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신학기가 되면서 학부모들의 학교급식당번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곤 한다. 사진은 일본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급식을 하고 있는 모습.
신학기가 되면서 학부모들의 학교급식당번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곤 한다. 사진은 일본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급식을 하고 있는 모습. ⓒ 장영미

이따금 학부모들의 학교급식당번에 관한 기사가 논쟁거리가 되곤 한다. 지난 4월 14일 오후에도 박상규 기자의 '세 엄마가 치르는 학교급식당번 전쟁'이란 기사가 <오마이뉴스> 화면의 첫머리를 장식했다.

그동안 몇몇 기사를 살펴보니, 서울시교육청에서 올 4월부터 학부모 급식당번제를 폐지하고 '학부모 자원봉사단'을 조직해 운영하는 등 배식당번제의 강제성 및 할당성을 금지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배식도우미 자원봉사제', '유급제 배식'을 그 대안으로 하고 있다.

관련
기사
세 엄마가 치르는 '학교급식당번' 전쟁

그러나 일선학교에서는 당장 급식도우미를 구해야하는 문제와 유급제 배식을 할 경우 재정부담이란 문제가 새로이 야기되었을 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벌써부터 일부 학교에서는 서울시교육청의 폐지지침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는 3월 28일자 <연합뉴스> 기사도 나왔다.

1996년 전국 초등학교에 급식이 시행될 당시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학부모들의 배식 도움 역시 자발적인 것으로 출발했다. 그러던 것이 전업주부를 중심으로 한 일부 학부모들에게 부담이 편중되면서 당번제를 실시하게 되었고, 이후 당번제가 강제적으로 운영되면서 여러 가지 폐해를 낳게 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또다시 자원봉사단 등 학부모의 자율적 참여를 앞세운 당번제 폐지를 얘기한다면 이는 문제의 해결이 아닌 반복에 불과한 일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저학년의 급식 배식을 꼭 어른들이 해주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어른들이 해주려고 하니 학부모나 유급 배식자가 필요하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저학년일지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배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일본 초등학교의 자율급식 풍경

그런 의문에 대한 한 가지 대안 사례로서 일본에서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는 딸아이의 학교급식 풍경을 소개하려고 한다.

우리 아이는 2004년 4월 일본의 작은 지방도시 시립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기대와 불안으로 시작한 초등학교 생활에 아이는 잘 적응해갔고 그렇게 적응해야할 일들 중에 자율급식이 있었다.

지난 1년간 '자율급식(물론 교실급식이다)'을 하면서 아이에게서 힘들다거나, 하기 싫다거나하는 등의 어떤 불평도 들은 적이 없다. 단지 처음 하는 일이라 떨리고, 떨어뜨리거나 엎으면 어떻게 하나, 얼마만큼 담아주어야 하나 하는 정도의 걱정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급식시간은 늘 즐거웠단다.

학부모로서도 한국 초등학교에 저학년 자녀를 둔 엄마들이 겪는 스트레스를 이곳에서는 거의 모르고 지냈다. 일본은 대부분 3학기제를 운영하는데, 한 학기에 한 번 정도 있는 수업참관과 자율참가로 진행되는 몇 가지 학교 행사 이외에는 학교에 갈 일이 없었다. 급식과 관련하여서는 딱 한 번 학교에 갔을 뿐이다.

저학년일지라도 아이들 스스로 배식하고 뒷처리를 하게 만드는 것은 자립심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
저학년일지라도 아이들 스스로 배식하고 뒷처리를 하게 만드는 것은 자립심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 ⓒ 장영미
4월에 입학하고 두 달 후 수업참관이 있었는데 그 주제가 '학교급식'이었던 것이다. 먼저 아이들의 급식시간 모습을 지켜보고, 6년 과정 중 단 한 번뿐인 '급식시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개구쟁이, 장난꾸러기, 어리광쟁이로만 생각되던 아이들이니 학교에서 모습이 어떨지 여간 기대가 되는 게 아니었다. 물론 매달 차림표가 배포되지만 도대체 어떻게, 어떤 것들을 먹으며, 과연 제대로나 먹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갓 입학한 1학년 꼬맹이들인데도 당번을 정해서 저희들 스스로 준비하여 먹고 치운다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10여명씩 격주로 급식 당번 맡아

급식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여기저기서 놀던 아이들이 손을 닦고 교실로 모여들었다. 갑자기 부산스럽게 책상을 급식 대형(?)으로 바꾸더니, 급식 당번인 아이들은 '급식옷'이라 불리는 하얀 위생복과 위생모자, 마스크를 쓰고 각자 맡은 일을 했다.

먼저 음식을 나르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두 명이 짝을 이뤄 음식통을 들고 교실로 오면, 선생님이 배식대 위에 차려주신다. 그 사이 다른 아이들은 각자의 급식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쓰고, 보자기와 컵을 꺼내 책상 위에 펼쳐놓는다.

위생모를 쓴 우유 당번 학생들이 친구들에게 우유를 나누어주고 있다.
위생모를 쓴 우유 당번 학생들이 친구들에게 우유를 나누어주고 있다. ⓒ 장영미
급식 당번은 두 조로 나뉘어 10여명의 아이들이 일주일마다 번갈아가며 맡는다(일본도 '저출생'으로 해마다 학생수가 줄어서 폐교하거나 통폐합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우리 아이의 학교에는 1학년에 25명 내외의 세 학급이 있는데 인근 학교 가운데에선 학급수가 많은 편에 든다. 2004년도 신입생부터 '30명 학급'으로 바뀌었고, 2003년도 입학생까지는 '40명 학급'으로 운영되고 있다).

