 신검산장은 절대 만만한 곳이 아니다. 그리고 그곳의 장주와 그의 동생 풍철한을 계산에 넣지 않은 것도 실수다. 지금 당장 이곳에 있는 자신과 두 사형이 그 곳에 있다면 어찌 해 볼 수 있다지만 아무리 빨리 간다 해도 이틀이다.

더구나 그곳엔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 철혈보의 정예들이 있다. 또한 구파일방 인물들도 곧 당도한다.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일이 틀어진다면 문제로구나.”

방백린처럼 운령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도 없다. 그녀는 일이 틀어진다 해도 또 다른 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그는 사매를 다그칠 생각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밝혀지면 구파일방은 물론 전 무림이 나서서 조사에 들어갈 거예요. 어차피 시간 싸움이예요. 일의 순서를 바꿔야겠지요. 최대한 그들의 이목을 가리고 지연시켜 놓아야겠어요.”

그녀는 이미 그 뒤의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 어차피 치러야 할 일이었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시간을 벌어야 했다. 최소한 육개월 정도는 그들이 움직이면 안 되었다. 그렇다면 일의 순서를 바꾸어야 한다. 그것으로 인해 더 큰 문제를 야기 시킬 수도 있지만 당장이 급하다. 그녀는 방백린을 바라보았다.

“사형!”

그녀가 부르자 방백린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띠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안다.

“그러자꾸나. 이 우형이 나서보기로 하자. 신검산장을 들러 섭노야를 모시고 대형께 가 있으마. 아무래도 우리는 내년 춘절(春節)에 있을 성화대전(聖火臺展) 때나 모이게 되겠구나.”

아마 운령 자신이 없었다면 눈앞에 있는 셋째사형이 모든 계획을 세우고 추진했을 것이다. 그는 매우 현명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생각과 계획에 근접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미 그녀의 표정 하나로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일이 커지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우리가 신검산장을 몰랐던 게 잘못이죠. 아까운 일이지만 산서에 있는 원앙(鴛鴦) 두 마리를 투입해야겠어요.”

그 말에 방백린의 의외라는 기색을 띠웠다. 그들은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곳은 그들의 또 하나의 안배를 위하여 준비해 둔 것이었다.

“그 정도로 다급하다고 생각하느냐?”

“사형께서도 어렵다고 생각되면 모든 것을 접고 물러나세요. 미련 갖지 말구요. 상대가 사형을 알게 되면 그만큼 어려워져요. 무엇보다 대사형이 준비하고 있는 상황만큼은 직접 챙겨 보도록 하시구요. 만일 그곳에서 또 한번의 실수가 있게 되면 뜻을 펼치기도 전에 접어야 할지 몰라요.”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대사형은 너무나 패도적이다. 그는 두뇌의 중요성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힘이 최고라고 믿는 사내다. 둘째 사형은 언제나 타협한다. 교묘한 언변으로 상대를 사로잡고 적당한 선에서 거래한다. 그리고는 그가 원하는 바를 얻는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다. 그래서 어른들은 자신을 지목해 전체의 일을 추진해 나가도록 만들었다.

어차피 그곳의 준비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실수가 아니고 풍철한 정도의 인물을 놓칠 정도로 허약하다면 아예 지금까지의 계획을 포기하고 다시 지하로 스며들어야 한다. 다시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다. 사매는 자신에게 그것을 확인하라고 하는 것이다. 단 한번의 실수는 벌써 계획의 절반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강사제도 그곳으로 가라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 말에 운령은 또 다시 탄식을 터트렸다. 너무나도 고지식한 사람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오른팔까지 잘라 줄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면 잘된 일일지 모른다. 일부 사형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던 짐을 홀가분하게 벗어던지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이제는 그녀의 뜻대로 처리하는데 아무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오후 늦게 이곳에 도착할거예요.”

“바보 같은 친구… 꼭 그랬어야만 했나?”

방백린의 탄식 같은 중얼거림이었다. 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짐을 벗을 길이 그것 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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