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스페인 출생인 이냐시오 라모네는 프랑스의 국제문제 전문 월간지 <르몽드 디쁠로마띠끄>의 사장 겸 주간이며 파리 7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문화는 상품이 아니다. 특히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는 영화, TV 등 시청각을 포함한 문화시장을 개방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정당하지 않다."

미국 문화패권주의에 맞서 반세계화, 대안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세계적 석학 이냐시오 라모네 파리7대학 교수이자 <르몽도 디쁠로마띠끄> 주간은 미국의 한국 문화시장 개방 요구와 관련해 'NO'를 주문했다.

UN이 정한 '세계문화다양성의 날'(5월 21일)을 맞아 22일 한국을 방문한 라모네 교수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자신의 국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미국의 문화시장 개방 요구에 끝까지 저항할 권리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 일각의 스크린쿼터 축소론에 대해서도 "스크린쿼터를 개방한 나라는 영화시장이 다 사장됐다"며 "스크린쿼터는 생존의 문제이자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된다"고 일축했다. 그는 문화적 예외성을 내세워 헐리우드 영화의 침범을 막아낸 프랑스 영화를 예로 들면서 "영화는 문화를 지키는 싸움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디어 전문가인 그는 최근 종이신문의 위기에 대해 무료신문과 인터넷의 등장을 외부 요인으로 꼽은 데 이어 "선정적이고 단순한 기사 등으로 오보를 낳고 정보조작까지 일으켜 신뢰를 상실한 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대표적 사례로 그는 이라크 전쟁을 들었다. 라모네 교수는 이라크전쟁의 불가피성을 보도한 미국 유수언론의 기사가 거짓으로 밝혀진 점을 꼬집고 "미국언론의 미디어조작으로 전쟁이 일어났다"고 풀이했다.

다음은 23일 오전 국회 의원동산에서 이뤄진 라모네 교수와의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자 바쁜 일정임에도 오마이뉴스와 관련, 역취재를 하기도 했다. 그는 오마이뉴스의 창간 시기와 창간주체, 발행규모(페이지뷰), 영향력, 유료화 여부, 광고수입 등에 대해 큰 관심을 나타냈다.

"미국 영향력 그대로 퍼뜨릴 수 있는 첨병 역할을 한 게 영화였다"

- 미국은 각 나라에 제출하는 무역장벽보고서를 통해 해마다 방송, 영화 등 문화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정당한 요구가 아니다. WTO(세계무역기구)는 교육, 보건, 문화 등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신자유주의를 따르는 국가들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같은 흐름에 거스르는 움직임이 WTO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교육, 보건, 특히 문화는 상품으로 취급될 수 없다는 '문화적 예외성'이 언급되고 있다. 문화야말로 한 사회와 국가의 정체성, 역사적 기억 등 모든 특성을 나타내는 본질이다. 문화는 상품이 아니다."

- 미국의 시장개방 요구에 어떻게 맞서고 있는가.
"당연해 보이는 원칙이지만 문화적 예외성 자체가 결론이 나지 않았다. WTO에서도 '문화를 어떻게 볼 수 있느냐'를 놓고 논쟁 중이다. 유네스코에서도 문화다양성 협약을 놓고 국가간 논의가 계속 이뤄지고 있다. 이를 막으려는 미국의 압력도 거세지고 있다. 협약이 이뤄지더라도 미미한 효력이 되도록 압력을 계속 넣고 있다. 이에 반대해 프랑스 등 많은 국가들은 문화다양성 협약이 더욱 강제력 있고 구속력 있도록 '힘의 논쟁'을 벌이고 있다. 협약안에 더 많은 국가들이 협력해야 한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미국은 왜 문화시장 개방을 줄기차게 요구하는가.
"시청각 시장에 대한 개방 요구는 미국의 전통이자 신조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매번 시청각 시장의 개방을 강요해왔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뒤 유럽을 해방시켜줬지만, 사실 이것은 일종의 점령이었다. 이후 협상에서 미국은 영화시장 개방을 요구했지만 프랑스는 영화만은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프랑스 도움이 필요했던 미국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미국의 전통은 1930년대부터 내려온다. 미국의 영화가 팔리는 곳에 미국의 상품이 팔리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향력을 그대로 퍼뜨릴 수 있는 첨병 역할을 한 게 영화였다. 영화는 경제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미국의 수출 1위 항공, 2위 제약과 더불어 영화를 포함한 대중매체, 문화부문 수출은 3위로 효자상품이다. 미국으로서는 시청각 및 영화부문 시장개방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 미국은 TV방송 시장개방도 요구하고 있는데.
"지상파방송과 관련해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이 어떤지는 구체적으로 모른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의 지상파 방송 개방요구에 끝까지 저항할 권리가 있다. 한국에 와보니 한국 TV방송은 이미 상당히 개방돼 있더라. 뉴스를 보니까 위성채널 등을 통해 CNN, 폭스뉴스, BBC 등 영미계통 채널이 다 들어와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그들의 시각으로 뉴스를 접하게 될 수 있다. 이것만 봐도 한국 방송시장은 이미 개방돼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을 더 개방하라는 것은 내놓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국 TV방송은 이미 상당히 개방... 더 개방하라는 것은 내놓으라는 것"

