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연인과 처음 손을 잡았을 때 그 느낌을 기억하십니까? 해묵은 털북숭이 겨울옷을 한참 입다가 벗을 때 겪었던 그 찌릿함은요? 물 묻은 손으로 코드를 꽂다가 흠칫했던 경험은 있으실 테지요? 이 모든 경우에 우리는 '전기가 온다'고 말하곤 합니다. 흔히 '전기'라고 정의하고 '짜릿짜릿'이라는 형용어로 나타내는 그 실체에 대한 모든 것을 이 책은 감추지 않고 낱낱이 보여줍니다.
전기가 언제부터 있었을까? 이것부터 시작해보기로 하지요. 우주가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빅뱅이 일어난 바로 그 순간 텅 비어 있던 공간에서 회오리 같은 강력한 전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 전자들은 대개 단순한 수소 원자의 일부로 우주를 떠돌다가 거대한 별 속으로 떨어졌고 그 별이 폭발할 때의 더 강력한 힘에 의해 원자덩어리가 됐습니다.
그러다 태양계의 지구의 한 구석에 처박히게 되었지요. 언젠가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해주기를 기다리면서 말이죠.
인간이 처음에 발견했던 전기는 어떤 형태였을까요? 아마도 번개였을 겁니다. 미개한 인간들에겐 무척이나 두려운 자연 현상이었겠지요. 벼락에 맞아서 죽은 사람도 제법 될 걸요?
인간의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자연은 더 이상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가 아니게 되었지요. 인간이 처음으로 전기를 이용한 건 바로 전보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모스 부호’로 알고 있는 모스가 그 원리를 발견했어요. 물론 그는 떼돈을 벌었지요.
이어서 벨은 전보를 좀 더 발전시켜서 전화를 만들었지요. 그가 전화를 발명하게 된 과정은 몹시 흥미롭습니다. 그야말로 말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여성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애쓴 결과물이었거든요. 그야말로 사랑과 비즈니스의 완벽한 결합이었던 것이죠. 이 달콤한 러브스토리는 책에 자세하게 나오니 여기선 넘어가겠습니다.
그 다음부터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롤러코스터처럼 정신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우리는 지금 발명왕으로만 알고 있는 에디슨의 구린 뒷모습은 물론이고 세계굴지의 대기업인 J. P. 모건이 어떻게 덩치를 불렸는지도 슬쩍 엿볼 수 있어요. 전구가 개발되고 나서 연계된 전기 산업이 어떻게 발전되었는가 하는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왜 전기요금을 내게 되었는지도 분명하게 알 수 있어요.
전기가 가진 힘은 단지 이것뿐이 아니었어요. 전기는 힘의 장, 즉 역장을 가지고 있지요. 자기장도 가지고 있고요. 패러데이로부터 시작해서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로 이어지는 과학자들의 노력과 연구는 인류와 별개인 듯 보이는 순수과학연구가 우리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인지 절절히 보여줍니다.
당시 사람들은 전기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힘의 장에 대해서는 인정하기를 꺼렸어요. 한 사업가의 결단(물론 그는 억수로 돈을 벌려고 한 일이었지만)으로 지금 생각하면 좀 터무니없지만 거창한 사업이 시작됩니다. 미국과 영국의 사이에 있는 대서양을 케이블로 이어서 소식을 주고받겠다는 구상이었지요. 이 과정에서 결국 힘의 장은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받게 됩니다.
이 힘의 장을 이용한 하인리히 헤르츠가 전파를 발견하는 과정을 다룬 6장은 그야말로 새로운 글쓰기의 한 전범을 보여줍니다. 그의 일기와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연설문, 논문 등에서 발췌해서 이야기를 엮어갑니다. 그 스릴과 긴박감은 읽지 않고선 모를 걸요. 이 책의 편집자로서 '강추'하는 장입니다.
