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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삼십년전 목내이 같은 시신이 발견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오래된 시신이 파헤쳐졌다고 생각했지만 죽은 지 하루 만에 그런 몰골이 되는 것을 보고서는 사악한 마공(魔功)에 의한 것임을 알았고 끔찍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것은 과거 구마겁의 흉수였던 절대구마(絶代九魔) 중 시마(屍魔)의 사공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무림은 그러한 마공을 사용하는 자들을 추적했다. 그 결과 무림에 모습을 보인지 얼마 안 된 신흥방파인 혈검문(血劍門)의 짓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헌데 더욱 놀라운 일은 혈검문의 본거지가 호북성(湖北省) 형문산(荊門山)에 위치한 구마천(九魔天)과 동일한 곳에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혈검문이 곧 구마겁을 일으킨 절대구마(絶代九魔)의 후인(後人)이라는 사실을 의미했다. 전 무림은 경악했고, 소림을 위시한 구파일방과 철혈보를 위시한 몇몇 방파들이 혈검문을 무림의 공적으로 몰아 그들을 공격했다.
허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혈검문의 인물들이 사용하는 무공은 과거 구마천의 무공이었고, 수많은 고수들이 도륙되었다. 특히 십여명되는 기괴한 인물들은 막대한 피해 뿐 아니라 두려움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들은 주로 검(劍)과 도(刀)를 사용했기 때문에 시검사도라 불렸다. 회색의 피부에 은은한 녹색의 광택을 내는 그 마물들은 웬만한 공격으로는 상처를 줄 수 없었고, 팔 다리가 잘라져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들이었다. 그렇다고 강시(僵屍)나 죽은 시체를 연혼(練魂)한 귀물(鬼物)도 아니었다.
그 마물들은 분명 살아있는 것이었고, 누구에 의해 조종되는 것도 아니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감정이 죽어버린 것 말고는 보통 인간과 다름없었다. 그 마물들은 가공할 무공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손에 들린 병기가 무엇이든 그것에 스치기만 해도 반드시 죽었다. 그리고 죽음과 동시에 시신은 목내이처럼 변해갔던 것이다.
아마 철혈보(鐵血堡)의 철혈대(鐵血隊)가 아니었다면 무림의 피해는 더욱 컸을 것이다. 웬만한 병기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는 그들의 갑주(甲冑)는 그 마물들에겐 천적과도 같았다. 혈검문의 혈사는 멸문으로 끝이 났다. 그들은 이 지상에서 사라졌고 혈검문이 있던 구마천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출입조차 할 수 없게 아예 폐쇄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무림에서는 흡성대법(吸星大法)과 함께 시검사도(屍劍邪刀)를 사용하는 자는 무림의 공적이 되었다.
무당의 청송자 역시 눈을 감고 도호를 읊조리면서 마음을 다듬고 있었다. 그들은 선대로부터 이 마물이 어떠한가를 들은 바가 있었다. 팔이 잘려지면서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 아닌 인간. 다리를 내주며 상대의 복부에 칼을 꽂는 마물들… 그들이 가진 병기에 스치기만 해도 썩어 들어가며 목내이처럼 변해 죽는 끔찍한 현상은 우선 그들과 싸우는 상대를 위축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피해는 더욱 늘어갔다.
“아미타불… 가대협은 이곳에 도착할 때도 이런 모습이었소?”
광지선사의 물음에 풍철영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미 숨은 끊어졌지만 상태는 지금 동생보다 조금 짙은 적갈색이었다고 할 수 있었소이다. 헌데 이틀이 지나자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되었소.”
풍철영의 대답에 광지선사는 파옥노군과 청송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윗대로부터 전해들은 바로는 아직 완전한 시검사도가 아니다. 십성에 달한 시검사도에 당하면 죽기 전부터 목내이처럼 변하기 시작하고, 팔성에 달하면 죽음과 동시에 변하기 시작한다고 들었다. 풍철한의 무공이 고절한 것은 알고 있지만 아직 죽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시검사도는 아직까지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라졌던 것으로 생각했던 이것이 나타났음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었다. 분명 구마천은 완전 폐쇄되었고 구마천의 마공이 나타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럼에도 시검사도가 나타났음은 또 다른 구마천의 사공(邪功)이나 사술(邪術)이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갈대인께 부탁드리는 수밖에 없소.”
