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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생명수인 주암호 살리기에 일조하고 있는 리판석 다산미술관장.
광주의 생명수인 주암호 살리기에 일조하고 있는 리판석 다산미술관장. ⓒ 김두헌
리 관장은 화순과 광주에서 평교사로 재직하다 탯자리가 묻힌 고향인 화순 남면 다산(茶山)마을로 귀향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리 관장은 교사 재직 시절부터 짓기 시작한 ‘다산 미술관’을 지난 2001년 4월, 개관했다.

대지 1300여평에 건평 130여평의 다산미술관은 미술전시관, 세미나실, 공연장 등 각종 행사장을 갖춰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 회갑연, 계모임 노릇은 물론 유치원생, 인근 초등학생들의 단골 견학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40여년, 교직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오니 55세인 고향 후배가 최연소 나이더군요. 무엇보다 제 가슴을 아프게 했던 것은 어린이가 하나도 없었다는 겁니다. 버스 소리도 들리고 새벽 5시만 되면 잠에서 깨어난 농부들의 헛기침소리, 농기계 돌리는 소리도 들리는데 아이들의 울음소리, 웃음소리를 들을 수가 없는 겁니다.”

리 관장은 평생 어린이들과 함께 살아온 탓인지 지금도 꿈 속에서는 2학년 3반 교실로 들어가곤 한다고 한다. 교실문을 드르럭 열고 발걸음을 교실 안으로 옮기려다 자신이 이미 퇴임했다는 것을 확인하곤 소스라치게 놀라 꿈에서 깨어나길 여러 차례 반복했다고.

어린이들이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리 관장은 얼마 전에 화순 사평중학교 운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을 기대했던 리 관장은 운영위원장을 하다가 또 한 번 가슴 아픈 일을 경험하게 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안 들려

"조모, 조부 슬하 등 결손가정이 많더군요. 그래, 소풍을 간다고 그래도 누구 하나 선생님들 도시락 하나 싸올 학생이 없는 겁니다. 선생님 도시락은커녕 자신의 도시락도 챙겨오지 못한 모습을 보고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리 관장은 결국 이날 선생님들 도시락과 학생들의 간식을 챙겨줬다. 이렇듯 고향 마을에 국한되었던 리 관장의 관심이 확장된 것은 지난해부터 였다.

화순남면에 위치한 다산미술관 전경.
화순남면에 위치한 다산미술관 전경. ⓒ 김두헌
"주암호 주변에는 오지호 기념관을 비롯해 낙안읍성, 백민 미술관, 서재필 유적지, 조상현 판소리 연구회를 비롯해 각종 박물관, 송광사 등 13개 관광 유적지가 밀집돼 있습니다. 여기에 모일 관광객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래, 주말이 지나면 이들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로 주암호가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그는 그렇다면, 주암호 보호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키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했다. 자신의 전공인 그림과 평생 동안 봉직했던 교직생활이 겹쳐지자 자연스레 '아, 초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주암호 살리기 그림그리기 대회를 개최하면 되겠구나' 하며 무릎을 쳤다.

리 관장은 전라남도 전체 초중학교 학생들이 모두 참가하면 좋겠지만 인근 순천, 보성, 화순지역만이라도 우선 실시, 어린이들부터 주암호 보호에 대한 관심을 고취, 확산시키자고 결심했다. 그러나 모든 행사를 자비를 들여 실시하려고 해도 의외의 난관이 많았다.

주암호 인근 초중학생 7만명 참가

순천, 보성, 화순지역의 전 초등·중학교를 직접 돌아다니며 행사 개최의 의미를 설명하고 참여를 독려했지만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뭔가 다른 꿍꿍이 속이 있지 않느냐, 뭐한다고 개인이 자신의 경비를 들여가며 상장과 상금까지 주며 이런 행사를 개최한다는 말이냐’는 게 리 관장을 대면했던 사람들의 한결 같은 반응이었다. 그러나 리 관장의 정성과 열정에 감복한 학교들이 점점 많아져 7만여명의 학생들이 참가, 최종적으로 22명이 대상과 최우수상, 우수상을 각각 차지해 상장 및 상금을 수여받았다.