전기가 이렇게 좋은 데만 쓰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유감스럽게도 곧 전쟁이 닥칩니다. 전자파를 이용해서 상대편 적기의 존재를 알아낼 수 있는 레이더파는 엄청난 살상을 가져옵니다. 세계 역사에서 크나큰 악몽으로 기억되는 드레스덴 폭격이 바로 그것입니다. 영국에서 먼저 개발해서 재미를 보다가 후발 주자인 독일이 더 뛰어난 레이더를 개발하고 이를 역이용하여 작전을 펼치는 장면은 스릴과 긴장이 넘치는 한 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방불케 합니다.
전기를 말하면서 컴퓨터 얘기를 빼놓을 수 없지요? 컴퓨터 창시자인 앨런 튜링은 요즘도 금기로 여겨지고 있는 동성애자였답니다. 대단한 공을 세우고서도 당시의 엄한 관습으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불운한 천재였던 그의 일생이 한 편의 비극처럼 슬프게 그러나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이제 정말 나올 만한 내용은 다 나온 거 아니냐고요? 천만에요!
이제 다시 보더니스는 우리의 몸 속으로 우리를 이끌고 들어갑니다. 우리 몸의 구성과 작동의 메커니즘이 죄다 전기의 작용으로 인한 것임을 증명하는 그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처음엔 귀가 솔깃하다가 중간에는 홀딱 빠져들고 나중에는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자 이제 자막을 올릴 때가 되었나요? 아직 당신을 위한 특별한 보너스가 추가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저자가 준비한 남다른 보너스! '뒷이야기'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한 독자들을 위한 글입니다. '앙페르 씨 볼트 씨 그리고 와트 씨'에선 전기의 단위 암페어와 볼트, 와트의 역사와 개념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지요. 이어지는 '더 깊이읽기'는 본문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더 흥미롭고 깊이 있는 내용이 다뤄집니다.
부록이라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시면 후회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더 읽을거리'에서는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참조했던 수많은 책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냥 참고문헌으로 밋밋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 책에선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도움이 되더라는 식으로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여줍니다. 그래서 더 공부하고 싶어 하는 분에게 훌륭한 가이드가 됩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한글로 옮겨진 책을 따로 표시해서 독자들이 참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책의 편집과 관련한 뒷이야기를 해볼까요? 우선 이 책을 옮긴 김명남님 얘기부터 시작하지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편집팀장을 맡고 있고 '김명남의 과학책꽂이'라는 과학책 소개 코너를 맡고 있기도 합니다. 동안에 안경을 쓴 앳된 얼굴의 '열혈과학소녀'이기도 합니다. 카이스트에서 공부하고 꾸준히 과학책을 읽어온 데다 유머까지 있는 분이라서 보더니스의 유머 넘치는 과학책을 옮기는 데는 ‘딱’이었어요. 이 책이 옮긴이의 첫 책이기도 해서 편집자로서 무척 기뻤습니다.
김명남님이 이 책을 처음 옮길 때는 미국에서도 아직 완성된 책이 나오기 전이라 가편집본을 받아서 번역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보더니스 '아저씨'와 계속 이메일로 필담을 주고받으며 모르는 부분을 확인해서 묻고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어판 서문도 얻을 수 있었어요. 사실 데이비드 보더니스는 2001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던 저명한 과학저술가인데 그의 전작인 < E=mc² >은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얻기도 했습니다.
잠깐 이 작가 데이비드 보더니스에 대해 말씀하고 지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카고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이 강의 제목이 좀 독특해요. '똑똑해지는 법, 적어도 덜 무식해지는 법'이란 제목의 강의였는데 옥스퍼드의 상임교수들은 물론이고 외부 청강생들까지 끌어 모으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답니다.
이렇게 강단에서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셸, BMW 등 쟁쟁한 대기업과 갖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중국정부의 에너지 관련 정책을 분석하고 예측해주기도 하는 등 실전에도 능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보더니스의 현실과 이론을 접목하는 탁월한 글쓰기는 아마도 이런 데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자, 이제 슬슬 접을 때가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들은 맛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하나만 지적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짜릿한 최고의 지적 자극과 재미를 만끽하기 위한 과학책으로 이 책 <일렉트릭 유니버스>를 추천합니다.
덧붙이는 글 | 조성웅 기자는 <일렉트릭 유니버스>를 낸 '생각의 나무' 출판사 편집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