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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 터미널. 나비들의  공용 터미널.
공용 터미널. 나비들의 공용 터미널. ⓒ 박태신
지금 전남 함평은 나비 축제가 한창입니다. 지난 해 가을 나비 축제와는 상관없는 무안의 연꽃 축제를 보러 가다가 함평에 들렀습니다. 기차로 갔는데 사실 목포까지 가서 무안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은 코스임을 돌아오는 길에서야 알았습니다. 출발할 때 이 코스도 고려했지만, 오고 가는 길을 조금 다르게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함평이라는 곳을 만날 수 있기도 했구요.

멋모르고 기차역에서 터미널까지 택시를 탔는데 꽤 장거리였습니다. 특이하게도 아주 시내와 많이 떨어진 곳에 기차역이 있었습니다. 터미널에서 무안으로 가는 차편을 알아보고 주변을 돌아다녔습니다. 아, 그런데 온통 나비 세상입니다. 전봇대에 이어붙은 간이 가로등 위에도 나비가 앉아 있고, 시내 입구의 대형 이정표 탑에도 앉아 있습니다. 터미널은 이미 나비들로 점령 당한 지 오래입니다. 무미건조했을 터미널이 이 나비들로 말미암아 생기가 돕니다.

현관 유리문의 나비 형상. 몸이 반쪽이 되어야 열리는 문. 아프지 않아도 오고 싶은 보건소의 문.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창.
현관 유리문의 나비 형상. 몸이 반쪽이 되어야 열리는 문. 아프지 않아도 오고 싶은 보건소의 문.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창. ⓒ 박태신
다른 터미널 건물과 달리 함평 터미널은 아주 깨끗합니다. 흰색의 외벽이 밝은 느낌을 주고 형상으로 자리잡은 나비들을 돋보이게 합니다. 주변에 높은 건물도 없어 늘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터미널 뒤쪽은 더욱 단아한 보건소 건물과 정원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 곳으로 가봅니다.

여행지를 가다 보면 새롭게 단장된 보건소를 보곤 합니다. 그런데 그저 그렇게 지어 놓은 것이 아니라 건축미를 살리는 등의 공을 들여 만들어 놓습니다. 이곳 함평의 보건소 건물도 단번에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아담한 정원도 앞에 있고요. 이곳에도 나비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현관의 대형 유리문에도 나비가 수놓아져 있습니다. 문을 열 때마다 날개짓합니다.

한 지역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엄청난 부가효과를 가져다 줌을 목격하곤 합니다. 그 캐릭터가 한때의 축제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사시사철 그리고 상업성과 거리가 먼 것에서 살아 있을 때 그 효과가 더욱 빛을 발하겠지요.

'ㄱ' 자 형 보건소 건물의 가운데는 여러 크기의 사각형이 모인 전면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위 옥상을 보호하는 유리벽에도 노란 나비가 노닐고 있습니다. 보호벽 역할을 하고 안의 시설을 살며시 가려주기도 하고 시선을 끌어 미소짓게도 하는 조형물입니다.

한옥 양식을 본뜬 부속건물. 지붕이, 나무판이 창에 걸쳐져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한옥 양식을 본뜬 부속건물. 지붕이, 나무판이 창에 걸쳐져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 박태신
그 옆, 건물의 오른쪽 부분은 한옥 형태가 가미된 2층 건물로 왼쪽 부분과 차별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곡선의 지붕이 유리창 앞을 일부 교차하고 있고, 2층의 창에는 기다란 나무판이 창을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교차미'(交叉美)라는 것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보건소에서는 그런 곳을 여럿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에 드리워진, 붙어 있는 건물의 그림자도 한몫을 합니다.

야외무대. 지붕의 다섯 칸 구조물이 조금씩 겹쳐 있다. 무대에서 위를 보면 나비가 연상될 터. 그러면 지붕에 매달린 조명등은 꽃에게서 위임받은 꽃가루?
야외무대. 지붕의 다섯 칸 구조물이 조금씩 겹쳐 있다. 무대에서 위를 보면 나비가 연상될 터. 그러면 지붕에 매달린 조명등은 꽃에게서 위임받은 꽃가루? ⓒ 박태신
심지어 정원 한곳에 있는 야외무대도 그렇습니다. 무대의 지붕이 오직 한 면만의 지지물에 의지해서 서 있는데 자못 비상감이 느껴집니다. 지지물이 있는 곳은 유리창으로 되어 있고, 양쪽 측면에도 가림막이 없는, 그야말로 노출할 것 다 노출한, 완벽한 야외무대입니다. 그 지붕의 다섯 칸의 구조물도 서로 조금씩 겹쳐 있어 입체감과 고양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제 수만 마리의 진짜 나비들이 훨훨 춤을 추겠지요.

신간 서적 중에 <나비에 사로잡히다>라는 책이 있어 좀 훑어 보았습니다. 지은이 샤먼 엡트 러셀은 자연과학자이면서 뛰어난 글솜씨를 보이는데, 전문 서술 중간 중간에 나비로부터 유추된 삶의 논리라 할 만한 요소를 심심치 않게 넣어두었습니다. 그 중, 미리엄 로스차일드의 인용문을 다시 인용합니다.

"나비는 정원에 또 하나의 차원을 더한다... 나비는 꿈속에서, 어린시절의 꿈속에서, 줄기에서 떨어져 나와 햇빛 속으로 탈출하는 꽃과 같다. 공기이며 천사다."

또 지은이는 함평의 나비축제에 귀감이 될 만한 내용을 적어 놓았는데, '나비산업'이라는 절에서 세계 여러 곳의 나비농장의 성공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코스타리카의 토르투그에로라는 공동체의 일명 '나비집'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실질적 수입뿐 아니라 자연친화적인 사업으로 인한 부대 효과까지 소개합니다. 함평도 그런 성공의 사례라 할 수 있겠지요.

함평 가시거든 축제장뿐 아니라 시내 곳곳에 터잡고 있는 나비의 형상들도 같이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나비처럼 나비질하여 몸에 붙은 검부러기를 털어내면 좋겠습니다. 위 책에서 그러더군요. 나비가 고통스러운 삶에 위안을 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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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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