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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만한 문학 작품, 특히 고전의 세계에서 정수들을 뽑았다며 일독을 권하는 리스트들이 자주 눈에 띈다. 새해부터 연말까지 대학과 언론사, 사회단체 등 여기저기서 그런 류의 리스트들을 발표하는데 가지각색인 명칭과 달리 공통점이 하나 있다. 작품명과 저자 정도로 표시돼 있다는 것이다.

문학에 대한 '지적 갈증'을 풀기 위해, 또한 도움을 얻기 위해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어 볼 요량으로 리스트를 찾던 사람들에게 그런 리스트는 숨이 막히게 한다. 추천하는데 최소한의 이유는 있어야 하건만 왜 읽어보라는 것인지, 어떤 까닭으로 추천하는 것인지가 대부분 생략된 리스트들은 문학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학에 힘쓰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는 경우가 태반이다.

흔히 책을 추천할 때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가 읽어본 뒤에 의미와 함께 전달해주는 것인데 리스트에는 그런 모습이 없다. 작품들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유명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지만 아쉽기는 매한가지다. 사실 누군가가 꼭 읽기를 바라고 추천하는 것이라면 더욱 열을 내어 권유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 리스트들이 주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장영희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문학을 말하는 교수로,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수필가로, 문학을 사랑하는 문학소녀 장영희가 척추암 선고를 받기 전까지 3여년의 시간 동안 일간지에 연재했던 '북칼럼'을 모은 이 작품은 문학의 세계에 갈증을 느끼던 사람들에게 생명수와 같다.

글의 본래 의도가 읽은 이들이 서점에 달려가도록 만들 수 있게 해달라고 했기 때문인가. 이 책은 읽은 이들의 의욕을 충분히 고취시키는 힘이 있다.

문학이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며, 또 생명력을 부여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저자는 책을 말하는데 있어 눈높이를 자신이 아닌 앞으로 책을 읽을 타인들에게 맞추고 있다.

책을 말하고 논하는 많은 도서들이 범하는 실수 중 하나는 작품의 '눈높이'가 글쓴이의 시선에 맞춰져 있다는 점인데 저자의 글에서는 그런 실수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겪었던 이야기들과 자신의 생활에서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들에서 책 이야기를 끄집어내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는 해설만 해도 몇 십 페이지에 이르는 난해한 작품조차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무슨 까닭일까? 수필가로서 소문난 저자의 필력 때문일까? 그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를 말해줄 수는 없다.

책 페이지 한 장 한 장은 하나의 수필과도 같다. 수필이란 경험한 것에서 우러나오는 글이다. 그러니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앞서 말했듯이 생활에서 비롯된 글들이다. 사실 그런 식으로 책을 이야기하는 방식의 도서는 많은데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그런 글들과 확연히 눈에 띄게 다른 '맛'이 있다. 실상 저자 글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솔직'하다는 것이다.

책을 말하는 책들을 보면 보통 대상 도서, 특히 그것이 고전일 때는 찬사들이 뒤따라온다. '반드시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고와 '이렇기 때문에 훌륭하다'는 사고가 어우러진 찬사라고 해야 할까? 그런 도서들에는 요즘 말로 하면 소위 '주례사 비평'이라고까지 비유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찬사가 담겨 있다.

물론 고전에 찬사가 뒤따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고전이든 현대의 작품이든 좋은 작품이라면 찬사가 있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무조건적인 찬사들에는 책읽기의 '방향'까지 정해버리는 사고가 담겨 있다. '진정한 책읽기'를 유도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작가로부터 책이 떠나 개개인의 독자의 손에 들어갔다면 그때마다 새롭게 태어나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럼 저자의 글은 어떠한가?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 솔직한 맛이 있다고 한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에서 책을 말하다보니 찬사보다는 저자의 생각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저자의 생각이 찬사일 수도 있다. 허나 저자는 그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은 이랬다'고 말하는 정도다. 저자는 문학의 위대함을 알려주되, 그 문학이 누군가의 머리에서 어떻게 이해돼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가슴으로 한번 품어보라고 권유해주는 정도다.

비록 에세이라고 하지만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누군가'가 책을 만나도록 의지를 복돋아주는 글들의 모임이다. 그런데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도대체 이게 무슨 책을 소개하려는 심보인가 싶을 때가 많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 책 제목을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짓는 걸 보며 의아스럽게 여겨지는 게 당연하다. 이것은 '비평형'도 아니고 '소개형'도 아니다. 굳이 말하면 '장영희형'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리스트들과는 비할 데 없는, 또 이런 목적으로 등장했던 책들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매력이 이 책에 있다. '문학의 숲'을 찾아가고 싶게끔 표현한 저자의 글 솜씨도 그 이유겠지만, 무엇보다도 저자가 그랬듯 삶에서 '문학의 힘'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충동을 부채질하는 것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의 매력이다.

그 매력 때문에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아까운 왕사탕을 먹듯 아주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더 많은 글을 보고 싶지만, 글마다 언급된 책을 만나고 싶은 충동을 다스려야 하니 단숨에 읽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그것은 저자가 바라는 것도 아닐 테다.

일종의 '초대장'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문학의 숲'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물론 저자는 '장영희형'으로 추천하는 초대자일 뿐, 지도자가 아니다. 숲으로 들어오라고 말할 뿐이다.

낯선 숲 속을 홀로 걷는다는 것이 처음에는 두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살면서 경험하지 않았던가. 숲 속을 홀로 걷는 것이 더 정취가 있다. 또 더 즐겁다. 그것은 '문학의 숲'에서도 마찬가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샘터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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