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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철문 앞에서 미리 연락을 받으셨는지, 기자를 기다리던 할아버지의 첫 인상에서는 어색함과 어려움이 흠씬 묻어 나온다. "무슨 대단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니니 편하게 생각하시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이불을 한쪽으로 밀어젖히신 할아버지는, 투박한 손으로 전기 장판을 쓱쓱 닦고 여기 앉으라고 하시면서 내내 송구해 하신다.
언뜻 세간을 살펴 보니 할아버지가 주워다 놓으신 고물들과 폐품들이 가득하다. 몸을 펴기도 힘겨워 보이는 한쪽 침상 앞으로 낡디 낡은 전기밥솥, 냉장고, TV 등이 짜 맞춘 것처럼 차곡차곡 놓여 있다. 안 그래도 좀 더웠지만, 할아버지의 호의를 저버릴 수 없어 따끈따끈한 장판 위에서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얘기, 인생사를 차분히 듣기 시작했다.
김동준 할아버지는 태어난 곳은 확실치 않고 다만 유년 시절을 부산에서 보내셨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부모님들은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할아버지를 낳았고, 출생 신고도 하지 않았다. 부모의 무지와 무관심에 김동준 할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주민등록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후에 살아가면서 받게 되는 대부분의 멸시와 천대 역시 '무적자(無籍者)'라는 설움이 가장 많았다.
어려서부터 술만 드시면 당신을 모질게 때리는 떠돌이 요리사였던 아버지를 피해 15세에 가출한 할아버지의 인생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다 열거하기도 어려운 기구한 인생역정을 듣는 중간중간, 마음이 저려왔다.
고아원에 붙잡혀 들어갔다 탈출, 구두닦이를 하면서 보낸 10년간의 떠돌이 생활, 순탄치 않았던 군 생활, 할아버지 몸에 석유를 붓고 불을 질러 버린 동거녀, 30년이 넘는 유량극단 생활 등 김동준 할아버지는 당신 나이만큼의 숱한 아픔의 이력들을 쌓아 왔다.
그동안 주민등록이 없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애환들을 얘기하실 땐 북받치는 설움에 눈물을 글썽이신다. 유량극단 시절, 백령도를 들어갈 땐 주민등록증이 없어 짐들과 함께 섞여 몰래 들어갔다 나와야 했다.
무적자라는 걸 알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얕잡아 보고 이용해 먹으려 했다. 무슨 일을 하건 월급도 제대로 못 받았고, 은퇴하기 얼마 전까지 근근이 모아 맡겨 두었던 전 재산 400여만 원을 떼이기도 했다. 그렇게 어려운 세월을 보내 늙어 가며 일이 힘에 부치기 시작한 지난해 9월, 무슨 인연인지 주저앉듯 천안에 자리를 잡게 됐다.
외상으로 산 40만원짜리 컨테이너 박스를 공터에 두고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비 안 오고 날만 좋으면 고물을 팔아 하루에 5, 6천원을 벌어 위장약을 사고, 남은 돈으로 컨테이너 값을 메워 나간다. 아직 11만원을 더 갚아야 한다. 성정복지관에서 그나마 쌀과 점심 도시락을 보내줘서 고맙기 그지없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주민등록증이 없는 할아버지는 국민기초생활수급 등 현재로선 제도적인 어떤 지원도 받을 수가 없다.
제일 아쉬운 부분이기도 할 것 같았지만, 할아버지의 생각은 조금 다르셨다. "한 달에 정부에서 얼마 도와주는 거, 그거 바라지도 않아요. 그저 내 손에 주민등록증 하나 꼭 쥐어지게 돼서 죽기 전에 잠시라도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은 것, 그게 마지막 바람이에요"라고 말씀하신다.
올해 천안시는 성정2동 현대아파트와 주공6단지 사이의 공터 800여 평에 시비 3억3000만원을 들여 주차장 부지를 조성키로 했다. 이 공터 한 구석, 1평 남짓한 컨테이너에 사는 김동준 할아버지의 빚도 다 못 갚은 컨테이너가 언제 치워질지 모를 일이다.
취재가 끝나고 차 안에서 지갑 속에 있는 주민등록증을 만지작거려 봤다. 별 것 아닌 걸로 알아온 요 조그만 주민등록증을 평생 소원으로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젖은 눈시울이 자꾸 생각났다.
| | 취재후기 | | | | 취재를 하면서 내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여러가지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사회에 대한 또 정부에 대한 원망조차 들기도 했다.
도민증이 발급되자마자 군대로 끌려 갔지만 주민등록증이 없다고 제대증조차 발급받지 못한 사연, 훈련소에 입소하자마자 걸린 급성충수염에 마취도 없이(당시 마취 장교가 휴가 중이었다 함) 생배를 째고 수술한 뒤 수술 말미에나 간신히 마약 주사를 맞고 잠들었던 일 (그나마 관장이 잘못돼 항문까지 수술, 한달을 꼬박 누워 있어야 했다고 한다) 등 미처 전하지 못한 사연도 많다.
지금 사는 컨테이너에서는 옆집의 전기를 끌어다 쓰고 있고 가스는 집안에 조그만 가스통을 가져다 놓고 버너를 사용한다. 수도는 인근 약수터 물과 놀이터의 수도를 사용하고 있다. 난방이 되지 않아 전기 장판 하나로 지난 겨울을 났다. 이제 편히 쉴때도 됐건만 천안시가 짓는다는 주차장이 지금 사는 컨테이너를 몰아낼까 걱정이다.
할아버지는 어려서 가출한 후 가족과 거의 교류가 없었다. 배 다른 형제 둘이 있다고 하나 교류가 전혀 없다. 지난 1998년에도 호적을 만들어 보려고 애를 써보았으나 취적 절차에서 인우보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번번히 실패했다.
이번에 다시 천안성정종합복지관의 사회복지사와 함께 취적절차를 밟아 보려고 하나 어떻게 될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기가 힘들다. 우선은 취적 절차를 밟아 호적을 만들고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아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로 책정되는 것이 계획. 그후에야 주거환경 개선이나, 치료, 일자리 마련 등의 자립계획을 세울 것이다. / 이진희 기자 | | | | |
덧붙이는 글 | 천안아산지역신문, 바른지역언론연대 회원사인 충남시사신문 355호에도 실렸습니다.
이진희 기자의 블로그(http://blog.naver.com/wordpainter.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