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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언젠가 기회가 되어 잡지사 사진 기자로 있는 친구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사진을 찍을 때면 형상으로 담을 수 없는 것을 찍어야 할 때가 가장 고민이라고 했다.

그가 예로 든 것은 가까운 도로의 소음에 시달리는 아파트 주민의 고통과 같은 것이었다. 사진에 소음을 담을 수 있다면 문제가 간단해 지겠지만 사진의 그릇엔 형상만이 담기기 때문에 그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는 이 경우 사람들을 아파트 창가에 세워놓고 귀를 막고 있는 뒷모습을 찍으면 소음을 담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을 아는 사람에게는 교과서같은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사진에 대해 전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나로선 매우 신선한 얘기였다.

하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데 있어 시인들만큼 그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 가령 무료한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 여기 아주 좋은 예가 있다.

검은, 비닐 봉지 하나, 길바닥을 굴러다닌다 계속해서 시간은, 길보다 먼저 다리를 뻗는다, 검은 비닐 봉지, 이번에는 계단이 있는 곳까지, 굴러가더니 멈춘다 잠시 따갑게, 부스럭거린다 시간은 다리를, 양옆으로 길을 벌리며 간다, 가다 간판, 밑에서 멈춘다 무방비 상태로 옷의 앞을 모두, 풀어놓은 채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며 비닐 봉지, 검은 쓰레기가 있는 곳으로 굴러 들어간다, 한참 나오질 않더니 검은, 그림자를 헤집으며, 나무 밑에 멈춰 있다, 그곳에서 시간과, 비닐 봉지가 같은 색으로 만난다, 나무에 등을, 기댄 시간의 한쪽 다리가 무릎에서, 잘려 있다 뒤를 보니 나무의, 중간쯤에 다리를 접어 올리고, 있다 비닐 봉지는 여전히, 나무 밑에 머물러 있고 몸을 앞으로 숙인 시간은 무엇인가를 뒤로, 껴안고 있다
-이원, <시간과 비닐 봉지>


이 시가 실려있는 이원의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의 해설에서 오규원은 이원이 '일상적이라고 말하기 조차 민망한' '거리에 버려져 있는 비닐 봉지'을 통하여 '거리에 버려져 있는 시간의 형상'을 보여주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간파해낸다.

이 얘기를 들은 순간, 아마도 지금쯤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계단으로, 쓰레기 더미로 굴러다니는 비닐 봉지에 얹힌 시간의 무료함이 손에 잡힐듯 쥐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바로 이렇듯 시인들은 언어를 굴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드러내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그 능력이 효과적으로 발휘될 때 우리는 형상 넘어로 건너가 그가 드러내거나 혹은 그가 형상 위에 얹어놓은 또다른 의미를 만날 수 있다. 시를 읽을 때의 즐거움과 재미 중 하나가 바로 그런 만남이다.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며 스쳐 지나가는 일상적이고 흔한 풍경에서 반짝이는 의미의 실마리를 잡아낼 때, 일상은 더 이상 무료하지 않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가 있다. 대상에 대한 우리들의 반응이 일정하게 고착되어 굳어져 있는 경우다. 이와 관련하여 나의 머리 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예를 하나 찾자면 그것은 바로 '빨갱이'이다. 그러나 그 말은 '공산당'의 다른 말이 아니다. 그 말, 즉 빨갱이는 '빨간색 잉크'이다.

한 때 잡지사 편집장으로 있던 시절, 월말에 인쇄소를 찾으면 그곳의 아저씨들은 항상 '빨갱이를 좀더 올리지', '노랭이를 좀더 낮춰야겠어'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의 빨갱이가 빨간 잉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왠지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동안 나는 인쇄소 아저씨들의 그 파격적 용어, 빨갱이에 편안하게 적응을 하지 못했다. 이 땅의 사람들이 빨갱이라는 말에 대해 갖고 있던 고착된 반응에 나 또한 단단히 묶여 있었다는 얘기다.

시인은 일상적 대상에 의미를 얹는 한편, 바로 그러한 고착된 의미를 떼내려는 정반대의 시도를 보여준다. 이번에도 이원이 좋은 예를 보여준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곧고 강한 수직의 깃대에 매어져 펄럭입니다
깃대의 자유가 태극기의 자유입니다
태극기 위로 시퍼런 하늘이 이어집니다
여전히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이념은 시들어도 태극기는 펄럭입니다
태극기를 태극기이게 하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바람입니다
바람이 태극기의 현실입니다
-이원, <태극기의 바람>


이렇듯 시인은 두 가지 정반대의 태도로 세상과 밀고 당긴다. 그는 어떤 때는 세상에 의미를 얹어주고, 또 어떤 때는 의미를 떼내고자 한다. 시인이 세상을 밀고 당길 때 그 곁에서 함께 세상을 밀고 당겨보라. 사는 재미가 남다를 것이며, 시를 읽는 것이 무료하지 않을 것이다.

ⓒ 김동원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인 http://blog.kdongwon.com/index.php?pl=84에 동시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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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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