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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8년차.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말하는 정두찬씨가 자신의 미나리 밭에서 웃고 있다.
귀농 8년차.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말하는 정두찬씨가 자신의 미나리 밭에서 웃고 있다. ⓒ 이우성
지난주 경북 군위의 젊은 농부 정두찬(42)씨를 만나러 가는 날 아침, 전화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망설였다. 아직 알려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사코 오지 말라고 하는데 이왕 나선 길 그이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내처 길을 달렸다.

그의 모습에선 원숙함이 배어난다. 귀농 8년 동안 농사지으며 새로운 변화 속에 자신을 던진 그의 오체투지에서 자립한 사람의 건강함이 묻어 있다. 전화 속 망설임과는 달리 다정다감하게 자신의 농장을 소개하는 모습에서 더없는 친밀감을 느낀다.

군위친환경농업연구회 사무국장으로 농사지으면서 50명 넘는 회원들 관리하느라 매 시간 자리에 가만 앉아 있을 겨를이 없는 역동적인 그에게 지역 환경농업의 비전과 모델을 본다. 곧 그의 앞에 명실상부한 ‘참농부’가 붙을 날이 다가올 것을 믿으며.

“자연 그대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연 그대로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자연 그대로를 만족하며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참한 농사를 짓는 사람들 자연을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들 ‘참농부’랍니다.”

작년 7월 문을 연 군위친환경농업연구회 쇼핑몰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글이다. 그들은 홈페이지 이름을 ‘참농부’라고 지었다. 유통은 참농부영농조합법인 이름으로 한다. 참농부가 되고 싶은 소망을 담았다. 매일 클릭수가 늘고 홈페이지를 통한 주문량도 늘고 있다.

정두찬씨는 한양대 공대를 졸업하고 포철에서 과장 진급시험 합격 후 고향인 이곳으로 들어왔다. 직장 다닐 때 유럽 출장을 갔는데 그곳 농부들은 여유롭게 그림 같은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돌아와 자신도 독립적인 삶을 살아보고자 귀농을 결심했다.

수입개방과 농촌공동화로 10년 내 농촌은 망가지겠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평소 꿈이었던 시골로, 새로운 변화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내에게 단조로운 직장일보다 10년, 15년 후 우리 모습을 한번 새롭게 그려보자고 설득해 귀향을 했다. 지금 직장 다닐 때보다 생활은 풍족하지 않지만 삶에 환한 볕이 보인다고 말한다.

“아직 판단은 이릅니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입니다. 다시 도회지로 갈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고향으로 귀농해 8년 동안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많이 벌기도 했고 작년에는 엄청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집성촌인 이곳으로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부모님과 친지, 이웃들의 따뜻한 정이 화려한 도회지 생활의 즐거움을 상쇄하고도 남기 때문이리라. 특히나 친환경농업하는 동지들이 그에게는 큰 버팀목이다.

귀농 8년차. 유기농사 경력은 3년차. 그는 전체 7000평에 비가림하우스 2000평 농사를 짓는다. 메주콩, 토마토, 오이, 애호박, 가지 농사를 짓는다. 자급용으로 벼농사도 1200평 정도 짓는다.

귀농할 때부터 기른 한우도 10마리 정도 기르는데 여기에서 나온 소똥은 전량 다시 자신의 밭으로 내서 순환하는 자급체계를 갖고 있다. 이곳 산세도 평화로운 군위군 효령면 화계리에서 자신보다 농사일이 많아진 아내 장희원씨와 두 딸 명진이, 수진이, 부모님, 장인, 장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시설하면서 빚을 지어 아직 다 못 갚았고 농촌 평균 수준의 빚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가 맡고 있는 군위친환경농업연구회 일들이 의외로 많다. 인터넷 주문 발주를 체크하고 수시로 회원 농가 현장을 방문한다. 정기모임을 매월 1번씩 주선하고 단체인증 관리규정에 따라 움직이려고 하니 인증, 토양, 출하관리, 환경관리, 품질확인, 잔류농약검사 등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꼼꼼한 관리 덕분인지 지금까지 사고는 한 번도 없었다고. 농가별 토양관리철 보관을 의무화하고 있다. 지금은 예전에 자신이 하던 물류 일은 물류본부장이 맡아 덜었으므로 관청 행정사무일과 인증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과채류의 특성상 다비성이고 흡수율이 높은 작물이라 밑거름 외에도 추비를 얼마나 잘 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서 연구회에서는 공동으로 추비용 섞어띄움비 액비를 만들어 사용한다.

군위친환경농업연구회 김재수(왼쪽) 회장과는 친형님 이상으로 가깝게 지낸다.
군위친환경농업연구회 김재수(왼쪽) 회장과는 친형님 이상으로 가깝게 지낸다. ⓒ 이우성
군위친환경농업연구회(회장 김재수)는 2002년 12월 만들어졌다. 과채류, 엽채류, 쌀 작목반, 사과작목반, 산채류 작목반이 있다. 15농가가 흙살림으로부터 단체인증을 받았는데 올해 회원수가 늘어나 전체 회원 중심으로 다시 인증 신청 준비를 하고 있다.