- 한국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가 축소 또는 폐지되면 10여간 공든 탑이 무너진다고 우려한다. 스크린쿼터의 정당성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스크린쿼터는 생존의 문제이다. 스크린쿼터를 개방한 나라는 영화시장이 다 사장됐다. 물론 지원책 등 스크린쿼터 자체를 논의할 수는 있다. 그러나 스크린쿼터 자체는 영화산업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장치이다. 프랑스의 경우 쿼터제 말고 다른 지원책도 있다. 영화 입장권에 과세를 하는 것도 그같은 사례이다. 사람들이 프랑스 영화를 보든 헐리우드 영화를 보든 5% 과세를 한다. 그 세금이 국고로 들어와 영화지원 기금같은 것으로 쓰인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더라도 프랑스 영화를 지원할 수 있는 기금이 마련된 것이다. 이밖에 다양한 지원책이 있을 수 있다. 스크린쿼터는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 한국의 스크린쿼터 폐지반대 운동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의 스크린쿼터 폐지반대 운동은 당연히 정당하며 계속해서 지켜야 한다. 한국 영화는 이번 칸느 영화제에도 출품됐듯이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으며 인정받고 있다. 미국이 한국의 스크린쿼터 의무상영일을 146일에서 73일로 줄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영화 시장을 파산시키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영화가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의 영화시장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 과거부터 프랑스는 문화를 중시하고 문화다양성에 대해 진보적 사고를 갖고 있다. 그 배경과 경험을 소개해달라.
"프랑스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뼈아픈 교훈을 많이 얻었다. (90년대 중반) 가트(GATT) 협약도 그렇다. 그 과정에서 많은 영화인들의 저항과 투쟁이 있었고 아직도 그 전통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81년 사회당이 집권하면서 프랑스 영화부흥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 전에 이미 프랑스에서는 스크린쿼터가 폐지됐고 프랑스는 문화적 예외성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운동을 벌였다. 이후 EU(유럽연합) 소속국가의 감독과 배우의 지지를 얻었고 관련한 영화인들의 투쟁이 벌어졌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영화가 가장 발전된 나라이다. 25년 전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영국, 독일 등이 모두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 이 세 나라에 영화산업이 있는가. 영화는 있지만 영화인력을 자체로 육성해 활동하지 못한다. TV영화 정도이다. 이탈리아, 독일의 영화는 무너졌지만 프랑스 영화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는 문화를 지키는 싸움에서 매우 중요하다. 프랑스는 유럽영화와 문화를 지키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 이같은 투쟁을 WTO와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운동 등 국제적으로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부시행정부 집권 이후 미국의 문화패권주의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데.
"부시 행정부는 지배력이 강하고 공격적인 행정부로 문화패권주의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미국은 유네스코를 탈퇴했다가 최근 다시 가입했다. 단지 문화다양성 협약을 막으려고 돌아온 것이다. 미국은 통상협정 과정에서 시청각 개방과 비관세 철폐 등 많은 요구를 하고 있다. 부시정권은 이데올로기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군사적으로 매우 패권적인 행정부이다."

- 94년 르완다 학살사건이 칸 영화제에 가려진 예를 들어 정보과잉 속에 진실이 은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0년대 이같은 '커뮤니케이션의 횡포' 사례를 꼽는다면?
"단연 이라크전쟁을 들 수 있다. 최근에 쓴 <이라크 재난역사>라는 책에서 이라크 전쟁과 관련, 미국 언론의 여론조작 사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기 전 미국 언론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후세인이 빈 라덴과 함께 했으며 ▲이라크가 9.11 뉴욕테러의 공범이기 때문에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었다. 영국과 이탈리아 등도 기자회견을 열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거짓으로 밝혀졌다. 결국 미디어조작으로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이라크전쟁 전 미국인의 70% 이상이 9.11 테러와 이라크가 연관돼 있다고 믿었다. 이것만큼 커뮤니케이션의 횡포가 큰 예가 있겠는가."