전라남도교육감상에는 정원아(사평중), 도지사상에는 정혜련(순천연향중), 이두리(순천해룡초)학생이 각각 대상을 수상해 상금 30만원을 수여받았다. 리 관장은 시상식도 지난 5월 20일, 다산미술관에서 개최했는데 수상학생은 물론 학교장, 선생님, 학부모들까지 초청해 점심식사를 대접했다. 이 자리에서는 식전행사로 벌교초등학교 학생들이 판소리 수궁가, 화순만연초등학교 학생들의 음악 줄넘기, 순천연향초등학교 학생들의 플룻 연주가 이어져 참석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7만여명의 학생들이 참가, 본선까지 200여명의 학생들이 경쟁을 했습니다. 전라남도교육청의 협조를 얻어 엄정한 심사를 거쳐 입상자들을 선정하고, 전시회도 다 끝났습니다. 비록 작은 일이었지만 이번 행사를 계기로 우리의 자원이고 광주시민들의 생명수인 주암호가 더욱 깨끗하게 보호될 수 있도록 각계각층에서 힘을 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입상작들은 지난 5월 20일부터 6월 19일까지 다산미술관에서 전시됐는데 수많은 학생, 교사, 학부모들이 관람했다.

'사랑의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아

다산미술관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게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그림하는 사람들이 전시회를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당초 다산미술관을 개관했는데 최근에는 마을주민들을 위해 노래방 시설까지 갖췄습니다.”

대지는 리 관장의 생가와 빈집으로 남아있던 주변의 집을 매입했다.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2층 세미나실로 올라가는 계단. 태풍때 쓰러진 평나무를 주워다 리 관장이 전공(서라벌예대 공예과)을 살려 직접 디자인해 멋진 계단으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리 관장의 가족은 교육가족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리 관장 본인을 비롯 장남, 차남, 큰 며느리, 작은 며느리까지 모두 교육가족. 리 관장은 최근 도서관 앞쪽의 부지를 매입했다. 조각공원으로 조성해 보고 싶은 생각이지만 여러가지 까다로운 법적 절차때문에 답보상태.

지극한 효심 주변에 칭송자자

리 관장 이 곳에 고흥에 사시는 한 노인께서 평생을 바쳐 키워놓은 백두산 형상의 향나무를 옮겨심을 구상도 하고 있다. 둘레만 해도 50여m에 달하는 거대한 이 향나무가 다산 미술관에 이식되면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하나 눈여겨 볼 것은 리 관장의 지극한 효심.

다산미술관에서 5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안장된 선친들의 묘는 리 관장을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다. 교직에 있을 때도 항상 출퇴근 때마다 묘지에 문안 인사를 드리는 등 그의 지극한 효심은 인근 주민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도 벌초를 비롯 선친들에 관한 일이라면 손수 팔을 걷고 나선다고 한다. 기자가 리 관장을 만나던 지난 6월 20일, 리 관장의 한쪽 눈이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는데 선친묘의 잔디를 깎다가 톱날에 튄 돌에 맞아 충혈된 것이라고. 리 관장은 지금도 집안을 출입할 때마다 선친들께 고개 숙여 인사를 드린다고 한다.

"앞으로도 미력하나마 지역사회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더욱이 환경보호라는 것이 저 같은 사람 한 사람이 나선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긴 하지만 어린 학생들과 함께하다 보면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리 관장은 교직에 들어선 후 화순에서 근무하다 광주전남 시도 분리후 학운, 농성, 조봉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서라벌예대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광주 무등대전 교원전에 10회에 걸쳐 입특선했으며 운림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 화가이기도 하다. 리 관장의 고향과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이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깨끗한 자연을 후손에게 물러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많은 지역민들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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