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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당시 미군의 움직임과 분위기 등을 증언한 바빌드(왼쪽)씨와 보이드(오른쪽)씨. 이들의 증언을 뒤받침할만한 근거 자료는 아직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80년 5월 당시 미군의 움직임과 분위기 등을 증언한 바빌드(왼쪽)씨와 보이드(오른쪽)씨. 이들의 증언을 뒤받침할만한 근거 자료는 아직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 순회강연단 제공

80년 5·18 민중항쟁 당시 한국 근해에서 한국군과 미군이 합동군사 훈련을 벌이고 5·18 관련 출동대기 명령이 있었다는 새로운 증언이 나왔다.

이같은 증언 내용은 13일 '5·18 민중항쟁 25주년 기념 북미주 순회강연 보고회'에서 이신 광주전남 통일연대 정책위원장이 밝혔다. 김효석 '오월의 빛' 회장과 이신 광주전남 통일연대 정책위원장은 지난 5월 9일부터 3일까지 미국과 캐나다 20여개 도시에서 강연회를 열었다.

이들은 지난달 17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강연에 참석한 에디 보이드(Eddie Boyd·43)씨로부터 80년 당시 미 항공모함의 움직임, 군내 분위기에 대해서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순회 강연단에 따르면, 보이드씨는 지난 80년부터 82년까지 주한미군 해군으로 근무했다. 강연단은 "보이드씨가 '당시 내가 타고 있던 미드웨이호는 일본 야쿠스카에 기지를 두고 있었는데, 80년 5월 20일 경 한국 해안으로 들어갔다'면서 '한국 근해에서 한국군과 합동군사훈련을 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보이드씨는 '(부산 앞 바다에 도착해) 남한에서 어떤 비상사태(5·18)가 있고 출동을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고 기다렸다'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이신 광주전남통일연대 정책위원장은 "이같은 증언은 미국이 항공모함을 부산과 진해에 전진배치한 이유와 배치된다"면서 "에이드씨의 증언은 미군이 광주항쟁 진압에 직접 투입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명시적으로 광주를 진압하기 위한 훈련이나 이를 위한 대기상태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주한미군이 폭동진압 훈련을 했다는 바빌드의 증언을 볼 때 그런 의도를 가진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80년 5월 필리핀에 있던 항공모함 코럴시호와 일본 오키나와에 있던 미드웨이호를 각각 진해와 부산에 전진배치 한 것은 '북측의 남침'을 염려한 조지라고 밝혀왔다. 한국군 20사단을 후방으로 배치하면서 발생한 군사적 공백상태를 메우기 위한 추가배치였다는 것이다.

23일 동안 미국과 캐나다 등 20여개 도시에서 5.18관련 순회강연회를 마치고 돌아온 김효석 오월의빛 회장이 순회강연 경과 등을 보고하고있다.
23일 동안 미국과 캐나다 등 20여개 도시에서 5.18관련 순회강연회를 마치고 돌아온 김효석 오월의빛 회장이 순회강연 경과 등을 보고하고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이에 앞서 지난 2002년 5월 전남도청에서 열린 '5·18시민법정'와 2003년 미군범죄 증언대회에서, 80년 당시 경기도 포천군 험프리 공군기지에서 근무했던 앨렌 바필드(Ellen Barfield·51)씨도 이와 비슷한 증언을 한 바 있다.

바필드씨는 "광주항쟁이 시작되자 내가 근무한 부대는 일상업무를 중단한 채 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갔으며 폭동진압훈련을 받았다"면서 "그 대상은 일반 시민이었으며 광주상황이 악화되면 추가로 미군이 투입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돌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이신 정책위원장은 "보이드씨로부터 보다 더 구체적인 증언을 확보하고 당시 미 해군 소속 군인들의 증언도 더 확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광주전남통일연대 등은 '미군이 5.18당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뒤받침할 만한 증언 등을 확보해 80년 당시 카터 미 대통령 등을 상대로 2006년 미 연방법원에 제소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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