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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으나 생각보다 덥지 않았다. 깊은 숲 속이라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맑고 상쾌했다. 투명한 햇빛과 맑은 공기. 그리고 바람. 김 경장은 거칠 것 없이 쏟아져 내리는 태양 아래 오래도록 서 있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이곳에 머물 수 있다면 머릿속을 헹궈내고 건강한 생각들로 가득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처지가 아니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공안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들의 추격을 피하는 것뿐만 아니라, 안 박사가 숨겨놓은 유물을 찾는 것도 급했다. 자신이 공안들에게 체포된다면 여태까지의 모든 추적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고 생각하였지만, 다시 저만치 멀어져 가는 것 같아 답답할 뿐이었다. 서른 개가 넘는 피라미드 중 어디에 유물이 있는가만 알아낸다면 쉽게 해결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 한 개의 피라미드만 집중적으로 살피면 충분히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서른 개의 피라미드를 다 뒤지기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어떡해서든 그 한 개의 피라미드를 찾아야만 했다.

김 경장은 고개를 내저으며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여전히 복마전처럼 싸늘한 냉기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 주방으로 가서 수도꼭지를 틀자 녹물이 콸콸 쏟아졌다. 한참동안 물을 틀어놓자 맑은 물이 나왔다. 쇳내는 여전했지만 먹을 만했다.

김 경장과 채유정은 그 물을 끓여 컵라면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찬장에서 스테인리스 컵을 찾아내 인스턴트커피를 두 개 풀어서 물을 부었다.

밖으로 나온 김 경장은 담배를 피워 물고 별장 주위를 살폈다. 마을 입구 쪽으로 차 한 대가 들어가는 지 뽀얀 먼지가 풀풀 날리는 게 보였다. 어쩌면 공안일 줄 몰라 김 경장은 절로 긴장이 되었다. 별장 위쪽 언덕으로 올라 마을 쪽을 바라보았다. 방금 들어온 차에 공안이 탄 것 같지는 않았다. 목재를 실은 낡은 트럭 두 대가 마을 입구에 서 있는 게 보였다.

김 경장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언덕을 내려왔다. 별장 뒤쪽은 수령이 오래된 키 큰 전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나무의 깊은 그늘 속에서 이따금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렸다.

별장으로 오른쪽으로 끼고 돌자 잡초가 우거진 사이로 까맣게 부식하고 있는 나무 문짝이 15도 정도의 경사로 솟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문에 작고 하얀 둥근 곰팡이가 표면에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아마도 지하실 출입문인 듯했다.

문고리를 잡고 힘껏 들어 올리자 뜻밖에도 가볍게 열렸다. 서늘한 공기와 함께 석유 냄새가 물씬 풍겨 올라왔다. 내부는 캄캄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전등을 가져와 몸을 기울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다섯 평쯤 되는 네모반듯한 공간으로 백열전등이 하나 달려 있고 콘크리트로 발려진 집 안쪽 벽면에 욕실이 딸려 있는 게 보였다. 손을 더듬어 스위치를 올리자 백열등이 켜졌다.

김 경장은 불을 켜두고 밖으로 나와 한참동안 그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채유정에게 다가갔다.

"여기 건물에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 숲 안쪽에 있기 때문에 빛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을 것 같군요."

둘은 간단한 짐을 챙겨 지하로 들어갔다. 백열전등을 켜놓았지만 그 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누군가 여기 별장에 오더라도 지하에 있으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밤새 뜬눈으로 지내다시피 하여 그들의 몸엔 피곤이 가득 쌓여 있었지만 정신은 아직도 또렷했다. 오히려 날선 긴장감으로 몸이 가볍게 떨릴 정도였다.

둘은 나란히 벽에 기대어 두 다리를 쭉 펴고 앉았다. 바닥과 벽은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잔뜩 슬었고, 오랫동안 사람이 들어오지 않아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바닥에 기대자 그 먼지가 온전히 옷에 달라붙고 말았다. 김 경장은 그 지하실을 둘러보며 만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도 이곳은 안전할 것 같아요. 공안들이 여기 마을까지 찾아올 리 도 없거니와, 우리가 이 별장에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할 겁니다."

하지만 채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곳에서 지낼 순 없잖아요."

"물론입니다. 전 오늘 안으로 여길 떠날 겁니다."

"여길 떠나서 어디로 간다는 거죠?"

"다시 그 피라미드로 가야죠."

"무턱대고 갔다가는 어제처럼 당하고 말 거예요."

"물론 그래서는 안 되죠. 그 전에 수수께끼를 풀 겁니다."

"수수께끼라면……."

"박사님이 숨겨둔 유물이 있는 피라미드를 찾아야겠죠."

김 경장의 자신 있는 태도와 달리 채유정은 아직 못미더워 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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