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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사는 형제나 친구들을 만나면 농촌으로 돌아오라고 적극 권합니다. 농촌에는 부가가치가 높은 아이디어가 아주 많은데 왜 힘든 도시살이를 고집하는지 이해가 안되거든요."

예산군 고덕면 상몽리에서 예덕친환경영농조합법인을 꾸려가고 있는 이내석(36·예덕정미소 대표)씨는 우렁찬 목소리로 농촌 찬양론을 펼쳤다.

지난 해부터 경기도 분당의 소비자들과 직거래를 하느라 일주일에 사흘은 쌀을 싣고 서울을 오간다. 택배를 이용해도 되건만 굳이 직접 배달을 고집하는 까닭은 소비자들과 만나 믿음을 주고 싶어서고, 또 다른 이유로 일반 농산물은 물론 친환경농산물도 유통마진 때문에 농민은 싼값에 팔고, 소비자는 비싼값에 사먹는 불합리를 해소하기 위함이다.

더불어 잘 사는 즐거움

이씨가 퇴비농법으로 환경농사를 짓게 된 계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부터 계속해서 농사를 지은 이씨는 10년 전 어느날 쌀을 싣고 분당으로 향한다. 좀더 나은 쌀값을 받기위해 판로를 뚫어보려는 생각이었다. 그날 이씨는 큰 충격에 휩싸인다.

▲ 이내석씨가 대를이어 운영해오고 있는 정미소에서 친환경농사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 장선애
"이 쌀의 특징을 설명해 보라."

부녀회장의 말에 이씨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쌀이 내세울 수 있는 경쟁력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씨는 "10년 후에 자랑할 만한 쌀을 갖고 오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10년째인 지난 해 퇴비농법으로 기름진 논에서 키운 쌀을 자랑스레 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요즘 잘나가는 강원도 오대미보다 밥맛이 더 좋다"는 소비자 평을 듣고 있다.

예산군농업기술센터가 분석한 식미 점수도 79점에 이른다. 일반쌀이 65점 정도가 나온다고 하니 고품질 쌀이 수치로 입증된 셈이다.

어릴 적 흔하게 보던 미꾸라지가 사라진 논, 그 땅에서 자란 작물이 인간에게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하는 깨달음은 '미꾸라지를 다시 불러올 수 있는 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하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퇴비농법과 당밀EM농법(논에 미생물을 넣어 풀씨가 착근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을 통한 토양살리기였다.

4년째 제초제와 토양살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이씨가 더 나은 가격으로 쌀을 팔고 안정된 판로를 확보하자 이웃들도 하나 둘 이씨와 같은 방식의 농법을 선택하고 있다.

지난 해 영농조합원 5명의 논 3만평만 이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올해는 33농가가 참여해 신청규모가 7만평에 이른다. 이씨는 올해 이 많은 논의 땅살리기 작업을 모두 맡을 각오다.

혼자 잘 사는게 아니라 더불어 함께 잘 사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그의 생각이 현실화되고 있기에 농사짓기는 그에게 신명나는 일이다.

인증보다 중요한 땅살리기

그런데 땅을 살리고 그 땅에서 사람에게 안전한 농산물을 재배하는 이씨는 아직까지 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인증을 받지 못했다. 이씨는 아마 앞으로도 이 인증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의 독특한 친환경농사철학을 풀어놓는다.

"대한민국 땅에서 정부의 친환경인증기준에 맞출 수 있는 땅은 극히 적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외 대다수 농민들은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땅을 죽이는 제초제와 토양살충제를 사용해 기존 농사방식을 택하게 되지요. 많은 농민들이 자신감을 갖고 땅을 살리는 환경농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국가차원에서 토양살리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즉 지나치게 까다로운 인증방식이 친환경농법의 일반화를 막고 있다는 얘기다. 농민은 현실가능한 방법으로 땅을 되살려 더 나은 가격을 보장받고, 소비자들은 좀더 싼값으로 사먹으려면 친환경농업에 대한 고민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또 하나 중요한 키워드는 순환농법이다. 땅에서 생산된 것은 땅으로 되돌려주는 농사방식을 일컫는다.

친환경으로 지은 논에서 나는 볏짚과 겨로 여물을 쑤어서 소에게 먹이고, 그 소의 배설물을 발효시켜 퇴비로 만들면 그 퇴비는 다시 논과 밭의 땅을 걸지게 해 사람의 몸을 건강하게 하는 일종의 농사 생태계를 되살린다는 것이다.

가축사육도 친환경으로

땅힘으로 짓는 농사에 대한 자신감은 바로 '밥상에 올라오는 모든 농산물의 친환경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씨가 속해있는 영농조합법인은 시설채소, 한우, 퇴비로 분야를 나눠 친환경농법에 대한 연구와 실천을 하고 있다. 시설채소의 경우 이미 시작이 됐으며, 닭과 한우 사육방식도 전통을 되살린다는 계획이다. 축산물과 관련 이씨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비대화와 속성 사육으로 인한 폐해"다.

아직은 극히 소량이지만 토종닭이 낳은 계란(보통계란의 1/3크기)을 한판에 1만원의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있다.

한우사육방식도 지금처럼 사료와 생짚을 주는 것이 아니라 화식(여물을 쑤어 먹이는 방식)을 시키면 사람에게 이로운 양질의 고기를 생산하며, 소의 수명도 길어져 출산횟수를 늘릴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 과정에서 '큰 소'에 대한 미련은 버려야 한다.

젊은이 많은 농촌 가능

이씨는 18년째 마을의 막내다. 이씨 밑으로 후배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농사지어 잘 살 수 있는 아이디어는 많은데 몸이 하나라 속상하다. 농촌으로 돌아오라"는 그의 권유가 아직은 성과를 보지 못하지만 지금처럼 신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젊은이들이 북적대는 농촌은 가능하리라고 믿는다.

쌀수입개방이다 뭐다 해서 가뜩이나 힘이 빠진 농촌에 단비같은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한해 농사를 기다리는 논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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