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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우상호 의원의 국회 대표발의로 상정된 '출판및인쇄진흥법중개정법률안(이하 도서정가제법)'이 지난 6일 국회에서 있었던 토론회를 기점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도서정가제를 추진하는 제 세력들이 주요 패널로 참가한 가운데 관광버스를 타고 올라온 전국의 오프라인 서점 관계자들의 열띤 호응 속에 진행되었다.

이날 토론회를 지켜보면서 또한 완전도서정가제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입법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21세기 지식사회의 토대로서 출판 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국가의 과제를 너무 안일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토론회에서 기조발제한 부길만(출판문화학회 회장, 동원대학교출판미디어학과 교수) 교수의 발제문을 중심으로 도서정가제법이 결코 출판 산업을 진흥시킬 수 없으며, 그 의도 또한 매우 불순하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먼저, 도서정가제법 개정이 다소 불투명하고 떳떳하지 못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어떤 법이든 그 법으로 인해 이해 당사자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따라서 하나의 법률이 개정 또는 제정되기 위해선 관련 이해당사자들과 치열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해당사자들은 사익이 아닌 공익적 관점에서 문제를 살펴보게 되며 그 속에서 올바른 정책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다. 정책에 대한 합의의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정책의 실효성은 바로 합의의 과정 속에서 생겨나는 힘이기 때문이다. 정책에 대한 합의의 과정은 전적으로 정치권의 몫이다.

정치는 이해당사자들의 요구를 국가적 전략과 장기적인 비전 속에서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도서정가제법 개정안 추진은 결코 그러하지 못했다.

이는 지난 4월 6일 있었던 토론회에서 극명하게 보여줬다. 도서정가제법 개정안이 인터넷서점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은 명약관화함에도, 애초부터 인터넷서점 관계자의 토론회 참석을 의도적으로 막았다는 의구심이 들기에 충분하다.

당일 토론회에 인터넷서점 관계자 1인이 토론자로 결국 참석하기는 했지만, 이는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이로 인해 토론회는 일방적 목소리만 울려 퍼지는 반쪽짜리 행사였다고 할 수 있겠다.

현재 도서정가제법 개정안이 다소 불투명하게 진행되고 있음은 부차적인 문제이기에 그만 언급하고, 본격적으로 도서정가제법이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짚어보도록 하겠다.

먼저 확인할 것은 대한민국은 현재 도서정가제를 실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OECD에 가입된 30개의 국가 중 도서정가제를 실시하는 16개의 국가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도서정가제는 지난 2003년 2월 27일부터 전격 시행되어, 이제 2년 정도 시행해왔다.

주 내용은 발행된 지 1년 이내의 도서는 인터넷서점에 한해서 10%까지 할인해서 팔 수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그런데 이번에 추진되는 개정안은 "현금 할인은 물론, 사은품, 누적점수제, 할인쿠폰 등의 유사한 형태의 할인이 없이 판매"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른바 '완전도서정가제'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도서정가제법은 본 명칭이 '출판및인쇄진흥법'이다. 도서정가제법이 출판및인쇄진흥법으로 둔갑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모르겠지만 도서정가제법은 출판 및 인쇄를 진흥하겠다는 목적 속에서 추진된 법안이다.

지금 추진되는 완전도서정가제가 그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출판 및 인쇄 산업을 진흥시킬 수 있어야 하며, 또한 기존 도서정가제가 출판 및 인쇄 산업의 진흥을 막고 있다는 전제에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출판 및 인쇄 산업의 진흥을 반대하는 이해당사자는 현재로선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왜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갈등이 야기되는 것일까? 과연 완전도서정가제는 출판 및 인쇄 산업을 진흥시키는 핵심적인 정책일까?

토론회 발제자였던 부길만 교수는 토론 자료집에서 "도서정가제가 폐지될 경우 출판계는 물론 우리 문화 전반에 끼칠 악영향이 크다"고 주장하면서 여섯 가지 근거를 들고 있다.

첫째는 '책값의 상승'을 꼽는다. 출판사가 할인가격을 염두에 두고 정가를 매기게 될 것이기에 명목상의 가격이 상승할 것이란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인터넷서점이 활성화 된 2000년을 기준으로 2003년까지의 도서 평균가격 인상률은 물가인상률을 훨씬 밑돌고 있다(물가상승률 10.8%, 통계청 / 도서인상률 6.9%, 대한출판문화협회).

