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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허선행
각기 흩어져 자신의 꿈을 그리는 차례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큰 꿈을 그 작은 화지에 다 그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무언가 열심히 그려보려 애쓰는 아이들의 모습이 한없이 의젓합니다. 돗자리 위에 아예 배를 쭉 깔고 엎드린 자세로 그림을 그리는 녀석도 나름대로 열심히 합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 위에 물감으로 바탕을 칠하는 교사들의 손놀림을 바라보니 마치 아이들의 꿈에 교사의 따뜻한 손길이 더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면서도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어린이날 놀이공원에 놀러 간다. 너는 어디 갈 거야?"
"응, 나는 바닷가."
"선생님은 바닷가에 가서 달팽이 잡아봤어요?"

바닷가에 가서 고동을 잡은 적이 있나 보다 생각 중인데 계속해서 달팽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아이의 그림 속 주인공은 달팽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보다도 더 큰 달팽이가 보입니다. 자기의 생각을 그리느라 열중인 아이들 옆에서 우리 아이 어릴 적 어린이날을 생각했습니다.

ⓒ 허선행
이름 있는 날은 어디를 안 가면 안 될 것 같은 강박관념 비슷한 것이 있어 며칠 전부터 고민을 합니다. 이번에는 어디를 갈까? 아무리 생각해도 놀이공원 밖에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여행은 출발은 좋지만 가는 곳마다 막히는 도로 사정으로 지치고 짜증이 더해지기 마련입니다. '하루 아이들을 위해 봉사 하자' 마음먹고 나서지만 막상 인파에 떠밀리고 아이들 시중에 지칠 즈음이면 슬며시 짜증이 납니다.

'이제 다시는 어린이날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보내자' 다짐하지만 그 다음해도 역시 똑같은 어린이날을 보낸 기억입니다. 그래도 그렇게나마 가족이 함께 한 어린이날을 보낸 우리 아이의 경우는 행복한 편에 들 겁니다.

유치원 아이들과 생활하는 저는 남다른 가족구성을 볼 수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사고로 가장을 잃어 엄마 혼자 아이를 키우는 집도 있고,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아빠하고만 생활하는 아이도 볼 수 있습니다. 아빠하고만 지내는 아이에게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야?"

그 아이는 서슴없이 "나는 매일 매일 엄마가 보고 싶어요"라고 합니다. 코끝이 시큰했지만 그 아이 아빠에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담임교사에게 엄마의 정을 느낄 수 있도록 보살펴 주자고 했습니다. 엄마 흉내 내기가 성공할 수 있을지 우리 몫이 걱정됩니다.

또한 "우리 아빠는 교통사고로 죽었어요"라며 남의 말 하듯이 하는 다섯 살배기 앞에서 할 말을 잊은 적도 있습니다.

ⓒ 허선행
티 없이 자라야 할 어린이에게 아빠의 빈자리 또는 엄마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기에 측은하기까지 합니다. 행여나 그들의 가슴에 상처로 남지 않게 하려고 어른들이 무수히 노력하고 있지만,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도 있으니까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아이들의 그림은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공주의 꿈, 로봇, 졸라맨 등을 비롯, 나무와 꽃, 식구들, 친구들 등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은 모두 아이들의 꿈 소재가 되고 있었습니다.

'그래 너희들의 그 많은 꿈이 꼭 이루어지길 바랄게. 그리고 이번에는 너희들을 위한 어린이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가 아닌 매일 매일 행복한 아이들의 웃음이 함께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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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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