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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인이 경계를 피하여 조용한 곳에서만 마음을 길들이려 하는 것은 마치 물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이 물을 피함과 같나니 무슨 효과를 얻으리요. 그러므로, 참다운 도를 닦고자 할진대 오직 천만 경계 가운데에 마음을 길들여야 할 것이니 그래야만 천만 경계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큰 힘을 얻으리라. 만일 경계 없는 곳에서만 마음을 단련한 사람은 경계를 만나면 그 마음이 바로 흔들리나니 이는 마치 그늘에서 자란 버섯이 태양을 만나면 바로 시드는 것과 같나니라

▲ 원경고등학교 마음공부 정기훈련을 마치고
ⓒ 정일관
비가 올 듯 바람이 후덥지근하고 날씨가 무거웠습니다. 가뭄에 먼지가 풀풀 나서 비가 한 번 시원하게 내렸으면 하는 사람들의 바람 속에 5월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학교 기숙사 5층 강당에서 내려본 황정과 평산 마을의 들판엔 보리가 익어서 누렇게 일렁이고 있어 이제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겠습니다.

보리는 익어가는데, 학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논에는 또한 농부들이 그동안 묵혀둔 논을 갈고 부지런히 물을 대고 있습니다. 논들이 하나둘 갈아엎어지고 그 뒤에 물들이 고여가고 그 논물에 하늘과 구름들이 담겨지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 학생 마음일기 발표와 문답 감정 1
ⓒ 정일관
이처럼 잡초 무성한 논밭을 갈아 농부들은 그 곳에 곡식을 심고 가꾸어 마침내 가을걷이를 하고 그 공덕으로 천하가 먹고 만물이 그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사람의 마음도 밭과 같아서 갈고 가꾸고 심고 길러야 할 것입니다.

원경고등학교는 6월의 들머리에서 하루 온종일을 잡아 심전을 계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소위 마음공부 정기훈련이 그것입니다. 마음공부는 마음의 밭, 즉 심전(心田)을 개간한다는 뜻으로 심전계발(心田啓發)이라고도 합니다.

올해도 1학기 마음공부 훈련을 통해 학생들과 교사들의 마음공부 실력을 가꿀 분으로 원불교 장산 황직평 종사(장산은 법호입니다)와 이웃 대안학교인 경주화랑고등학교에서 마음공부를 지도하고 계신 이형은 교무를 초빙하였습니다.

▲ 학생 마음일기 발표와 문답 감정 2
ⓒ 정일관
무더운 강당에 100명의 학생들이 모두 모여 법석을 마련하였습니다. 각 반에 3명씩 총 18명의 아이들이 나와 그동안 부대끼고 살면서 겪은 경계(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일체의 대상을 경계境界라 합니다)와 마음작용을 기재한 마음일기를 발표하면서, 지도인의 감정을 통해, 우리가 습관적으로 가지게 되는 분별성과 주착심을 발견하는 공부, ‘앗! 경계다’ 하면서 멈추는 공부, 바르고 온전하게 판단하여 마음을 잘 사용하는 공부를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식당에 늦게 가서 식당 아주머니에게 잔소리를 들은 경계, 용돈을 아껴서 주는 담임 선생님 경계, 아침 운동의 어려움 경계, 친구와 다툰 경계, 삶의 의욕이 없고 무기력해지는 자신,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자신에 대한 경계, 지루하고 반복된 일상에 대한 경계, 자신의 외모에 대한 경계, 게을러지고 있는 생활 경계 등, 다양한 경계를 만나 시비이해와 희로애락에 붙잡힌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 학생 마음일기 발표와 문답 감정 3
ⓒ 정일관
이러한 경계가 아이들을 키웁니다. 경계 속에서 마음은 단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는 힘들면서 한다.’
‘항상 한 번이고 시작이다.’
‘일심이 우주다.’
‘가장 무서운 감옥이 생각의 감옥이다.’
‘경계가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계를 붙들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사람은 훈련이 있어야 큰다. 지식만으로는 힘이 없다. 익혀야 한다.’

이런 감정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들을 다시 돌아보아 철들게 하는 것입니다. 교사들도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후 들어 도서실에 교사들도 따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공부했던 마음일기를 내어놓고 실력들을 점검하였습니다.

▲ 교사 마음공부 훈련
ⓒ 정일관
“○○이는 나의 경계덩어리, 이 녀석은 언제나 한결같다. 이 녀석은 언제나 변함 없다. 이 녀석은 언제나 골치 덩어리다. 이 녀석은 언제나 경계거리다. 이 녀석은 항상 뒤따라 다니면서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녀석이다. 이 녀석은 항상 나를 걱정의 구렁텅이로 빠뜨린다…”

어떤 교사의 이런 마음일기를 두고 함께 공부하였습니다.

“진리는 늘 양면성이다. 다면성이다. ‘언제나’라는 것은 진리에 대한 오해이다. 원래는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그런 모습으로 ‘있어지는’ 것이다. 드러난 모습을 가지고 전체인 양 규정하는 것은 ‘분별성’이다.”

“아이들이 나를 속이려 할 때, 100% 속아주어라. 그리고 끝까지 믿어주어라.”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은 사제훈증(師弟薰蒸)이요, 모계포란(母鷄抱卵)이다. 즉 스승과 제자가 서로 훈김을 쐬며 젖어드는 것 같고, 어미 닭이 계란을 품고 궁글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교육부와 교육정책, 우리 사회, 학부모, 학생들에게는 많은 문제가 있기에 우리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교사가 정말 문제 있는 교사다.”

▲ 교사 마음일기 발표
ⓒ 정일관
교사들은 이 밖에 금연 문제를 둘러싼 본인의 문제로부터 아이들과 만나면서 생기는 경계, 교사들 간에 업무를 하면서 겪게 되는 갈등에 이르기까지 그 경계, 그 마음을 생생하게 공부하였습니다. 내 일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일기를 통해 내 마음을 살펴보고, 세상 모든 것이 다 내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 또 깨달았습니다.

“한 생을 살면서 시비이해나 갈등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다만 깨닫지 못함을 염려하라. 장보고는 다섯 번이나 죽었다가 살아났기에 청해진을 건설할 수 있었고, 이순신 장군도 백의종군의 죽음이 있었으므로 성웅으로 살아났다.”

“천하의 근본의 수신이다. 수신하지 않는 사회는 남 탓만 하기에 원망이 가득한 사회가 된다. 수신의 근본은 마음공부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내 마음부터 공부해야 한다. 마음공부 한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 천하의 근본은 수신입니다. 마음공부합시다.
ⓒ 정일관
훈련을 다 마치고 나서도 말씀들은 살아서 그대로 마음 속에서 출렁거렸고, 당연한 그 말씀들과 또 얼마나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는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금 마음의 옷깃을 여몄습니다. 저녁 무렵부터 무거운 하늘이 마침내 단비를 내려 농사지을 대지를 흐뭇하게 적셨습니다. 마음 밭에 단비도 함께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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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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