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사이먼 윈체스터 <영어의 탄생> 앞표지
ⓒ 책과함께
대한민국에서 6월 6일이 무슨 날인지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사람의 충성을 기념하는 현충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자를 아는 영국 사람들은 이날을 우리보다 더 기념비적인 날로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1928년 6월 6일 오후 8시, 필립 하드윅 궁전에서 디너 파티가 열렸다. 바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비석 크기의 사전 10권이 70년의 고된 편집 작업 끝에 완성되어 마침내 그 위용을 드러내게 되었던 것이다. 285km의 활자 길이에 총 2억2777만9589개의 글자와 숫자가 들어간 그 거질(巨帙)은 너무 무겁고 두꺼워 책장의 선반을 휘게 만들 정도였다.

첫 두 세트가 영국 왕 조지 5세와 미국 대통령 캘빈 쿨리지에게 헌정됐고, 볼드윈 총리는 연설의 마무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옥스퍼드경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막의 섬에 떨어지게 되어 딱 한 작가의 작품만 가져갈 수 있다면 40권짜리 발자크 전집을 선택하겠다'고 말입니다. 나에게 그런 선택을 해야 하는 때가 온다면 나는 그때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선택하겠습니다. (중략) 우리의 역사, 우리의 소설, 우리의 시, 우리의 드라마, 이 모든 것이 이 한 권의 책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중략) 편집자들과 직원들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편찬한 것은 국민적 삶과 문학의 위대하고 고상한 수단인 우리의 언어에 대해 치열한 헌신의 정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중략)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역사상 최고의 업적입니다."

지나간 어느 대한민국 총리가 기자들에게 "소설 쓰지 말라"며 마치 소설을 비하하는 듯한 비유를 한 적이 있는 데 비하면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문학의 위대한 챔피언이며 영어사전 편찬계의 조종(祖宗)인 새뮤얼 존슨은 인간의 어휘 창조와 그 언어들이 묘사하는 사물과의 관계를 이런 대구(對句)로 설명했다.

"사물은 천상의 아들이지만 어휘는 지상의 딸이다."

그렇다면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완성은? 사이먼 윈체스터는 <영어의 탄생>에서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완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찾아다녔던 지상의 모든 딸들을 이제 안전하게 그들의 집으로 데려왔다."

지구상에서 영어가 쓰이는 영어의 영역은 탁월하게 넓지만,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범위를 보면 그 방대함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오늘도 숨쉬고 있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편찬 작업은 곧 오늘날 현대 영어의 탄생 과정에 다름아니었고, <영어의 탄생>은 바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다루어 놓은 책이다. 사전의 초판본이 완성되는 경위와 개정판의 출간 현황까지.

<옥스퍼드 영어사전>이라는 위대한 사전을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친 역대 편집장 6인의 삶과 편찬 당시의 풍속도를 드라마를 보듯이 재미있게 따라가다 보면 영어가 무슨 재주로 세계적인 보편 언어로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영어의 탄생>의 매력이다.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을 역임한 인문사회과학 분야 전문번역가 이종인씨가 번역했다.

덧붙이는 글 | <영어의 탄생> 사이먼 윈체스터 씀/이종인 옮김/2005년 4월 25일 책과함께 펴냄/223×152mm A5신/360쪽/값 1만 4900원 

김선영 기자는 대하소설 <애니깽>과 <소설 역도산>, 평전 <배호 평전>, 생명에세이집 <사람과 개가 있는 풍경> 등을 쓴 중견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시인과의 사색’, ‘내가 만난 소설가’를 이어쓰기하거나 서평을 주로 쓰고 있다. “독서는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참신한 독서운동을 펼칠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는 한편, 현대사를 다룬 신작 대하소설 <군화(軍靴)>를, 하반기 완간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


영어의 탄생 - 옥스퍼드 영어사전 만들기 70년의 역사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