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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4일 오후. '태권'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우렁차게 인사를 하며 태권도학원 차에서 내리는 딸아이의 손에는 커다란 종이가방이 들려 있었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향해 아이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넘어질 듯이 달려 왔다.

"엄마! 엄마 지갑도 샀고 엄마가 좋아하는 상추도 샀고 아빠가 좋아하는 오이도 샀고 또 보리쌀도 샀어. 우리아빠 보리밥 좋아 하잖아! 그리고 내 유리 슬리퍼도 하나 샀어."

아이는 숨쉬는 것도 잊은 채 '따다다다' 따발총을 쏘아대듯이 내게 자랑을 늘어놓더니 그것으론 뭔가 부족하다싶었는지 종이가방에서 이것저것 마구 끄집어내어 놓았다. 말없이 아이의 행동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아무래도 그 들뜬 마음에 동조를 해주어야 할 것 같아

"와! 이게 다 뭐야? 이거 정말 우리 복희가 장 봐 온 거야?"
"응. 엄마. 여기 엄마 지갑도 샀어. 한번 봐봐. 근사하지?"


유치원 가방을 어깨에서 내려놓는 것도 잊어버린 채 아이는 주체 못할 흥분으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14일 아침. 아이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과 500원짜리 동전 세 개를 지갑에 넣어 가지고 유치원으로 갔다. 유치원에서 알뜰시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딸아이의 유치원에선 1년에 한번 유치원잔디마당에서 알뜰시장을 연다. 그 취지는 아이들이 스스로 필요한 물건을 고르고 사면서 돈을 주고받는 법을 익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알뜰시장을 차지하는 물건들은 아이들이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 작아서 못 입는 옷, 다 읽은 책, 액세서리 등. 그러니까 모두가 재활용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일주일전 아이가 가지고온 주간 계획서에는 각 가정마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재활용품들을 아이 편으로 보내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보낼 수가 없었다.

얼마 전 아이의 방을 정리하면서 아이가 사용하지 않는 여러 가지 것들을 면 복지관으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하여 죄송한 마음을 선생님께 전하기도 했었다.

아침에 나는 챙겨 오라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과 500원짜리 동전 세 개를 지갑에 넣어주면서 아이에게 물었다.

"복희는 알뜰시장에서 뭐 살 건데?"
"글쎄. 가보고."
"그래 복희가 알아서 한번 사와 봐. 얼마나 시장을 잘 봐 오는지 엄마가 한번 볼게."


아이는 제 것으로는 나비가 달린 목걸이와 목에 걸고 다니는 작은 가방 하나, 여름에 신는 투명한 슬리퍼를 사왔고

▲ 200원주고 샀다는 투명 슬리퍼.
ⓒ 김정혜

▲ 100원주고 샀다는 나비 목걸이
ⓒ 김정혜

▲ 200원주고 샀다는 가방
ⓒ 김정혜

엄마 것이라며 상추와 고구마 또 검은 지갑을 사왔다. 또 아빠 것이라며 오이와 보리쌀 한줌을 사가지고 왔다.

▲ 엄마 아빠를 위해서 샀다는 상추와 오이.
ⓒ 김정혜

▲ 엄마 아빠를 위해서 샀다는 고구마와 보리쌀
ⓒ 김정혜

▲ 엄마에게 주고 싶어 샀다는 지갑
ⓒ 김정혜

아이의 유치원 한 켠에는 넓은 텃밭이 있는데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그 텃밭에 여러 가지 씨를 뿌리고 기르면서 채소들과 곡식들이 자라는 모습을 일일이 관찰하며 체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상추, 오이, 고구마, 보리쌀은 아마도 그곳 텃밭에서 수확한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가 늘어놓은 여러 가지 것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신기하게 생각 되는 것이 있어 아이에게 물어 보았다.

"복희야! 알뜰시장에 복희가 필요한 것들이 많았을 텐데 복희 것만 사지. 어떻게 엄마 아빠 것도 살 생각을 했어?"
"엄마도 시장가면 내가 좋아하는 김도 사주고 빵도 사주니까 나도 엄마 좋아하는 거 사오는 게 맞고 아빠도 내 책이랑 공책이랑 가방 같은 것을 사주시니까 나도 아빠가 좋아 하시는 것도 사야지. 그럼 내 것만 사?"


참 기특했다. 7살. 그 철없는 것이 제 눈앞에 형형색색으로 펼쳐진 수많은 것들의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알뜰하게도 엄마 것, 아빠 것을 챙겼다는 게 여간 대견스러운 게 아니었다.

아이가 내 것이라며 사온 검은색 지갑은 많이 낡아 있었고 아이가 제 것이라며 사온 투명한 슬리퍼도 지갑처럼 많이 낡아 있었다. 하지만 깨끗하게 손질이 되어 있었다. 그 모두가 선생님들의 수고를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도 밖에서 신나게 뛰어 다니는 아이의 목에는 목걸이와 가방이 걸려있고 발에는 예쁜 슬리퍼가 신겨져 있다. 비록 새것이 아니어도 기꺼이 즐거워하는 아이가 참 예쁘다.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직접 고르고 또 돈을 지불하고 거스름돈을 받으면서 알뜰시장에서 몸소 체험했을 많은 것들이 아이에게 두고두고 좋은 교훈으로 남겨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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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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