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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오월을 맞이하면서 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는 4월 29일에서 30일까지, 1박 2일간 학부모 학교를 열어 '부모님 감사합니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라는 주제로 '효도의 날' 행사를 했습니다.

원경고등학교의 '효도의 날' 행사는 매년 처음 학부모 학교를 개최하면서 학부모들을 학교로 모셔 교사와 학생이 준비한 프로그램으로 효도 선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효도의 날' 행사는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원경고등학교 학생들의 특성을 감안하여 학부모 학교를 개최해도 잘 모이지 못하는 학부모들이 이 날 만큼은 꼭 참가하게 하여, 아이들에게 부모의 사랑을 더욱 느끼게 하고, 학부모에게는 아이들을 좀더 깊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원경고등학교 고유의 행사입니다.

▲ 부모님 감사합니다. 감사의 편지를 낭독하는 원경고 학생
ⓒ 정일관
갑자기 더워져 마치 한 여름밤 같은 날씨 속에 치러진 이번 효도의 날 행사에는 60명의 학부모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습니다. 특히 학생회에서 주관하여 행사를 진행함으로써 그 의미를 더 깊게 하였습니다.

정연수 교장은 인사말에서 "공부 잘 해서 대학 잘 보내는 학교만 명문이 아니라, 공동체 생활을 잘 하고, 사랑을 나눌 줄 알며, 은혜를 느끼고, 부모에게 효도할 줄 아는 학생을 잘 기르는 학교가 참 명문 학교"라고 하면서 "원경고등학교는 명문 가능성이 많은 학교"임을 강조하였습니다.

▲ 부모님 몸 사랑하기-거칠어진 손 만져드릴게요.
ⓒ 정일관
인사말에 이어 필자는 본 행사의 문을 여는 시 낭송을 하였습니다.

참고로 필자는 9년 전 부산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출가하기 위해 전라남도 영광의 대안학교인 영산성지고등학교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 무렵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시는 바람에 7년 간 먼 영광 땅에서 아무런 수발과 효도를 해드리지 못하며 불효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 후 합천 원경고등학교로 부임하여 이제 자주 들여다 뵐 수 있겠다 할 무렵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필자가 그 회한을 시로 표현한 '아버지 1, 2'를 낭송하였는데 낭송 도중 목이 메고 눈물이 나와 아이들과 함께 울먹였습니다. 그것은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녀가 부모를 봉양하려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풍수지탄(風樹之嘆)이었습니다.

▲ 부모님의 발을 씻어드리고 있는 원경고 아이들
ⓒ 정일관
뒤이어 10명의 아이들이 부모님께 드리는 감사의 편지를 낭독하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그 동안 부모님께 잘못했던 자신의 지난날을 하나 하나 들추어내며 용서를 구하고, 이제는 그런 방황 없이 더 훌륭한 사람으로 나아가겠다는 다짐들을 하며 울었습니다. 감사의 편지에 아이도 울고 부모도 울고 교사들도 울고 다함께 울었습니다.

울면서 아이들 막무가내이던 마음도, 부모들의 이기적인 잣대와 기준도, 교사들의 오만과 편견도 모두 녹았습니다. 그리하여 대안학교 원경 전체의 정화가 이루어지면서 모두에 깊은 감동을 던져주었습니다. 이렇게 또 한 걸음 진보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 씻은 발을 정성껏 닦으며
ⓒ 정일관
이어진 순서는 "부모님 몸 사랑하기"였습니다. 둥글게 자리를 만들어 의자에 부모를 앉게 하고 아이들은 말을 일체하지 않은 채, 부모님을 천천히 안마해 드리고, 또 말없이 꼭 껴안기를 하여 부모 자식 사이의 어색함을 넘어서게 하였습니다.

'효도의 날' 행사의 알맹이인 부모님 발 씻어드리기를 할 때에는 분위기가 더욱 진지해졌습니다. 아이들은 미리 준비한 대야에 물을 담아 깨끗한 수건을 준비하여 부모님의 양말을 벗겨드리는 것부터 발을 물에 담가 만지고 누르고 씻고 닦고 다시 양말을 신겨드리는 것까지 묵언 속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언제 한 번 부모님 발을 정성껏 씻어드렸겠습니까? 부모와 자식간의 깊은 연대가 기운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밤은 깊어갔지만 아이들이 준비한 축하공연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1학년 여학생들의 플룻 연주, 3학년 남학생의 색소폰 연주, 그리고 피아노 연주와 오카리나 연주가 이어졌습니다. 끝으로 부모님들을 모두 무대에 모시고 노래 '어머니 은혜'를 선사한 후 큰 절을 올리는 것으로 이 날 행사는 막을 내렸습니다.

물론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따뜻한 보은의 정을 받아 가슴이 흐뭇해 밤이 다 지새도록 모임을 풀지 않았습니다.

▲ 1학년 여학생들의 플룻 연주
ⓒ 정일관
학부모들은 다음날 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모여 마음공부를 하면서 아이들과 만나면서 느끼는 치열한 마음작용을 함께 나누었고, 마음일기를 기재하고 발표하며 감정을 받음으로써 아이들을 가르치기 전에 부모부터 먼저 공부하여 교육의 참다운 주체가 되고자 하는 몸짓들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 부모님을 무대로 모셔 '어머니 은혜'를 부릅니다.
ⓒ 정일관
때때로 일 년에 한 번 있는 효도의 날 행사 정도로 어떻게 효심을 기를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 행사가 단순히 형식적이고 전시적인 행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만든 행사이고 깊은 감사와 사랑으로 이루어진 행사라면 그 '한 번'이 우리 모두의 영적인 진보와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며, '효도' 그 아름다운 말을 가슴에 새길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되고도 남음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잘 스며들어갈 것입니다. 그 믿음들을 놓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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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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