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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취를 넣어 만든 절편.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수리취를 넣어 만든 절편.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 김선정
지난 주말, 조용하던 보리소골이 들썩거렸다. 꿩, 고라니, 뻐꾸기들에게는 좀 미안했지만 모처럼 친정 식구들이 다 모여서 즐거운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보리소골이 들썩거리다

엄마의 84번째 생신을 보리소골에서 치르기로 하고, 이 구석진 강원도 산골짜기까지 오빠, 언니들을 초대했다. 모두들 귀찮아하지 않고 어려운 걸음을 해 주어서 우리 부부는 행복했다. 엄마는 막내딸네 식구가 주말마다 와서 농사짓는 텃밭도 보시고, 사위가 열심히 가꾸는 야생화들도 구경하시며 좋아하셨다.

"내가 언제 또 보리소골에 와 보겠니? 오늘 아주 구석구석 다 구경해야겠다."

엄마는 집 뒤란까지 샅샅이 살펴보시고, 흐뭇해 하셨다. 언제 또 올 수 있겠냐는 말씀에 나는 기분이 묘했다.

노인이 된다는 것, 아마도 그건 살아온 날들 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애틋하고 안타까워진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이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지내고 싶으신 게다.

수리취 한 양푼 담아놓고 떡을 기다리다.
수리취 한 양푼 담아놓고 떡을 기다리다. ⓒ 김선정
저녁이 되자, 우리 가족들은 마당에 모여 앉아 안흥 막걸리 맛에 취하고, 건너편 산그늘, 그 고즈넉한 풍경에 취해서 8남매가 뛰어 놀던 시절, 어릴 적 이야기, 요즘 살아가는 얘기들,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친정식구 손에 쥐어준 떡봉지

일요일 아침, 서울로, 천안으로, 원주로 다들 집으로 향하는 친정 식구들의 손에는 떡 봉지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엄마 생신에 꼭 맛보시게 하려고, 전날 밤 12시에 취를 삶아 내어 새벽에 방앗간에서 뽑아 낸 취떡이 든 봉지였다.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뺀 수리취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뺀 수리취 ⓒ 김선정
예전에는 단오 무렵에 꼭 취떡을 해 먹었었다. 흔히 떡취라고 불리는 이 수리취는 나물로 먹는 취가 아니고, 오직 떡을 해 먹었는데, 잎사귀 앞면은 초록색이고, 뒷면은 하얗다.

취떡은 색도 곱고, 떡이 잘 굳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 잘 쉬지 않아서 좋다. 그리고 쑥과는 또 다른 풍미가 있어 예전 어머니들은 쑥떡보다 취떡을 더 높이 쳐 주었다. 요즘은 떡취가 잘 나지 않는데다가 찾는 이가 없어서 더 귀하다.

손님들이 다 가버리고 우리도 짐을 챙기는데, 냉동실을 열어본 남편이 떡취 삶은 것을 왜 남겼냐고 묻는다.

"큰 누님 생각이 나서. 이틀 있으면 생신이신데, 취떡 좀 해드리고 싶어서."

내 대답에 남편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사과농사에, 밭일에 언제 오실 줄 알고…."

'그래도 언젠가 틈나면 오시겠지.'

나는 속으로 그런 말을 주워 삼킨다.

씻어 담아놓은 수리취가 산더미(?) 같다. 그래도 삶아 놓으면 양이 푹 줄어든다.
씻어 담아놓은 수리취가 산더미(?) 같다. 그래도 삶아 놓으면 양이 푹 줄어든다. ⓒ 김선정
남편에게 큰 누님은 어머님 같은 존재다.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이 나기도 하지만 시어머님이 들에 일하러 가시면 막내인 남편을 업고 빨래도 하고 밥도 하면서 집안일을 도왔단다.

또 시집을 한 동네로 가셔서 남편과 네 살 차이 조카를 낳았으니 삼촌 조카가 마치 형제처럼 같이 자랐다고 한다.

취떡 좋아하는 큰누님

그런 큰 누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취떡이다. 내가 시집온 이듬해였던가, 큰 누님 생일이 다가오자 어머님은 산에 가셔서 취를 뜯어다가 취떡을 해 오셨다. 큰 딸이 좋아하는 취떡을 만들어 주려고 산에 들어가서 여기 저기 헤매면서 취를 뜯으셨을 어머님. 떡을 맛있게 먹는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어머님. 이제는 다시 뵐 수 없는 모습이지만 딸을 생각하시는 어머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내일 큰누님께 전화 좀 해요. 나보다 당신이 하면 더 좋아하시잖아."

"쑥스럽게 무슨 전화."

남편은 누님을 엄마처럼 생각하면서도 애정 표현은 여전히 서툴다.

