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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김혜영
소프라노 김혜영 ⓒ 전영준
성악가 소프라노 김혜영. 두 아이의 엄마, 서른여섯 나이의 중학교 음악교사, 그녀가 바로 그랬다.

"저는 아마도 인덕이 많은가 봐요. 남편이 참 좋은 사람이거든요."

'아, 그랬구나. 처음 볼 때부터 마냥 행복해 보였던 연유가 거기에 있었구나.'

"하나님이 저에게 이토록 좋은 사람을 주신 것을 늘 감사해요."

이렇다하게 내세울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경상도 남자, 그럼에도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하영진이라는 남자에게 그녀는 사랑을 넘어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다고.

그 자랑스러운 남편과 더불어 그녀는 여덟 살배기 아들 현준(초등 1년), 여섯 살 난 딸 지연이를 두었다. 그 어린 것들 또한 그녀를 한껏 복되게 하는 존재들이다.

'파리 나무 십자가' 듣고 성악가 꿈

"초등학교 6학년 때, 우연히 베토벤 전기를 읽게 되었는데. 베토벤이 귀가 먹어서도 작곡을 하는 대목을 읽으면서 막연히 나도 베토벤과 같이 훌륭한 음악가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꾸었어요."

그 보다 더 어렸을 때, 그 시절 한창 인기를 끌고 있던 가수 '혜은이'의 노래를 곧잘 따라 불러 어른들의 칭찬을 받았던 소녀 혜영이는 베토벤을 통해 음악가의 꿈을 품게 된 뒤로는 교회 성가대에 나가 노래를 불렀고 교회대항 성가경연대회에서 여러 차례 상을 받기도 했다. 대구에서 나서 자란 그녀가 음악을 전공하기로 결심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고입을 앞둔 중3 때 찾아왔다.

"연합고사 준비로 정신이 없던 10월 말 어느 날, 음악선생님이 '파리 나무 십자가' 공연 티켓을 가지고 오셨어요. 때가 때인지라 한가하게 음악회에나 갈 친구가 아무도 없었죠. 그런데 제가 얼른 티켓을 챙겼어요."

한사코 말리는 어머니에게 떼를 쓰다시피 해 공연을 보고 온 그날 밤, 어린 혜영은 온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공연에서 받은 흥분과 감동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던 것이다. 혜영은 그때 비로소 성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러나 음악가의 꿈을 간직한 소녀 혜영이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학교 성적이 상위권인 딸에게 거는 부모님의 기대가 너무나 컸었던 탓으로 감히 음악을 전공하겠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숫제 비밀로 하고 어머니에게 눈물로 하소연하며 조르고 졸라서야 가까스로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과에 원서를 낼 수 있었다. 나중에 합격을 하고 난 뒤에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머리 좋은 아이가 딴따라가 웬말이냐"며 노발대발 하셨지만 상황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서른 넘어 다시 공부, 노래 자체를 즐기는 것을 배워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면서 교직과정까지 이수한 대구사람 김혜영이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부임한 곳이 경남 양산의 양산여중. 그때가 1993년이니 그녀의 교단 경력도 하마 12년이 되었다.

이제는 서른이 훨씬 넘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소프라노 김혜영, 그녀가 최근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부산의 성악가 최선경 선생을 사사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이름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성악 발성의 법칙대로 노래하고 레슨의 방법 또한 뛰어난 분이셔요. 저는 최 선생님으로부터 노래 자체를 즐기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덕분에 전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노래하기를 망설였는데 이제는 컨디션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노래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 하영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현준이와 딸 지연이, 그리고 날마다 선생님을 기다리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제자들, 자신에게 노래뿐만 아니라 삶을 가르쳐 주고 있는 최선경 선생….

자신의 삶에 울타리가 되고 있는 고맙고 아름다운 이웃들이 있어 더 없이 행복한 이 젊은 성악가는 노래를 할 수 있는 오늘과 노래로 이어질 내일을 사랑한다.

"마리아칼라스처럼 대가는 못 된다 할지라도 노래 그 자체를 사랑하며 노래와 함께하는 삶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전에 노래가 힘들다고 느껴질 때는 내 딸아이한테만은 성악을 시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지연이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아직 어리지만 가능성이 엿보여요."

지난해 12월에 열린 양산교사합창단 정기연주회에서 이흥렬 곡 '꽃구름 속에'를 부르고 있는 김혜영
지난해 12월에 열린 양산교사합창단 정기연주회에서 이흥렬 곡 '꽃구름 속에'를 부르고 있는 김혜영 ⓒ 양산시민신문
노 성악가 테너 김신환 선생을 존경해 선생의 곁에 가만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그녀는 또 소프라노 김윤자 교수와 김영미 교수를 사랑한다고.

성악가는 성직자와 같은 품성을 지녀야 한다고 믿고 있으므로 마음속의 탐욕을 버리고 청중의 박수갈채에 연연하지 않는 겸손한 성악가 되기 위해 늘 스스로를 다독인다며 수줍은 미소를 짓는 소프라노 김혜영.

아들딸에게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제자들에게는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그녀와의 만남은 행복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남 양산의 지역신문인 '양산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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