급식 당번표를 보니 쟁반 당번(2), 그릇 당번(2), 주식 당번(2), 부식 당번(5), 우유 당번(2)으로 나뉘어있다. 주식은 밥 메뉴가 주 3회, 빵 메뉴가 주 2회이고, 국이나 스프는 빠지지않고 나온다(지난해에도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올해 한 끼 급식단가를 보니 227엔, 우리 돈으로 약 2200원 정도다).

그날 메뉴는 볶은 콩가루와 설탕을 살짝 뿌려 구운 식빵과 야채 스프, 미역과 캔에 든 참치와 스위트 콘을 볶은 것, 우유 150ml, 마른 멸치와 땅콩을 볶은 후식이었다.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급식을 받는 동안, 칫솔 나누어주기 당번인 우리 아이가 보건실 소독기에서 꺼내온 칫솔이 가득 든 바구니를 들고 교실을 돌며 일일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여러 가지 학급일과 관련된 당번일 중에 우리 아이는 보건 당번을 맡았다고 했는데 급식시간에 칫솔을 나누어주는 일이라는 걸 알고 나니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음식을 받으시고, 아이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선생님이 '더 먹을 사람이나 덜고 싶은 사람은 앞에 나와서 하라'고 하셨다. 몇몇 아이들이 앞으로 나갔다 왔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잘 먹겠다는 합창이 우렁차게 이어지고 난 후 드디어 시끌벅적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을 뒤로 하고 학부모들은 미리 마련된 다른 교실로 가서 지금까지 아이들이 했던 것과 똑같이 식사준비를 하고, 아이들이 먹는 것과 똑같은 음식을 고학년들이 먹는 양으로 시식했다.

이 학교 급식이 맛있다는 얘기도 꽤 들었고, 우리 아이에게서도 급식이 너무 맛있다는 얘기를 매일 듣다시피 해서 기대가 컸는데 사실 내겐 좀 별로였다. 다른 것은 괜찮았는데 미역과 참치, 콘을 볶은 것은 비릿한 것이 좀 역한 느낌이었다. 나중에 아이에게 물어보니 역시 너무 맛있었다고 하니 다행이지 않은가.

시식이 끝난 후엔 다함께 치우고, 이번엔 가사실습실로 갔다. 급식주임 선생님과 영양사 선생님께서 학교급식에 관한 여러 가지 설명을 하셨고, 몇 가지 질문이 이어진 후 시식회는 끝났다.

시행착오 겪더라도 아이들에게 맡겨야

급식이 시작된 후 2개월도 채 안된 사이에 제법 일사분란하게 자기가 맡은 일을 해내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참으로 장해 보였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이고, 특히 서투른 아이들 때문에 선생님께서 애를 많이 쓰셨을 것이다.

교실 한켠에 부착된 급식당번표. 아이들은 이 표에 따라 돌아가며 그날 하루 친구들의 급식을 책임진다.
교실 한켠에 부착된 급식당번표. 아이들은 이 표에 따라 돌아가며 그날 하루 친구들의 급식을 책임진다. ⓒ 장영미
그러나 이런 자율급식을 통해 아이들은 안전과 청결에 관하여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을 배웠을 것이고, 서로 협력하는 즐거움을 배웠을 것이다. 여기엔 엄마가 급식 당번하러 오지 않아서 스트레스 받는 아이도 없고, 급식 당번 때문에 열 받는 엄마도 없다.

비슷한 환경에 있는 일본의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한국의 아이들이라고 못할 것 없지 않은가? 아이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잘 짜고, 아이들에게 맞는 도구를 마련해주고, 청결과 안전에 관해 지켜야할 것들에 대해 잘 이해시키고, 연습하고, 조금 거들어주면 분명 저학년 아이들도 저희들 스스로 배식하여 즐거운 급식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학부모 배식도움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학부모가 교육에 참여하고 학교와 건전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급식 당번과 같이 아이들 스스로도 잘 해낼 수 있는 일은 아이들에게 맡겨도 되지 않겠는가. 굳이 아이들의 자율성을 침해하면서까지 강제적으로, 일률적으로 학부모들에게 할당해서 학교와 학부모 사이에 불신을 쌓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부모참여 및 지역사회와의 교육 연계 등을 감안할 때, 서울시 교육청의 안처럼 학교 일에 의욕을 가지고 있는 학부모나 지역사회 일원 등을 자원봉사자로 활용하는 방안도 배제할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주체가 되고 소수 자원봉사자들이 도움을 주는 정도라면 말이다.

급식시간도 중요한 학교교육의 한 과정이다. 먹는 것과 관련하여 배우고, 가르칠 것이 얼마나 많은가? 요즘은 '식육(食育)'이라 하여 먹는 것을 통한 교육을 '지육(知育)' 및 '덕육(德育)', '체육(體育)'에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이다.

먹는 것, 먹을거리와 관련해 스스로 건강을 지키고, 건전하고 윤택한 식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자기관리능력을 기르는 것이 식육이다. 급식시간도 아이들이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되돌려주는 게 마땅하다고 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