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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환 안되는 교통카드

▲ 간만에 보게 된 추억의 버스 회수권
ⓒ 김정은
오랜 기다림 끝에 올라 탄 102번 시내버스, 요금 단말기에 습관적으로 지갑을 갖다대자 기분 나쁜 경보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저씨 교통카드 겸용 신용카드가 된다고 붙어있던데 왜 이러죠?"
"서울에서 왔나요?"
"네."
"다른 지방 사람들 건 되는데 유독 서울 사람들 건 안돼요. 그냥 현금으로 내세요."

이럴 수가…. 별 생각 없이 서울처럼 되겠거니 생각한 버스카드 겸용 신용카드가 천안에 와서 거부당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신용카드 하나로 전철을 통해 천안까지 오는 데는 성공했으나 정작 중요한 버스가 말썽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 사용하는 버스카드 단말기(티머니)와 천안 버스카드 단말기(마이비)가 서로 호환이 안 되어 버스 이용자들이 불편해 한다는 내용의 뉴스보도가 머리를 스친다.

문제의 주범은 바로 지방자치단체 및 전자화폐업체들의 시장선점 과정에서 발생한 무분별한 경쟁이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2004년 1월 정보통신부가 뒤늦게 호환이 가능하도록 지자체들에게 표준 SAM(Secure Application Module)시스템을 권고하였지만 이미 2000년 지자체마다 무분별하게 경쟁하듯 설치된 시스템을 표준 SAM으로 바꾸려면 기존 인프라를 재구축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가 생기므로 시스템 호환이 지지부진하게 된 것이다.

정말 하나의 교통카드로 전국일주를 할 수 있는 꿈은 불가능한 것일까? 나는 할 수 없이 잔돈을 탁탁 털어 현금으로 버스 요금을 지불한 후에야 차창 밖으로 천안 시내의 거리풍경을 바라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버스를 타지 않고 자동차로 왔다면 길을 찾느라 보지 못했을 거리풍경들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너는 차를 몰고 달려가는구나
철따라 달라지는 가로수를 보지 못하고
길가의 과일 장수나 생선 장수를 보지 못하고
아픈 애기를 업고 뛰어가는 여인을 보지 못하고
교통순경과 신호등을 살피면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 구나
너의 눈은 빨라지고
너의 마음은 더욱 바빠졌다
(중략)
걷거나 뛰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남들이 보내는 젊은 나이를 너는
시속 60km 이상으로 지나가고 있구나
네가 차를 몰고 달려가는 것을 보면
너무 가볍게 멀어져 가는 것 같아
나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 젊은 손수운전자에게 / 김광규


교통카드와 회수권

▲ 통일기원 각원사 청동대불
ⓒ 김정은
교통카드가 작동 되지 않아 불편한 점은 많았지만 덕분에 학생시절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물건을 사용하게 되었다. 바로 천안행 시내버스에 사용하는 회수권이었다.

중학교 시절 한꺼번에 구입한 한 달치 학생용 회수권은 현금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얼마나 중요했으면 하나씩 잘라 특별히 만든 회수권 주머니에 넣어 다녔을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통카드가 등장하면서부터 점차 회수권이 사라지기 시작해 보기 힘들었는데 이곳에서 보게 된 것이다.

▲ 203 계단
ⓒ 김정은
천안시내버스는 천안역을 출발해 30여 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각원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절을 향해 걸어가다 보니 절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인공호수와 반짝반짝한 느낌의 203계단이 소원을 이루려면 어서 올라오라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백팔번뇌와 관세음보살의 32화신, 아미타불의 48소원 및 12인연과 3보(寶)의 숫자를 모두 합쳐서 만들어졌다는 203이란 숫자를 해석하며 돈 냄새 풀풀 나는 반짝반짝한 화강암 계단을 보니 갑자기 내가 왜 이곳에 오려고 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든다.

더더군다나 이 절은 오래된 절이 아니라 재일교포인 김영조(金永祚)란 사람이 남북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시주한 불사비용으로 1977년 5월에 태조산 중봉에 세워진 최근 사찰이라는 점 또한 마음에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걱정했던 대로 이 곳은 엄청난 자산가가 지은 절답게 모든 것이 엄청난 규모이다.

