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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제는 애 엄마의 월급날이었습니다. 매달 그렇게 해 왔듯이 어제 저녁도 우리 가족은 근사한 외식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긴 뭐 근사한 외식이라고 해 봤자 동네 분식집이나 중국집에 가서 애들은 돈가스나 볶음밥을 먹고 우리 부부는 김밥이나 자장면, 아니면 쫄면이나 따끈따끈한 짬뽕을 먹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물론 요즘같이 살기 어려운 때에 그나마 가족들이 외식 흉내라도 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요. 더구나 맞벌이 부부의 남편으로서는 이렇게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애들 엄마로 하여금 저녁밥 짓기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어제 우리 부부는 조금은 심란한 상태에서 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너희들이 좋아하는 돈가스 먹는 날이다. 좋지?"

어제도 나는 모처럼의 외식을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해 보려고 일부러 흥을 내어 말했습니다. 여기에 막내 녀석은 곧장 화답을 해 왔습니다.

"아빠, 난 돈가스 좋아해요."
"응, 좋아. 그럼 가서 많이 먹어야 한다. 그런데 왜 넌 가만 있어? 돈가스 먹기 싫어?"

내가 큰녀석에게 묻자 이 놈이 대뜸 그럽니다.

"아빠 돈 없잖아요. 근데 어떻게 돈가스 먹어?"
"돈? 아빠가 왜 돈이 없어. 오늘은 또 엄마가 월급 받은 날인데."
"아빠하고 엄마하고 매일마다 돈이 없다고 다퉜잖아요. 그러니 돈이 있어도 아껴야지요. 돈가스 사 먹고 또 돈 없다고 하려구요?"

순간 나나 애 엄마나 조금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니 당황했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할 것 같습니다.

나는 처음 녀석의 말을 듣고서는 '이 녀석이 벌써 이렇게 커 버렸나'하는 일면 대견스러운 생각이 들더니 이내 '이 놈이 어느 새 돈을 다 알고 있구나'하는 아이의 영악스러움에 대한 일종의 경계심이 일어나는가 하면 급기야는 '우리가 평소 녀석 앞에서 돈 때문에 얼마나 다투었으면 이런 소리까지 들을까?'하는 다소 착잡한 심정까지 들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애 엄마도 당황스러웠는지 큰애를 보고 한마디합니다.

"너, 아빠하고 엄마하고 얼마나 다투었다고 그런 말 하니? 네가 돈이 뭔지나 알아?"
"돈이 있어야지 과자도 사고 어린이집에도 갈 수 있어. 엄마하고 아빠하고 돈 때문에 지난 번에도 차 안에서 싸웠잖아요. 또 아주 아주 지난 번에도 싸우고, 난 다 알아."

큰놈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한 말입니다.

녀석의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사실 얼마 전에 우리 부부는 생활비며 기타 씀씀이에 대해서 서로 목소리를 높여가며 다툰 적이 있습니다. 물론 녀석을 뒤에 태우고 가면서 다투었으니 모를 리가 없겠지만 설마하니 우리가 돈 때문에 싸우고 있다는 것까지 알기야 하겠는가 했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녀석을 너무 어리게만 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어차피 돈가스 사먹어야 하는 날이니 너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많이 먹기나 해. 알았어?"

난 서둘러 녀석을 입막음해 놓고서는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녀석의 나이를 고려해보자면 지금 한창 꾸밈없이 생각하고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 때인데 녀석은 마치 애 늙은이처럼 돈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제깟 녀석이 돈이 뭔지나 알면서 그러는가 싶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 부부가 녀석 앞에서 얼마나 돈 문제로 다투었으면 그런 말까지 할 수 있었을까 하는 때늦은 반성의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시 우리 부부를 슬프게 하는 것은 우리 애가 지나치게 빨리 영악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입니다. 때가 되면 어련히 그렇게 될 터인데 못난 부모 때문에 어린애다운 순수성이 지나치게 빨리 희석되어 버리는 것 같은 염려가 들기도 합니다.

하긴 이렇게 생각해 보니 최근 들어 녀석의 행동 하나 하나가 다시금 새롭게 보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녀석의 가방에 사탕을 넣어주고 선생님과 친구들 하고 나누어 먹으라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녀석의 가방에는 사탕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물론 녀석은 깜빡 잊어 버렸다고 말하지만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다음 날에도 사탕은 그대로 돌아왔으니까요.

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친구에게 조그만 장난감이나 과자를 받아 들고 와서는 자랑을 하기도 하는데 내가 혹 '그럼 넌 그 친구에게 무얼 선물했니? 뭐 다른 것 준 것 있어?'하고 물어보면 이내 고개를 가로젓고는 맙니다.

이런 장면들이 생각나면서 나는 참 많이 우울해졌습니다. 녀석이 어른한테 버릇없이 구는 행동보다도, 존댓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사실보다도, 밥을 잘 먹지 않아 걱정이라는 사실보다도 녀석이 너무나 일찍 영악해진다는 사실이 어쩜 더 큰 걱정거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한편으론 어린애다운 순수함보다는 영악함에 물들어 버린 듯한 녀석의 이러한 행동이 그저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별난 행동이겠거니 하는 위안도 해봅니다.

그러면서 결국 되돌아보게 되는 곳은 바로 우리 부부의 모습이었습니다. 아파트에서 이웃과 거의 내왕도 없이 살다보니 무엇 하나 나누는 것이 있을 수 없고 그렇다고 따로 따뜻한 마음을 나눌 상대가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보니 녀석도 어느새 우리 부부의 이러한 생활을 보고 저 나름으로 딱딱한 껍질을 구축하고서 자신만의 영악함을 키워나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긴 요즘 어디 동네 잔치가 있어 녀석을 데리고 다니면서 이웃들간 음식 나누어 먹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동네에서 공동으로 하는 일이 있어 일손을 나눌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과연 녀석에게 어떻게 더불어 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만 그러면서도 서둘러 갖게 되는 마음은 어떻게든 녀석에게 받는 즐거움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기쁨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려주어야겠다는 아비의 화급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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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기자'라는 낱말에 오래전부터 유혹을 느꼈었지요. 그렇지만 그 자질과 능력면에서 기자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많은 시간을 망설였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일단은 사회적 목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생각도 이야기 하는 게 그나마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치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저 글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고 책임감있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는 글쓰기 분야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자 자주 써온 일기를 생각할 때 그저 간단한 수필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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