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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없는 마을', 송한리
'범죄 없는 마을', 송한리 ⓒ 박도
빅토르 위고가 쓴 '장발장'의 원 제목은 <레미제라블>로 '비참한 사람들' 이라는 뜻이다. 이 작품의 제목과 같이 장발장은 비참한 삶을 살았다.

작품의 주인공인 장발장이 가난과 배고픔을 못 이겨 빵 한 조각을 훔쳤다. 그는 그 때문에 19년간이나 감옥 생활을 했다.

몇 해 전, 한 인척이 혼인잔치를 하면서 나에게 예식장 손님의 축의금 접수를 부탁하였다. 예식장은 서울 시청 앞 ㅍ 호텔 19층이었는데, 신랑이 대기업 경리담당을 맡고 있었던 탓인지 손님이 엄청 많았다. 특히 예식이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는 몰려드는 손님들로 정신이 없었다.

축의금 봉투를 받고 정리할 틈도 없어서 몇 개 받은 봉투는 탁자 위에 두고 다음 손님의 봉투를 건네받는데, 탁자에 둔 봉투를 누가 얼른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아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봉투가 바뀌어서 그랬다고 했다. 나는 그의 주머니에 들어가려는 봉투를 모두 꺼내자 모두 다섯 개로 회사에서 단체로 보낸 이름이 적힌 것도 나왔다.

내가 봉투를 확인하는 사이에 그는 얼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관으로 내려갔다. 잠깐 새였지만 하객들이 수군거리자 호텔 경비원이 달려왔고, 경비원은 무전으로 즉각 프런트에다가 연락하였다, 나는 혼인 잔치에 법석을 떠는 것은 좋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축의금을 잃어버리지 않아 무척 다행으로 여기면서 그 선에서 마무리 짓고자 했다.

곧 혼인 예식이 끝나고 계산도 마무리 짓자 호텔 종업원이 나에게 다가와서 잠깐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오늘에야 전문 치기범을 잡았습니다. 그 자가 소공동 파출소에 있으니 잠깐 가셔서 피해자 상황 설명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냥 보내지 굳이 잡았습니까? 저는 피해 본 것도 없는데요.”
“그 자는 전문 상습범이에요. 잠깐이면 됩니다. 그때 상황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때 나는 학교 수업시간을 뒤로 미루고 외출하였기에 시간이 없었다. 잠깐이면 된다는 말에 종업원을 뒤따라 소공동 파출소로 갔다. 피의자는 수갑이 채인 채 의자에 앉았는데, 40대 중반 정도의 나이로 무척 파리한 얼굴이었다. 파출소 근무자는 호텔 종업원의 말을 듣더니 나에게 본서까지 동행을 요청했다.

나는 자꾸만 사건에 빠져드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동행을 거부했더니, 자기들은 조서를 꾸밀 수 없다면서 꼭 본서까지 동행해주셔야 한다고 사정했다. 하는 수 없어서 나는 학교에다가 그곳 사정을 말하고 보강처리를 부탁한 뒤 그들과 서울역 앞 남대문서로 갔다.

“별이 몇 개냐?”

형사과로 들어가자 인상이 우악스러운 형사가 곧장 피의자의 혁대를 풀고는 대뜸 “별이 몇 개냐?”하고 소리쳤다. 피의자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처음… ”이라고 얼더듬자, “야, 금방 들통날 텐데 솔직히 말해!”하며 다그쳐도 그는 계속 묵묵부답이었다.

다시 형사가 교도소에서 출소한지 얼마 됐냐고 윽박지르자, 그는 일 주일됐다고 대답했다. 형사는 곧 전과조회를 하더니, “자식, 일곱 개구만” 하자,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마치 고양이 앞에 쥐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순간 그가 너무 가여워 보였다. 내가 남의 혼인잔치 도와주다가 한 사람 교도소로 보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척 아팠다. 그러면서 가능한 피해 조사할 때 적게 말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형사는 나의 인적상황을 묻고 신분증 확인까지 하면서 일일이 기록하고는, 그때의 정황을 꼬치꼬치 물었다. 나는 그가 가로채려던 봉투는 세 개로 봉투에는 5만원이 하나, 3만원이 둘이라고 얘기해 줬다. 사실은 다섯 개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회사 직원들이 단체로 모은 돈이라 오십만원 정도의 두툼한 봉투였다.

나는 형사에게 가능한 가벼운 처벌을 바란다고 하자, 그는 "저 친구들은 풀어주면 또 들어온다"고, 동정의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형사는 나를 보내주면서 혹 피의자가 범죄 사실을 부인하면 증인으로 다시 부를지 모르겠다면서 그때 출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답을 하고는 형사실을 벗어나다가 도로 형사실로 돌아와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내가 오늘 본의 아니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벌 받고 나온 뒤에는 다시는 범죄 유혹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끄덕였다.

학교로 돌아가면서 나 때문에 그가 다시 전과자가 된 것 같아서 내내 마음이 아팠다.

아름답고 범죄 없는 마을

그 뒤 베이징에서 만난 한 독립운동가는 이런 말씀을 했다.

나라 팔아먹은 놈도, 왜놈 앞잡이 노릇하던 놈도, 높은 벼슬하며 떵떵거리고 사는 세상에 배고파서 도둑질한 사람이 무슨 죄가 되겠느냐?

이제는 고인이 된 그 어른의 말씀이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하다. 큰 도둑들은 차떼기로, 사과상자나 굴비상자로 검은 돈이 오가면서도 떵떵거리고 사는데, 송사리들은 서 푼 도둑질로 교도소에 들락거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슬픈 현실이 아닌지 모르겠다.

송한리에서 바라본 언저리 선경(仙境)
송한리에서 바라본 언저리 선경(仙境) ⓒ 박도
내가 사는 마을에서 고개만 넘으면 ‘송한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은 12가구 40여 명이 사는 산골마을로 경치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특히 감자꽃 필 무렵의 경치는 무릉도원을 떠올리게 한다.

이 송한리마을은 ‘범죄 없는 마을’이다. 신용규 이장님에게 그 비결을 묻자, 온 동네사람이 한 집안 식구로 '화합'을 가장 중시한다면서, 아마도 마을 경치가 아름다워서 사람들의 마음도 고운가 보다며 활짝 웃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안흥 산골 마을보다 더 아름답고 깊은 송한리 산골 마을에서 남은 삶을 살면서 내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다.

지난 여름 흐드러지게 핀 송한리의 감자꽃, 고랭지 감자 맛도 일품이다
지난 여름 흐드러지게 핀 송한리의 감자꽃, 고랭지 감자 맛도 일품이다 ⓒ 박도

덧붙이는 글 | 송한리마을 이장님에게 잘 말씀드리면 여름 휴가철 마을회관에서 쉬어갈 수 있습니다.   
신용규 이장 손전화 011-374-8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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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연재해 오던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를 단행본으로 펴냈습니다. 

- 책이름 :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 펴낸 곳 : 도서출판 지식산업사
- 쪽수 : 295 쪽 (일부 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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