"당신이 전화해. 너무 무리하지 마시라고, 일 좀 줄이시라고 해. 그리고 언제 올라오시면 취떡 해 드린다고 그래."

남편도 누님 생일날 어머님이 해 주시던 취떡이 떠올랐나보다.

삶아 놓은 수리취. 예전에는 이 취를 넣어 직접 집에서 찧어 떡을 만들었다. 지금은 그저 이 상태에서 물기를 꼭 짠 후 방앗간에 가져가면 된다.
삶아 놓은 수리취. 예전에는 이 취를 넣어 직접 집에서 찧어 떡을 만들었다. 지금은 그저 이 상태에서 물기를 꼭 짠 후 방앗간에 가져가면 된다. ⓒ 김선정
며칠 있으면 단오다. 단오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쇠는 명절이니, 동아시아의 공통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천중절(天中節), 수릿날, 중오절(重午節)이라고도 한다. 단오의 단(端)은 첫 번째를 의미하고, 오(午)는 다섯 번째를 뜻하는 말이니, 단오는 초닷새 즉 초 5일이다.

원래 홀수는 양의 기를 상징하는데, 음력 5월 5일은 양의 기가 겹쳐 있는 날이라서 특히 기념하고 길일로 삼아왔다.

쑥떡 모양 수레바퀴 닮아 수릿날

또 단오에는 쑥떡을 해 먹는데, 이 쑥떡의 모양이 수레바퀴를 닮아서 수릿날이라는 명칭이 붙기도 했다고 한다. 수리는 고(高), 상(上), 신(神)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라서 최고의 날이라는 의미로 수릿날이라는 이름을 썼다는 설도 있다.

싱싱하게 자란 창포. 창포 삶은 물로 머리를 감는 것이 단오 풍습 중의 하나였다.
싱싱하게 자란 창포. 창포 삶은 물로 머리를 감는 것이 단오 풍습 중의 하나였다. ⓒ 김선정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의 세시 풍속이나 명절은 농경 사회의 전통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단오 무렵이면 모심기와 같은 바쁜 일이 다 끝나고 한 숨 돌릴 철이다. 힘든 농사의 중간에 하루 마을 잔치로 한 숨 고르는 명절을 마련해 놓은 조상의 지혜가 단오에 오롯이 배어 있는 것이다.

단오에는 창포 뿌리를 잘라 비녀 삼아 꽂고 다니기도 했고,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는 풍습도 있었다지만, 이제는 찾아 볼 길이 없다. 그저 삶길 염려 없는 창포만 화단에 무성하게 자라 옛 기억을 더듬을 뿐이다.

수리취로 떡을 만들어 나누어 먹고, 그네뛰기와 씨름으로 한바탕 신명나는 마을 잔치를 벌였던 농촌 마을도 이제는 노인네들만이 남아 단오를 그저 추억 속의 한 장면으로 쓸쓸히 떠올린다.

봄에 핀 앵두꽃. 바알간 열매를 기다리는 꽃의 마음이 느껴진다.
봄에 핀 앵두꽃. 바알간 열매를 기다리는 꽃의 마음이 느껴진다. ⓒ 김선정

지지난해에 딴 앵두. 단오가 지나도 앵두가 익으면 앵두 화채를 만들어 먹을 생각에 벌써 입 안에 침이 고인다.
지지난해에 딴 앵두. 단오가 지나도 앵두가 익으면 앵두 화채를 만들어 먹을 생각에 벌써 입 안에 침이 고인다. ⓒ 김선정
세월은 무상하게 흐르고, 수리취떡도 단오에 흔히 해 먹었다는 앵두 화채도 보기 힘들어졌다. 보리소골은 아랫녘과 기온 차이가 커 아직 앵두는 팥알만하게 달려 있을 뿐 익으려면 한참 멀었다. 그래도 앵두가 익으면, 단오 후에라도 앵두 화채를 해 먹어 봐야지 하며 나는 새삼 단오의 옛 풍습을 그리워한다.

취떡을 만들어 먹고, 온 마을이 흥성거렸을 옛날의 단오를 눈앞에 떠올리는 것은 내가 스러져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사는 중년의 나이이기 때문은 아닐까?

수리취떡 만드는 법

1. 수리취를 깨끗이 씻어서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없앤다.

2.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예전에는 소다를 넣었다) 잘 무르도록 삶아 낸다.

3. 삶아낸 취를 찬물에 여러 번 씻은 후 물기를 꼭 짜서 뭉쳐 놓는다.

4. 불려 놓은 멥쌀과 취, 소금 약간을 방앗간에 가져다 주면 취떡을 만들어 준다.
/ 김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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