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복형제들>은 예전에 <삼오식당>을 읽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시장사람들이 나와서 왁자지껄 삶의 신산함을 떠들어댔을 때와는 다른, 뭐랄까 조금 더 깊어지고, 괴기스러워진 느낌. 주인공의 성격과 사고의 흐름도 좀 괴상하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성격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데다가 도대체 주인공과 어떤 관계인지도 감이 잡히지 않아 이게 같은 작가가 쓴 게 맞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반쯤 읽다보니 알게 되었다. 이명랑이 그리려고 애썼던 풍경이 무엇인지를…. 작가는 타자 중에서도 타자, 시장통 사람들 중에서도 주류에 서지 못한 그야말로 소외 그 자체인 사람들의 풍경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지나쳐갈 때,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쳐 가게 되는 투명인간들. 철저하게 소외된 자들. 인간이지만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인간이지만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 모퉁이를 돌아 차도를 건너 나는 다시 서울상회로 돌아왔다. 왕눈이는 여전히 좀 전과 다름없이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두 눈만은 담요에 그려진 디지몬의 날개에 고정되어 있었다. 난쟁이의 부릅뜬 눈이 무엇을 더듬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다리가 짧은 저 난쟁이에게도 날개의 기억은 존재한다. 꿈을 꾸는 동안에만 돋아나 아침 햇살에 녹아버리는 그런 날개 하나쯤은 난쟁이의 비좁은 가슴속에서도 파닥거렸다….
수없이 지나쳐왔지만 나는 언제 한 번이라도 살갗이 까만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그들의 삶과 희로애락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불구의 몸으로 시장을 돌아다니는 키 작은 난쟁이를 돌아본 적이 있었던가. 조그만 구멍가게에 웅크리고 앉아 다소 음침한 시선으로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는 지저분한 소녀의 일상에 대해 상상해본 적이 있었던가. 내 사고 내에 그들의 존재는 없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리고 살아가고 있고 생각하고 있고 더 나은 삶을 욕망하고 있다. 바로 나처럼.
이명랑 소설의 특징은 인간에 대한 '미화'나 '장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가차 없이 우선순위에 둔다. 서민을 '소리 없이 부지런하게 사는 선량한 사람들'로 그렸던 기존의 서민소설과는 다르다.
소외받은 약자이기 때문에 피해의식도 많고, 악의도 있으며, 재화에 대한 욕망도 노골적이다. 왜 서민이라고 꼭 선량하고 순해야 하는가. 서민도 인간이고, 더군다나 코너에 몰려 살아가는 약자이다. 당연히 비틀린 마음이 있게 마련이다. 작가가 외쳐대고 있는 듯 했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내게 인간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훌륭한 인간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사람을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 남을 위해 봉사를 많이 한 사람? 모든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기심과 욕망을 움켜쥐고 실현하며 살아가고 있다. 과연 누구를 훌륭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이명랑은 그에 대한 답을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절대자로부터 삶을 부여받았으며 그것이 왜 내게 할애되었는지, 어떻게 연명해나가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유지해야 하는지, 어떻게 끝내야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저 절대적으로 펼쳐져 있으므로 질기게 살아내야 할뿐. 작가는 그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생에 대한 질긴 집착, 생명력. 각자 떨어진 자리에서 삶을 있는 힘껏 연명해내는 것. 내 존재를 증명하는 것.
작가가 애써 지상위로 끌어올린 약자들. 우리 사회 가장 깊은 곳에 던져져 미처 보이지 않았던 타자들도 생각하고, 아파하며 치열하게 삶을 연명해간다. 살갗이 검다는 이유로 개처럼 바닥에 쓰러져 만인 앞에서 성기를 드러내야 했던 인도인 노동자도, 몸을 팔아야만 텔레비전 앞의 안락한 시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불구의 여인 ‘춘미언니’도, 주민등록증을 갖기 위해 남편의 폭력과 수많은 남자들의 몸을 견뎌내는 중국인 여자도, 커다란 개를 끌고 다녀야하는 난쟁이도, 지하실 냉동 창고 옆에서 밤마다 침입자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며 잠을 자야하는 주인공 소녀도 모두모두 자기 삶을 치열하게 전개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
… 춘미 언니는 대답이 없다. 나는 언니의 비쩍 마른 장딴지 위에 콘돔을 올려 놓았다. 이 콘돔을 나는, 어제 오후 버스 정류장 근처의 새나라 약국에서 샀다. 다른 건 몰라도 춘미 언니의 임신만큼은 참을 수 없다. 언니가 산부인과의 수술대 위에 누워 다리를 벌린다면, 산부인과 의사는 그녀의 자궁에서 태아를 긁어내며 이런 말을 지껄일 게 뻔하다.
“그래도 할 건 다 했군.”
어엿한 직업을 갖고 있는 누군가가,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나의 저녁의 불청객을 업신여기는 꼴만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약자중의 약자로 쳇바퀴 돌 듯 하는 삶을 초라하게 연명해가고 있다고 여겨지고 있겠지. 상상속의 강자의 시선에 불현듯 전율한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열심히 생각하고 노력하고 아파하고 있는데….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목, 내 수많은 허위의식에 대해 생각했다. 앞으로는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나도 결코 만만하게 대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