- 대안 세계화와 관련, 한국의 진보진영이나 진보매체에 당부할 말이 있다면?
"진보정당에게는 문화 다양성, 문화 예외성을 지켜내는 일에 전념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WTO에서 문화적 예외성을 지키고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약과 스크린쿼터도 지켜야 한다. 그리고 국민이 매체에 원하는 것은 검증된, 진실된 정보를 어떤 세력으로부터도 지켜내 독자에게 전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신문과 기자의 성향이 우파이든 좌파이든 시민이 원하는 것은 진실에 대한 욕구이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쟁은 미디어조작으로 일어났다"

- 한국의 종이신문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일찌감치 신문이 방송과 인터넷과 경쟁하면서 속보성, 선정성 덫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프랑스 신문업계는 어떠한가.
"'위기에 처한 미디어'를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신문의 위기는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 해당된다. 외부요인으로는 무료신문의 영향을 꼽을 수 있다. 프랑스에서 현재 구독률이 가장 높은 신문 1위는 무료신문이다. 350만부가 팔린다. 무료이니 팔리는 것도 아니다. 구독률 3위 신문도 무료신문이다. 또 2년 전부터 빠른 속도로 초고속인터넷이 확산돼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고 있다.

내부 요인으로는 많은 신문이 선정적이고 단순한 기사, 이미지 많은 기사를 내보내면서 오보가 났고, 정보조작까지 발생해 종이신문의 신뢰성을 잃어버렸다. 대표적 사례가 이라크 전쟁 보도이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터 등 미국언론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결국 신뢰성 상실이 신문의 위기를 가져온 가장 큰 요인이다. 유수매체도 진실이 아닌 것을 보도한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게 됐다."

- 인터넷매체가 미디어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프랑스의 경우 인터넷신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다. 프랑스에는 오마이뉴스 같은 매체가 없다. 기존 신문과 잡지의 온라인판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언론이든 미디어이든 시민이 원하는 것은 두가지이다. 첫째가 진짜로 일어난 것을 제대로 보여줬느냐 하는 신뢰성이고, 다음이 보도한 것을 책임지고 있느냐이다. 미디어 세계가 인터넷의 등장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은 사실이다."

- 한국 영화를 본 적이 있는지. 그리고 기억에 남는 한국 영화감독이 있다면?
"한국 영화를 몇 편 봤는데 제목까지는 지금 당장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미적으로 많이 발전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연출과 연기의 섬세함, 정교함이 뛰어났다. 외국인으로 볼 때도 한국영화는 매력 있다고 본다. 아, 기억이 났다. 홍상수 감독 영화가 기억에 남는다."

이냐시오 라모네는 누구?
<르몽드 디쁠로마티크> 사장 겸 편집주간... 신자유주의 맞선 프랑스 논객

▲ '스크린쿼터지키기 영화인대책위원회' 초청으로 방한한 라모네 교수는 25일 저녁 7시 서울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미국의 문화패권주의가 초래한 문화 획일화의 위기를 진단하고 문화 다양성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할 예정이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1943년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국제문제 전문월간지 <르몽드 디쁠로마티크> 사장 겸 편집주간이며, 파리7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이다. 기호학과 문화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 유수 언론에 미디어와 재정학, 세계화 등에 대해 시사 칼럼을 주로 써왔다.

특히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야만성, 제3세계 문제, 미국 중심의 패권주의적 지배담론 등에 맞선 날카로운 시각과 중후한 비판으로 정평난 당대 프랑스 최고의 논객으로 꼽힌다. <아메리카>, <혼돈의 지정학>, <커뮤니케이션의 횡포>, <소리없는 프로파간다>, <프리바토비아를 넘어서> 등의 저서가 있다.

<르몽드 디쁠로마티크>는 프랑스 최고의 일간지 <르몽드>의 자매지로 1954년 창간됐다. 국제정치, 경제, 사회, 종교, 이념, 국제분쟁 등을 심도있게 다루며 세계경제포럼에 대응하는 세계사회포럼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1998년 결성된 아탁(ATTC, 시민지원을 위한 금융거래 과세연합)을 통해 세계화 폐해에 맞서 금융자본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운동도 주도하고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