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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해가 졌음에도 초를 밝히며 부하제장들과 더불어 남한산성으로 가는 진격 방향을 계획하고 있던 김준룡은 이시방이 보낸 서찰을 구겨서 집어 던지며 발을 동동 굴렸다. 서찰에는 며칠간 광교산에 머물며 기회를 엿보자는 말이 적혀 있었다.

"어쩔 수가 없지 않겠소? 경상도와 충청도의 근왕병은 이미 패해 모두 흩어졌소. 지금 남은 건 전라도 근왕병밖에 없소이다."

김준룡의 좌우에 정렬한 장수들이 웅성이며 이시방의 명을 따를 것을 주장했다. 김준룡은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구겨진 서찰을 내려다보고 있는 장판수에게 물어보았다.

"장초관은 어찌 생각하시오?"

장판수는 구겨진 서찰을 천천히 집어 들었다.

"내래 여기 사정에 대해 뭘 알겠습네까마는 분명한 것은 지금 성안에서는 원병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겁네다."

김준룡은 바로 그 말을 기다렸다며 부하제장들의 사기를 엿보기 위해 그들의 얼굴을 하나씩 둘러보았다. 그때 척후병이 허겁지겁 막사로 들어서며 보고했다.

"아뢰오! 오랑캐 오천 명이 광교산 인근에 진영을 설치하고 있사옵니다!"

그 말에 당황한 장수하나가 소리쳤다.

"이는 필시 우리가 있는 곳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진지를 옮겨야 합니다."

"무슨 소리요! 오랑캐들은 오히려 우리가 그렇게 움직여 주기를 바라고 있소. 진을 풀고 계곡을 벗어나 움직일 때 그 뒤를 기병으로 친다면 우리가 어찌 당하겠소?"

"그렇기는 하오나 적의 수가 많사온데......"

"모두들 내 말대로 하시오! 지금 진지를 꾸민다면 적은 분명 아침에 안개가 낄 때를 틈타 들이닥칠 터이니, 병사들을 편히 쉬게 한 다음 새벽에 방비를 단단히 꾸려 대비해 놓으시오. 그리고 장초관은 말을 잘 다룰 줄 아오?"

장판수는 수원에서 얻어 타고 온 말을 떠올렸다.

"그러하옵네다."

"우리에게도 백여 명의 기병이 있으니 앞뒤를 돌며 위급함을 방비한다면 적의 기병과도 능히 싸워볼만 하오."

그날 밤은 모두에게 편히 쉬라는 명이 떨어졌지만 장판수는 도무지 깊이 잠을 잘 수 없었다.

'성을 의지해 싸우는 전투가 아니다. 사방이 열려 있는 계곡이니 치고 빠질 수도 없다. 싸움에 져 죽으면 이곳에서는 혼백조차 빠져 나갈 수 없다!'

몇 번이나 목숨을 건 전투를 겪은 장판수였지만 이번만큼은 도무지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가 일찍 일어난 장판수는 자욱한 안개 속에서 배치가 끝난 병사들 사이를 말을 타며 다니며 앞을 주시했다. 해가 슬며시 산위로 고개를 쳐들 무렵 고요한 안개 속으로 어른어른 사람들의 그림자가 비치기 시작했다.

"온다!"

조선군은 장수의 신호를 기다리며 마른침을 집어삼켰다.

"쏴라!"

총탄소리가 메아리쳐 울려 퍼지며 청나라 군사의 선두가 일시에 무너졌다. 청의 병사들이 도주하자 조선의 창수와 검수들이 뛰어들어 그들을 사정없이 베어 넘겼다.

"어찌 된 것이냐! 조선군이 진영을 갖추고 있었다니!"

백양굴리는 크게 놀라며 기습에 실패하여 돌아온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투루아얼이 그런 백양굴리에게 다른 제안을 내어 놓았다.

"포진해 놓은 모양새를 보니 적이 이곳을 내어줄 의도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계곡에는 길이 많고 우리는 병력이 많으니, 병사를 나누어 한쪽은 돌아가는 길을 찾아보고 한쪽은 이를 눈치 채지 못하도록 내일 또다시 조선군의 정면을 공격해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백양굴리가 병력의 숫자만 믿을 정도로 무모한 지휘관은 아니었기에 그 말에 수긍하며 투루아얼에게 기병 400명을 주어 돌아갈 길을 찾아내는 한편, 돌진할 때는 화전(火箭)으로 신호를 보내어 협공할 수 있도록 약속을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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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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