오이, 토마토, 고추를 비롯해 상추, 배추, 미나리와 같은 엽채류, 야채류를 연중 생산하고 있으며 공동집하, 공동작부체계로 움직이고 있다. 주로 생협과 올가, 대구에 있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인터넷 판매로 전량 출하된다. 며칠 전에는 방울토마토 같은 경우 주문량을 댈 수 없어 주문을 닫아 놓기도 했다.

물류담당은 본부장이 하고 자금 집행은 사무국이 하니 문제될 것이 없다. 투명한 관리가 제일 원칙이다. 발주량이 다 공개되고 정확하니 혼입이나 장난할 이유가 없다는 것. 시스템을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하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인터뷰 도중 연신 관련 서류철을 다 보여주면서 서류를 공개한다.

전체 연구회 운영비로 출하된 것에서 7%를 뗀다. 지금까지 회장, 물류본부장, 자신 모두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보상을 하기로 했지만 그들이 가고자 하는 삶의 길이므로 희생과 봉사정신의 끈을 놓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이 연구회가 벌이는 사업도 만만치 않다. 30억 공사가 준비되고 있다. 친환경지구조성 사업으로 친환경쌀단지와 산촌마을 건립으로 예산을 확보했고 유기농 가공식품공장으로 김치, 두부, 된장, 청국장 공장을 세워 단지화하려고 추진하고 있다. 해발 150m에 위치한 이곳 특성을 잘 활용해 엽채류와 산채류를 특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회원들을 다 잘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김재수 회장의 말이다. 홈페이지를 개통한 지 6개월이 지났는데 그동안 2억 6천만원이나 팔렸다. 지금 계속 그래프는 올라가고 있다. 다른 곳과 비교하면 꽤 성공적인 모범케이스로 평가받고 있다. 잘나가는 쇼핑몰사이트보다 매출이 3배 이상 많다.

홍보도 하지 않았고 전단지 하나 돌리지 않았다는데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왜일까. 이 홈페이지 단골 소비자가 600명쯤 되는데 한번 주문하면 성심성의껏 주문량보다 더 넣어주니 입소문을 타고 알음알음 방문객이 늘었기 때문이다. 소비자 고객을 ‘행복님’이라 부르면서 행복과 건강을 사가라고 하니 누군들 끌리지 않으리.

소비자 행사도 일년에 3번 정도 하는데 농장체험과 시골 칼국수를 나누며 체험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정씨의 생각 속에는 친환경체험관광이 매우 크게 자리잡고 있다. 농외소득을 올리는 길이 회원들을 다 잘 살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올해 군위군, 경북대와 함께 지역 클러스트 사업으로 컨설팅을 받아 친환경벨트를 만들 계획으로 있다.

“농업 5천년 역사를 보면 농민이 잘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수입쌀이 들어오면 사정은 더하겠지요. 대안은 농외소득밖에 없다고 봅니다. 친환경유기농으로 부가가치를 올리고 체험관광단지로 농외소득을 높이는 길이 이 시대를 헤쳐 나가는 최선이라고 봅니다.”

귀농 후 지금까지 소 10마리 정도를 키우는데 소똥은 자신의 밭에 소중한 자급 퇴비로 쓰고 있다.
귀농 후 지금까지 소 10마리 정도를 키우는데 소똥은 자신의 밭에 소중한 자급 퇴비로 쓰고 있다. ⓒ 이우성
과거에는 농민이 가공공장을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이젠 단체를 통해 지원받는 것이 가능해졌으므로 가공을 통한 농외소득으로 농촌에도 돈이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일관성 없는 지금의 정부 정책만으로는 오히려 농민들만 피해를 쌓을 수밖에 없을 터. 농민단체를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키워주는 정책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수입개방의 파고를 헤쳐 나가고 농촌의 역사를 다시 쓰는 그에게 무언의 힘을 보태고 싶지 않은 사람 누가 있을까.

“우리가 땅에게 준만큼의 사랑을 열매와 건강으로 2배 돌려주는 땅의 존재에 감사하며 오랫동안 이 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람과 더불어 함께 하고 싶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참농부 홈페이지에 있는 마크 그림은 꽤 친숙하다. 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정씨 딸이 그린 것이다. ‘참농부’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과 같다. 그의 꿈과 이 마을 농민들의 꿈이 이 단어에 다 담겨 있다.

덧붙이는 글 | 군위친환경농업연구회(홈페이지 http://www.happyearth.co.kr)는 이제 막 발돋움하는 신생 친환경농업 지역입니다. 이들의 희망이 오롯이 살아나 바른 먹을거리를 원하는 사람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채웠으면 합니다.

흙살림신문(www.heuk.or.kr)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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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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