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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경상
호기심에 그들 옆에 다가가서 고개를 쭉 빼고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천사랑 걷기대회 행사장에 페이스페인팅과 네일아트로 자원봉사를 나온 북인천정보고등학교(교장 김진아) 미용예술과 학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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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나이든 남정네가 자신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옆에서 어슬렁 어슬렁 거리는데도 그들은 일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나도 더이상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인솔 교사인 김순묵 교사와 이화영 교사에게 불쑥 다가가 말을 건넸다. 부끄러워 하며 몸을 뒤로 잔뜩 빼던 선생님은 이내 나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졌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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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원봉사에는 29명의 학생들이 참여했습니다. 미용예술과에는 피부관리, 메이크업, 헤어, 네일아트, 일러스트 등의 전공 분야가 있습니다. 자원봉사에 필요한 경비는 학교에서 실습비용으로 모두 해결해 준답니다. 아직도 사회에서는 정보고등학교라고 하면 공부 못하는 아이들, 인문계 떨어진 아이들,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가는 것이라는 편협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 참 답답합니다.

우리학교 학생들만 봐도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인문계에 가서도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졸업 후에도 화장품 회사나 방송국, 피부관리 등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리고 저희학교는 한 달에 몇 번씩 자원봉사를 나갑니다. 신청자가 많아서 선별해서 학생들을 데리고 나옵니다. 우리학교는 학생들의 목적 의식이 뚜렷해서 아이들 성적도 좋고, 목적이 있으니까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며 힘든 학과 과정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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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학생들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더욱 크게 자극했다.

"학생 이름이 뭐예요?"
"……저요?"
"네."

자신들에게 말을 걸자 학생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당당하게 입을 열어 나갔다.

송인성(3학년, 미용 전공) 학생이 입을 열었다. 자신은 미용이 좋아서 일부러 정보고등학교 미용과로 전학왔다는 것이다. 꿈이 미용과 선생님이라는 이 학생은 부모님이 권유하기도 했고 자신도 너무 하고 싶은 일이라서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앞으로 대학에 진학해서 이 분야 공부도 더하고 싶다는 송인성 학생을 보면서 참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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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학생들이 이제는 서로 자기도 말하고 싶다고 아우성을 친다. 이런 난감한 일이….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한단 말인가? 이런 고민도 잠시 그냥 옆에 있는 학생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를 원망하는 듯한 몇몇의 따가운 눈총을 두꺼운 얼굴빛으로 막아내며 이야기를 들었다.

지정은(3학년) 학생도 신이 나서 말문을 열었다.

"저는요, 중학교 때부터 미용을 좋아했습니다. 봉사를 나오면 6~7시간을 일어나지도 못하고 페이스페인팅을 할 때도 있어요. 몸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하지만 힘든 봉사를 할 때마다 마음은 뿌듯한 게 참 신기해요. 저는 피부 관리와 네일 아트를 잘하는데 앞으로 미용과 교수가 되고 싶어요.

참, 어른들에게 할말이 있어요. 어른들이 미용을 배우고 미용일을 한다고 하면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무식하고 못 배운 아이들이 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데 미용도 많이 배워야 되고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힘든 일입니다."

이런. 이것은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닌가? 나도 저들이 말하는 어른들의 범주에 들어가는데….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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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희(3학년) 학생이 끼어든다. 헤어 디자이너가 꿈이라는 이 학생은 배우다 보면 가위에 손을 다치는 일도 많은데 꿈이 있어서 참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자기를 이해해 주셔서 힘들 때 가장 큰 힘이 된다는 말로 나를 놀라게 했다. 하루 종일 서서 실습하다 보면 다리가 아프고 손도 쥐가 날 정도로 통증이 온다며 자신이야말로 보약을 먹든지 해야겠다고 능청을 떠는 모습이 참 예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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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어린 아기에게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고 있는 학생이 있어서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예요?"
"최샛별이에요."
"와! 이름이 참 예쁘네요."
"호호."
"봉사 활동하면서 언제가 가장 기뻐요?
"아기 얼굴이나 손에 그림 그릴 때 아기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제가 막내라서 그런지 그럴 때마다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뻐요."

"앞으로의 꿈은 뭐예요?"
"엄마가 미용사를 하고 계셔서 어릴 때부터 엄마의 영향을 받았나 봐요. 부모님께서 열심히 밀어주시고 있고 졸업 후에는 헤어 쪽에서 일을 하며 공부도 더 하고 싶어요."
"후회해 본 적은 없어요?"
"……. 솔직히 있어요. 제가 관광과 갔다가 미용과로 전학을 왔는데 관광에 대한 미련이 조금은 남아 있나 봐요. 특히 관광과 친구들이 칵테일 만드는 자격증을 딴 것을 보면 좀 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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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빛 아래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나도 모르게 그들의 당당함과 미래를 향해 준비하며 나가는 모습에 반하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학생들이 아닌가?

아직도 사회의 현실은 그들에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하지만 자신들이 선택하고 꿈이라고 하는 일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밝게 웃는 모습이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년제 대학도 경쟁율이 100대 1이 넘을 때도 있고 큰 미용실은 면접과 시험을 봐야 된다. 또 취업한다 하더라도 한달 월급이 50만원밖에 안되는 답답한 현실, 취업을 해도 1년 동안은 머리만 감기는 일을 하고, 그 후에 1~2년 동안도 보조로 일해야 하는 쉽지 않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에도 그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과학과 기계의 발달로 사람이 하던 일들이 점점 사람의 손을 떠나고 있지만 머리 다듬는 일은 아직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이들의 손길이 더욱 소중한지도 모른다. 전남 해남, 제주도, 강원도 평창 등지에서 올라와 배우는 학생들도 있었다. 명절이 돼도 집에 내려가지 못하고 그 어린 나이에 고향과 부모님을 보고 싶은 마음을 참아가는 그들의 인내가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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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배운 것 없어서 천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하고 배워서 일하는 전문가, 또는 헤어 디자이너로 봐 줬으면 좋겠다는 그들의 일침이 내 귀에 맴돈다.

6시간 정도 자원 봉사를 하는 동안 오이를 씹어가며 갈증을 참아내고, 잠시 교대를 하면 풍선에 바람을 넣어 이리저리 들고 다니면서 어린이들에게 풍선을 나눠주는 성실함이 과연 어른들의 모습과 비교해서 무엇이 부족하단 말인가?

이날 만난 여고생들을 통해 나는 인생의 큰 교훈과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들에게서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의 미래에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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