풍철영은 갈유에게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그로서는 갈유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가 동생을 살려내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살려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갈유의 얼굴엔 당혹스런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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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능풍은 내심 섬뜩했다. 냉혈도 반당의 말이 옳았다. 그는 그 사실을 관 속에 뉘여 있는 수하의 시신을 보고 알았다. 수하는 열여덟 개의 자오정(子午釘)과 세 개의 비표. 그리고 손잡이 없는 소검 한자루가 꽂혀 있었다. 그의 생명을 끊은 것은 바로 그 소검이었다.
육능풍은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고 자책했다. 지금 자신의 앞에 죽어있는 수하는 잠입과 은신에 있어 믿을만한 능력이 있는 자였다. 반당의 말이 내심 걸리기는 했지만 도대체 섭장천 일행이 그토록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그 대상이 무언지 알고 싶었다. 또한 이 신검산장의 진실 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두 명의 수하를 투입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상태에서 한 명의 수하만 개죽음 당했다. 아니 얻은 것은 있었다. 수하의 시신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수하는 우선 암기에 당했다. 그것은 기관이 설치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당할 정도의 수하는 아니다. 결국 그것은 너무나 치밀하고 교묘하여 수하의 능력으로도 헤어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또 하나는 이미 상대는 수하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파악했다는 것이다. 그의 목에 박혀있는 손잡이 없는 소검이 그것을 말해준다. 암기에 당해 이미 움직임이 느려진 그의 미간(眉間)에 소검을 박은 것은 기관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자는 아주 적절한 힘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게 절명시켰다.
“망신만 당했군.”
육능풍은 입맛을 다셨다. 수하의 죽음은 너무나 아까웠다. 수하는 그가 믿는 몇 명 중에 하나였고, 그가 필요할 때 요긴하게 부릴 수 있는 자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는 손발이 묶인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수하를 관에 넣어 온 것은 최대한의 예의를 취해 보낸 것이다. 그것은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말라는 경고이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자들을 염탐하는 것은 좋으나 신검산장 내의 일만큼은 알고자 하지 말라는 것이며 신검산장 안에서 손을 쓰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 달라는 것이다.
육능풍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자를 철혈보의 수하가 아니라고 잡아 뗄 수도 없었고, 수하를 죽였다고 따질 수도 없었다. 능구렁이인 육능풍일지라도 이 경우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광지와 청송자 일행이 들어왔다지?”
그는 수하의 시신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오늘 오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이 곳 지하석실에 다녀 온 듯싶습니다. 그들의 거처는 내원과 가까운 백화각(白花閣)인데 그곳으로 들어간 이후 모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침중하고 굳어 있었다고 합니다.”
추관의 보고에 육능풍은 버릇처럼 고개를 흔들거렸다. 수하는 죽은 지 여섯시진 정도로 보였다. 광지 일행이 도착하기 전이다. 그렇다면 이 신검산장 내 보이지 않는 고수가 있다는 말이다. 반당이 본 신검산장과 풍장주에 대한 의견은 정확하다고 인정해야 한다.
헌데 광지 일행은 무엇을 보았을까? 더구나 괴의 갈유가 그들 일행에 섞여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예상했던 생각을 확신시켜 주었다. 풍철한이 다쳤다. 누구에게 당했는지 모르지만 그가 당했고, 그 일로 구파일방에서 왔다고 보아야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풍철한이 누군가에게 당한 것에 대해 무당의 청송자가 왔다면 이해될 수 있는 일이지만 소림이나 화산, 청성의 인물들까지 움직인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더군다나 단순한 예우였다면 그들이 대동한 이대제자 정도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무엇이 그러한 구파일방의 거물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정말 그들이 오룡번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지광계라도 그들의 손에 넣고자 하는 것인가? 물론 지광계의 가치는 크다. 그 여우같은 놈은 머리 속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단순히 오룡번에 한한다면 불편은 해도 크게 걱정될 일은 없다. 문제는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던 철혈보의 조직과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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