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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가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7월이면 담뱃값이 또 오른다지요. 제 주위에는 아직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보다는 피우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 분명히 몇 달 전 금연 선언을 요란하게 하고 몇 주 간 담배를 정말로 안 피우면서 “담배를 끊으니까 아침에 일어나니 기분이 틀리더라”느니 “살이 좀 붙었다”느니 “술 먹으면서 피우는 담배 한 개비는 스스로 5분씩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하더라”느니 하면서 금연 성공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다가 지금은 다시 담배를 피는 사람도 여럿 있습니다.

그만큼 금연이 어렵다는 반증입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오죽하면“담배 끊는 사람하고 상종도 하지 마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요. 그런데 그 진부한 말이 지금은 “담배 피는 사람하고 상종도 하지 마라”는 말로 바뀌었더군요. 세월도 변했고 시대도 변했습니다.

“담배 피는 사람하고 상종도 하지 마라”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되어 버린 저 중학교 다닐 적만 하여도 직행버스에도 고속버스에도 통일호 기차에도 좌석마다 재털이가 붙어 있었지요. 20세가 넘는 성인 남자는 무조건 담배를 피워야 하는 게 상식이었을 정도지요.

더 어렸을 때는 아침마다 심부름 값으로 10원을 받고 아버지 담배 사다 드리던 기억도 있습니다. 지금 그런 심부름 시키면 담배가게 아저씨한테 “당신이 벌금 대신 내 줄 거냐?”는 타박만 받겠지요.

그 옛날 보릿고개 시절처럼 어떤 시기마다 그 시대상을 담는 명칭들이 있어 왔습니다. 지금은 ‘웰빙시대’라고들 부릅니다. '먹고사니즘'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사라지고 같은 먹거리도 건강에 더 이로운 것들을 찾고 자신의 건강한 몸을 위해 안 좋은 것들을 절제할 줄 아는 게 미덕이 되고 상식이 되는 시대입니다.

▲ 2005년
ⓒ 김지영
그래서 아직도 담배를 못 끊고 있는 사람들은 미덕은 고사하고 심지어 상식도 없는 사람으로 치부 되기도 합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죠. 눈이 있고 귀가 있고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데 아내라고 웰빙을 모를 턱이 없고, 이제 모든 것에서 한창 때를 벗어나는 제 나이에 대한 불안감들이 조금씩 엄습할 때도 됐습니다.

그 불안함들이 공연히 담배 탓으로 돌려지기가 일쑤입니다. 제가 무엇을 부탁하려 하면 그 부탁의 비중을 보아 걸맞다 싶으면 담배 끊기를 조건으로 제시하는 겁니다. 우선 급한 마음에 당연히 저는 그러자고 흔쾌한 약속을 하지만 그 약속을 작심한 지 사흘 넘기는 것은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다른 것에 대한 참을성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담배를 끊는다는 것은 왜 더욱 어려운 것인지, 참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입니다.

얼마 전에도 아내에게 부탁할 일이 생겼습니다. 아내는 이번에도 담배를 끊을 것을 요구했고 저는 또 잔뜩 고민에 잠긴 표정을 연출을 하다가 덜컥 약속을 했지요. 저도 제 자신을 알기에 주위 사람들에게는 그런 사실을 소문 내지 않았죠. 그런데 아내가 근처에 사는 친지들에게 드디어 “우리 신랑이 담배를 끊었다”고 큰소리를 치고 다녔나 봅니다.

한 이틀은 갔습니다. 그러나 작심한 지 삼일째 되는 날 아침 출근길에 기어이 담배의 유혹을 버티질 못했죠. 그날부터 직장에서야 누가 봐도 무방한 일, 틈틈이 담배를 필 수 있었지만 집에만 오면 다음날 아침까지 거의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작전들이 벌어지곤 했지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물고 불을 당겼지요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밖에 나갈 일이 없기 때문에 애써 참으며 저녁을 보내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밖에 나갈 일을 일부러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요. 며칠 전 퇴근 후 저녁상을 물리고 커피 한잔하며 인터넷을 즐기고 있는데 아내가 선웅이 종합 학습장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뭐 그런 걸 다 시키냐고 불은 입을 내놓았겠지만 내심 화들짝 반색하며 못 이긴 척 아들 손을 잡고 집을 나왔지요. 그러지 않아도 식후 더 당기는 담배의 유혹에 거의 실신지경에까지 이르던 참이었는데 ‘울고 싶은 놈 뺨 때려준 격’이었죠. 아들 손을 잡고 현관을 나서자마자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물고 불을 당겼지요.

그런데 느닷없이 초등학교 1학년 아들놈이 저를 죄인 다그치듯 하는 소리가 “아빠! 담배 펴?”이러지 뭡니까? 아무리 나이 어린 아들이라지만 겸연쩍은 표정으로 “어…응…” 그랬지요. 이어져 나온 아들의 말이란 것이 “아빠! 오늘은 엄마한테 말 안 할게!”이 거였습니다.

‘담에 걸리면 다 불어 버릴 거야.’ 이런 속내를 가감 없이 전달해 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그 말 한마디에 전 그냥 헛헛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요. 문구점까지 뜀박질하자는 아들의 성화에 담배 한 대 정성 들여 피고 나서 그러자고 할 수도 없고 몇 모금의 허탈함을 뒤로하고 뜀박질할 수밖에요.

이거 약속 하나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는 실없는 아빠를 이해해 주는 어린 아들의 맹랑한 마음보다도 ‘내가 그놈의 담배 때문에 여러 사람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나 또한 몹쓸 짓 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에 미치지 뭡니까. 사무엘 스마일즈는 정확한 발언은 아니지만 비슷한 뉘앙스로 이야기했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그래서 담배는 끊었냐고요? 아니요, 그냥 계속 머리만 쥐어뜯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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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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