둘째는 '서점 수의 감소'를 들고 있다. 실제로 요 몇 년간 우리나라의 서점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 주장은 서점 수의 감소를 도서정가제를 통해 막아보겠다는 것인데, 사실 지금 진행되는 완전도서정가제를 추진하는 핵심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참으로 답답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서점 수가 출판 및 인쇄 산업 진흥의 척도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서점이 줄어드는 직접적인 이유는 서점이 돈벌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돈벌이가 왜 안 되는 것일까? 이들은 할인해서 팔고 있는 인터넷 서점에게 고객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서점이 돈벌이가 안되는 핵심적인 이유는 정보화 사회의 도래에 기인한다.

완전도서정가제를 실시한다고 서점 수가 늘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정보화 사회의 물결을 완전도서정가제로 막을 수 있다는 발상은 지극히 관념적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돈벌이가 되지 않는 서점을 방치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는 정부나 관련 단체에서 별도로 논의를 진행해서 서점이 명실상부한 지역의 문화공간이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서점을 살리는 길은 다른 곳에 있기에 서점 수의 감소는 결코 완전도서정가제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셋째는 '서점에서의 적극적인 도서 임치가 불가능해지고 이에 따라 출판종수가 감소하고 책의 다양화가 막히게 될 것'이란다.

완전도서정가제와 서점의 도서 임치가 어떤 관계인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뒤에 언급한 출판 종수의 감소를 들고 있는데 이 또한 허구적인 발상에 다름 아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발표한 2004년 출판통계를 보면 신간 발행 종수가 철학, 종교 분야가 4~5%의 감소가 있으며, 기술과학이 13%, 학습참고서 23% 정도 전년도에 비해 감소했다.

반면 사회과학, 순수과학, 예술, 문학, 역사, 아동 등은 모두 10% 내외의 증가를 보여주고 있다. 학습참고서의 신간 발행이 크게 감소했는데, 이는 사교육을 절감하겠다는 교육부의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바로 EBS 수능 교재가 학습참고서의 신간 발행을 막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넷째는 '창작의욕, 특히 신인작가의 창작의욕 상실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출판물의 판매예측 불확실성과 정가의 잦은 변동으로 인하여 서점에서는 불확실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신인작가의 저작물들은 적극적으로 임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완전도서정가제가 실시되면 신인작가들이 더 많이 등장할까? 과연 그럴까? 신인작가가 많이 등장해야 한다는 바람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오히려 완전도서정가제가 신인작가의 등장을 더욱 막게 되는 것은 아닐까?

다섯째는 '균형 있는 지역문화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란다. 이 또한 좋은 말 갖다 붙인 논거에 불과하다. 완전도서정가제는 지역 서점들이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도록 부채질 할 뿐이다.

온실 속에 가두어서 어떻게 살아남게 하겠다는 것인가? 인터넷은 지방에서 구하지 못하던 책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으며, 서울과 지방을 결코 차별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방의 독자들이 더욱 완전도서정가제를 반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섯째, "출판사, 도매서점, 소매서점 각 분야에서 집중화가 진행될 것이다. 또한 출판시장의 개방으로 외국의 다국적 기업이 무차별적인 가격 파괴, 덤핑을 자행할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견 올바른 주장으로 보인다. 또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논리 같지 않은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완전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집중화는 분명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집중화되는 쪽은 오프라인 대형서점들이며 지역의 소규모 서점들은 별 혜택을 누리지 못한 채 대형서점의 위세만 더욱 커질 뿐이다.

실제로 국내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가 전국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넓혀가고 있지 않은가? 이번 토론회에서 교보 인터넷 담당 상무가 완전도서정가제를 주장했고, 교보문고의 공식적인 입장 또한 완전도서정가제 찬성인걸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오프라인 대형서점은 서점의 대형화 추세에 날개를 달기 위해 완전도서정가제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간략하게나마 완전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쟁들을 두루 살펴보았다. 앞서 말했듯이 완전도서정가제는 '출판 및 인쇄 진흥'을 그 목적으로 한다. 출판 및 인쇄 산업이 진흥되기 위한 선결 조건은 독자들이 많아져야 하고 책이 독자들 곁으로 더욱 가깝게 갈 때 가능하다.

책을 만드는 출판사는 좋은 책을 열심히 만드는 조건을 창출해야 하며, 저자는 책을 내서 더욱 많은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갖가지 활동도 해야 하며, 판매자는 독자들과 직접 만나는 지점에서 더욱 가까워져야 한다.

이번 법안 개정 추진을 보면서 과연 소비자인 독자의 목소리는 왜 들으려고 하지 않는가?

덧붙이는 글 | 조성길 기자는 현재 인터넷서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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