청동대불 크기만큼의 소망과 기왓장 크기만큼의 소원

▲ 기왓장에 적힌 개인의소박한 소망들
ⓒ 김정은
무게 60톤에 앉아 있는 높이가 15m이며, 귀의 길이만도 1.75m, 손톱 길이는 30cm나 된다는 엄청난 규모의 통일기원 청동좌불상은 물론이고 대웅전, 설법전, 관음전 등의 규모도 엄청났다. 심지어 해우소라고 하기보다는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이 연상되는 깨끗한 화장실도 다른 사찰에 비해 크고 넓었다. 규모만으로는 경주 불국사 이래 대사찰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은데 과연 사찰만 크다고 인간 믿음의 깊이가 깊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곳에 괜히 왔다는 후회는 경주 황룡사 치미(큰 기와집의 대마루 양쪽 머리에 얹는 장식용 기왓장)를 본떠 만들었다는 '태양의 성종' 앞에서 드디어 폭발해버렸다.

각열거사가 기증했다는 내용의 사연이 담긴 대문짝만한 명패가 절의 정가운데에 버티고 서 있다는 사실이 왜 이리 당혹스러운지….

그러나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잠시나마 나의 발길을 잡은 곳이 있었다.

▲ 각원사 전경
ⓒ 김정은
바로 사람들의 소박한 마음이 적혀 있는 기왓장 무더기였다.

일요일에는 씨티투어로 알뜰여행을...

천안시는 노선버스 운행이 어려운 관광지를 연계시켜 운행하는 무료 시티투어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천안역 광장에서 출발하므로 전화(041-550-2032)로 예약받는다.

15인 이상 단체일 경우에는 사전에 예약하면 평일에도 운행한다고 한다. 소요시간은 총 7시간이며 코스는 다음과 같다.

- 코스 : 천안역 광장 출발(10:00)-우정박물관(10:15)-태조산조각공원(10:40)-각원사(11:00)-국학원(11:50)-아우내장터(12:30 중식)-유관순열사유적지(13:35)-조병옥박사생가(14:10)-독립기념관(14:35)-천안삼거리공원경유(16:50)-천안역광장 도착(17:00)

너무 빡빡한 일정이 부담스럽다면 몇군데만 선택해서 버스로 이동하는 여행도 괜찮다.

천안역이나 천안시외저스 터미널 앞에서는 독립기념관과 병천방면 온양온천행 버스노선이 수시로 운행되기 때문에 교통은 불편하지 않다.
단 각원사의 경우에는 각원사행 시내버스가 102번 하나뿐이고 운행시간도 뜸하기 때문에 인원이 많으면 택시로 다녀오는 것도 좋다.

천안역에서 각원사까지의 택시요금은 약 6000원 정도이고 시내버스요금은 어디나 성인기준 950원(회수권을 미리구입시에는 930원), 온양까지는 1450원(회수권은 1430원)이다. / 김정은
하얀색 페인트 펜으로 꼼꼼하게 새겨놓은 마음들은 국적도 다양하고 글씨체도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가족건강과 행복, 사랑,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내용이었다.

남북통일이라는 거창한 발원으로 세워졌다는 이 절의 지붕을 덮어가는 기왓장에 쓰여진 소망이 너무 소박하고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 아이러니를 뭐라 표현해야 하나?

씁쓸한 느낌으로 기왓장에 쓰여 진 비슷비슷한 내용의 사연을 훑어보다가 한 기왓장에 눈길이 멈춘다.

"스님 건강하소서. 오늘은 정원이가 2년만에 스님과 1시간 30분 대화한 날."

갑자기 궁금해졌다. 기왓장에 이런 내용의 글을 쓴 이가 지칭하는 스님이 과연 누구일까? 누구인지 모르지만 참 행복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속물처럼 보이는 이 공간에서 우연히 발견한 기왓장 글씨 하나가 나를 깨우쳐 주었다.

혹시 각원사를 속물이라고 평가 절하한 내 스스로의 잣대 또한 절의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속단해버린 편견 때문은 아니었는지….

나는 다음 목적지인 병천 아우내 장터를 가기 위해 102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병천으로 가는 시내버스로 다시 갈아타기 위해서다.

덧붙이는 글 | 2만원으로 떠나는 천안 당일여행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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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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